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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10. 2021

남편아 제발 작작 좀 해라!

일 년 만에 캠핑을 다녀온 어젯밤 8시에 남편은 줌 독서회가 있었다. 2박 3일의 캠핑으로 씻자마자 곯아떨어진 남편을 깨우고 저녁을 먹여서 컴퓨터 앞에 델따 놓았더니 키키 웃으면서 신나게 책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남편이 어쩌다가 저렇게까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독서회를 시작한 것은 3년 전이었다. 당시 나는 2개의 도서관 독서회를, 아들은 친구와 함께 하는 독서회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아빠! 엄마랑 나는 책을 많이 읽는데 아빠는 왜 책을 안 읽어요?"

"어? 그 그건 아빠는 일하느라 바빠서 나중에 읽을 거야."

"나도 학교 다니느라 바쁜데."


그날 이후 남편은 도서관에 연락해서 직장인 독서회를 시작했다. 처음는 조금 조심스러웠다.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서평 써서 밴드에 올렸다. 코로나 직전까지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코로나로 남편의 독서회는 줌에서 이루어졌다. 남편은 도서관 줌 독서회가 더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둘 신청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묻자 남편은 줌이라 괜찮아. 한 달에 한 권인데 뭐. 이렇게 모은 독서회가 4개 5개 어느새 6개가 되었다. 분명 한 달에 한 번이라 괜찮다고 했는데 매주 한 번은 독서회가 있었다. 어느 날은 오전에 가게에서 한번, 저녁에 집에서 한번 2탕을 뛰기도 했다.


남편아 이제 작작 좀 해라


남편은 집에서도 가게에서도 책을 읽고 있다. 줌 독서회도 집에서 가게에서 남편 스스로도 헷갈릴 정도로 바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독서회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신청하라는 도서관 안내가 오면 또 혹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림책이라 괜찮아 이러면서. 그 책들을 다 언제 읽으려고 그래? 내가 묻자 남편이 말했다. 어차피 장사도 안되는데 가게에서 읽으면 돼. 나는 단전에서 올라오는 한마디를 던지고 말았다. 남편아 이제 작작 좀 해라. 책 읽는 것도 좋고 독서회도 좋다 이거야. 집에서도 가게에서도 책만 읽고 있으면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소는?


일주일 전 저녁을 먹다가 가족 장단점 찾기를 했다. 아들이 아빠의 장점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빠는 왜 책을 안 읽냐고 하던 아들에게 3년 만에 듣는 찬사였다. 아! 나는 걱정이 밀려온다. 칭찬에 힘입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댈 것인지. 얼마나 많은 오디오북을 밤이면 밤마다 듣게 될 것인지. 얼마나 많은 북 팟캐스트의 영상을 보게 될 것인지. 아들의 칭찬이 남편을 춤추게 하고 미쳐 날뛰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어떤 한 가지에 빠지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남편은 아들에 빠져서 육아 끝판을 찍었다. 아들을 위해 주말에는 남편이 이유식을 만들었다. 통잠 못 자는 아들을 몇 시간이고 안아서 재웠다. 시댁에서 자고 와야 할 때는 그 큰 범퍼침대를 가져가기도 했다. 아들이 자면서 벽에 머리를 부딪치면 안 된다고.


아들이 5살이 되면서 남편은 아들과의 캠핑에 빠졌다. 2주에 한 번은 캠핑을 갔다. 한 달에 4번, 다음 달 첫 주까지 연속 5주를 간 적도 있다. 화장실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캠핑을 싫어하는 나와 상관없이 우리는 캠핑 전국 투어를 시작했다. 코로나로 캠핑도 거의 가지 않게 되었다. 오랜만에 캠핑을 다녀온 남편은 예전에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자주 캠핑을 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힘들어했다.



이번엔 책이다. 하나의 독서회를 위해 책을 두세 번 읽고 몰입하다가 독서회가 끝나면 남편은 성취감에 취해 들었다. 마치 목욕을 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일까? 책 한 권을 끝내고 나면 하루는 드라마나 보면서 쉬겠다던 남편은 이제 그마저도 못하겠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니 드라마가 재미없어졌다고. 독서 후에 오는 헛헛함은 다른 책만이 채울 수 있다고 한다. 그나마 책은 읽어도 바닥이 나지 않을 만큼 많으니 다행이다. 어젯밤에도 새로운 독서회를 시작할지 고민하던 남편에게 책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 나는 충분히 경고를 보냈다. 책에 미치면 약도 없으니 작작 좀 하라고. 남편은 책 중독으로 치료 불가 상태인 나에게 충고 따위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내 손에는 토지 5권이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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