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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05. 2021

개구리는 개굴개굴하고, 아들은 재잘재잘한다.

시작부터 거세게 내리던 비가 저녁 무렵 그쳤다. 비가 그친 여름, 어둠이 내리면 언제나 개구리 소리가 들린다. 우리 동 앞에 놀이터가 있다. 그 놀이터와 붙어 있는 생태연못에는 개구리가 살고 있다. 그 개구리들이 비가 내리고 나면 우는 것이다. 올해는 자주 비가 내려서 거의 매일 밤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으면 나는 시골 논둑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시골은 밤이 되면 암흑이 된다. 가로등이 몇 개 있지만 가로등 불빛은 돔처럼 마을만을 비출 뿐이다. 그 불빛 지붕 너머는 공포에 가까운 어둠이다. 그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없다면 아마 정말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나는 지금 아파트 9층에 누워서 그 어둠의 공포를 물리치는 개구리 소리를 듣고 있다.


개구리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시골 논둑을 걷는 듯한 평화로운 기분이 들지만 아마 이 소리가 싫은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사실 이 생태연못은 아파트의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가물어서 비가 자주 오지 않은 어느 해를 제외하고 이 연못을 없애자는 민원이 관리실로 자주 들어온다고 한다. 초여름 저녁부터 자정이 지나도록 들리는 개구리 소리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아파트에는 맹꽁이도 있어서 개구리 소리에 화음까지 넣고 있다.


생태연못에 봄이 오면 노란 붓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보기에 고왔다. 풀이 많지 않았을 때는 소금쟁이가 왔다 갔다 해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 원리를 알고 나서도 나는 소금쟁이가 물 위를 걷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그런 연못에 이른 여름부터 개구리가 터를 잡고 울어댄다. 그 소리가 싫어서 어느 해에는 펌프를 가져와서 물을 빼내기도 했었다. 연못을 없애자는 민원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을 것이다. 올해는 이 연못의 풀을 제거하고 개구리가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기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마저도 업체와 조율이 안 돼서 잠정 보류됐다. 개구리 우는 여름밤이 즐거운 나에게는 다행한 일이지만 올해도 이 아파트에는 개구리 소리에 잠 못 드는 주민들이 속출할 예정이다. 차라리 나처럼 향수에 젖기라도 하면 잠 못 드는 밤이 아련하기라도 할 텐데 잠 못 드는 그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어느 날은 자려고 누웠다가 쉴 새 없이 우는 개구리 소리가 아들의 수다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은 나한테 이런저런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독 게임 이야기와 책 이야기가 많다. 책 이야기는 괜찮은데 사실 게임 이야기는 듣고 있기 힘이 든다. 게임을 몰라서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게임을 해서 아들과 신나게 떠들어야지 싶어서 아들이 하는 게임을 한 번씩은 다 도전해봤다. 그런데 게임이 너무 어려웠다. 어려워서 시작하자마자 일분을 못 버티고 '게임오버'가 된다.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게임은 고작 고스톱과 테트리스였다. 아들은 테트리스를 해보더니 재미없다고 몇 번 하고 안 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브롤 스타즈'나 '카트라이더', '쿠키런'이나 어몽 어스'는 내가 하기에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시도만 해본 게임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우주에서 사용하는 언어 같다. 게임 아이템이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아들은 끝도 없이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런데 엄마~~'로 시작하는 아들의 게임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오후에는 아들이 읽던 책을 들고 와서 보여준다. 벌써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읽은 책들이다. 아들은 책을 보여주면서 '웃기죠?' 이런다. 사실 너무 자주 들어서 안 웃긴다. 아들이 좋아하는 책' 야밤의 공대생 만화'거나 '위험한 과학책'이 대부분이지만 '흔한 남매'를 데리고 올 때도 있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흔한 남매가 훅 들어온다. 아들은 낄낄대면서 재미있는 부분을 읽어주기도 한다. 자상도 하지.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게임 이야기에 나는 영혼 없이 대답한다. 아들이 속상해할 때는 '게임 아이템 안 좋은 거 나왔어?'라고 대부분은 먹혀들어갈 질문을 한다. 아이가 기분 좋을 때는 '오~~ 아들 좋은 거 뽑았구나.'라고 하이파이브해준다. 사실 나의 반응이나 대답이 처음부터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들은 단지 게임을 하면서 느낀 희로애락을 나눌 상대가 필요한 것뿐이다. 책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십 초도 지나지 않아 까먹어도 아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일이 오기 전에 다시 책을 들고 나타나 마치 처음인 듯 이야기할 거니까.


같은 게임, 같은 책 이야기를 수도 없이 재잘재잘하는 아들의 말이 마치 개굴개굴 하는 저 옆 못의 개구리 소리 같다. 연못의 개구리들도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아서 밤새 울어대는 것일까? 개구리 엄마도 나처럼 분명 영혼 없이 대답할지 모른다. 아니면 올해는 연못이 안전할 것 같다고 안심하고 울어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마의 시작으로 집에서 뒹굴뒹굴하던 주말이 개구리는 개굴개굴하고 아들은 재잘재잘하면서 저물어 갔다.

이전 12화 아들은 분노의 이불킥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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