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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26. 2021

12살 아들에게 무엇보다 다급하고 중요한 문제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3시 10분, 아이의 전화벨이 울렸다. 아이의 동네 친구가 그룹통화를 걸어왔다. 12살 동갑내기 4명의 대화가 심각하다.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긴 갈등의 시작이었다.


A : 놀이터에서 놀 수 있어?


회의 주최자의 말에 다른 3명의 아이들은 그렇다고 말했다. 처음은 순조로웠다.


A :  우리 뭐하고 놀까?

B :  산에 가서 놀까?


아파트 뒤의 산으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C : 어른도 없이 우리끼리 산에 가는 건 좀 그런데.

A : 그럼 산 말고 다른 거 할거 없어?

D : 딱지 어때?

B : 난 딱지 많이 없어.

A : 다섯 개만 있으면 돼. 다섯 개는 있지.

B :  아니 나 두 개밖에 없어.

A : 두 개는 너무 적은데. 그래도 뭐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

C와 D, 모두 동의했다.

A : 그럼 우리 몇 시에 볼까?

B : 난 밥 안 먹어서 지금 안돼.

A : 그럼 다른 사람은 몇 시에 나올 수 있어?


C와 D는 지금 바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몇 시에 만날지 결정하기 쉽지 않다. B는 3시 45분에 가능하다고 하니 나머지 친구들끼리 미리 만날지 아니면 B를 기다렸다가 같이 만날지 정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결국 45분으로 결정했다. B와 같은 동에 사는 C가 같이 만나서 놀이터로 가기로 했다. 나머지 친구들은 놀이터로 바로 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B : 야 그런데 나 전화 고장 나면서 전화번호 다 날렸어. C번호 몰라.

A : 내가 아니까 알려줄게. 내가 B한테 C번호 문자로 보낼게.

C : 아니 그러지 말고 나한테 B 번호 보내. 내가 B한테 전화 걸게.


믿기지 않겠지만 A가 B에게 C의 번호를 보낼지 아니면 C에게 B의 번호를 보낼지를 두고 한참 열띤 토론을 한끝에 B에게 C의 번호를 남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예전에 나는 미처 몰랐다. 곧바로 다음 안건이 올라왔다.


A : 야 우리 그럼 무슨 놀이터에서 만나?


동네에 몇 개 있는 놀이터 중 어느 놀이터에서 볼지가 문제였다. 바로 앞 OO놀이터에서 놀 것인지 다른 동에 있는 놀이터에 갈지 한참 옥신각신했다.


A : OO놀이터에서 보는 거 어때?

D : 거긴 시시해. 꼬맹이들만 놀잖아.

B : 그럼 @@놀이터에서 보자.

C : 거기 딱지치기에 애들이 너무 많은데. 뭐 그래도 @@에서 보자.


의외로 쉽게 장소가 정해졌다. 그렇게 놀이터에 대한 길고 지루한 토론이 끝나고 전화를 끊은 아이는 곧바로 나갈 채비를 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울렸다. 다시 4명의 그룹통화가 시작되었다. 놀이터를 바꿔도 되겠냐는 것이다. OO도 @@도 아닌 다른 놀이터가 거론되었다.


C : 그냥 @@에서 보자.

B : 싫은데 훈민정음에서 놀고 싶은데.

C : 뭔 소리야. 장난치지 말고.

B : 세종대왕 놀이터에서 놀자.

C : 여보세요. 장난치지 마시구요~~


아파트에 있지도 않은 놀이터를 언급하며 장난을 치는 B와 그걸 심각하게 받아주는 C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드디어 모든 안건이 통과되고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딱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여기에 다 옮기지 못할 만큼 심각하고 긴 이야기가 있었지만 대충 기억나는 아이들의 놀이터 협정의 내용이다. 노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나이 12살. 그 이상의 고민이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아이들의 오늘을 지켜주고 싶은 통화였다.


3시간 후, 아이는 땀에 흠뻑 젖은 채 돌아왔다. 딱지치기하다가 술래잡기도 하면서 한참 뛰어놀았다고 한다. 민주적이고 진지한 회의 끝에 만족한 결과까지 얻어낸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이들이다.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고민과 문제가 생기면서 정작 중요한 것 하나를 잊고 사는 것 같다. 신나게 노는 일이 그것이다. 땀을 뻘뻘 흘릴 만큼 신나게 놀아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그 놀이만을 위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적이 나에게도 있었던가. 아마 지금 아이의 나이에 나도 그럴 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내 몸에서 웃음만이 빠져나가버린 것 같을 때가 있다. 정말 신나게 놀 수 있는 웃음이 사라진 내 몸은 텅 비어버린 것 같다. 그 웃음들은 지금 아이의 몸에서 숨 쉬고 있다. 그리고 아이의 웃음으로 나는 다시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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