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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14. 2021

아들은 분노의 이불킥을 날렸다.

월요일 밤 9시 50분.

아들이 갑자기 아! 하고 놀란다. 오늘 해야 할 운동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아들은 실내 자전거에 오르려고 했다. 아들의 학교 숙제 중에 좋은 습관 만들기에 도전하는 것이 있었다. 한 달 동안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해내는 것이다. 아들은 처음에 '하루에 한 권 책 읽기'로 정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목표는 네가 매일 하고 있지 않은 일을 하기로 정하는 것이라고. 매일 책을 읽는 네가 정할 목표는 아닌 것 같다고. 그렇게 정해진 것이 매일 20분 산책하기였다. 장마와 폭염이 심한 경우에는 실내 자전거로 대체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숙제 덕분에 해질 무렴 나는 아들과 아파트 산책로를 걸었다. 거의 매일. 그런데 아들이 월요일에 산책도 실내 자전거도 깜빡한 것이다.


월요일은 아들이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끝내고 아들은 언제나처럼 일주일치 게임의 반 이상을 월요일에 해치웠다. 그리고 게임 결과를 친구에게 전화해서 30분 이상 얘기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남편이 퇴근을 하고 간식 먹으면서 아빠와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 시간이 있었지만 아이는 산책을 까맣게 잊었다. 하필 이날은 친구와 온라인 독서회까지 있었다. 독서회가 끝나고 친구와 자유롭게 게임 이야기 (낮에 게임 이야기했던 친구와 동일인물이다.)를 하다 보니 어느새 양치하고 잠잘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잠자기 직전에 생각나도 할 일은 꼭 다해놓고 자야 직성이 풀리는 아들은 일단 실내 자전거라도 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의 취침은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 운동 20분 하고 나면 오히려 잠이 깰것이고 자는 시간이 더 늦어질게 뻔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 오늘은 운동하지 말고 그냥 자라고 했다. 아들은 속상한 얼굴이 되었다. 계획표에 X표를 하는 아들의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는 오늘 동그라미를 하고 내일 두배로 산책하는 것은 어떠냐고 아들을 회유했다. 아들은 그건 안된다고 했지만 X표를 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어렵게 X표를 하고 잠자리에 든 아이는 분한지 누워서 발을 구르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피곤했는지 잠깐의 이불 킥 후에 금방 잠이 들었다.

두 번째 날 운동 시간을 몇 분 채우지 못한 아들, 세모로 표시했지만 이날은 화를 내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아들에게 어제 뭐가 그렇게 속상했는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했다. 아이는 산책해야 하는 숙제를 까먹은 것이, 그래서 X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 화가 났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혹시 아들이 운동 못하게 한 우리한테 화가 난 것은 아닐까 내심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실수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한편으로 나는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세웠다고 해서 꼭 매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 한두 번 빼먹어도 괜찮아.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네가 세운 계획이니까 까먹은 니 잘못이야 다음부터는 잊지 말고 꼭 지켜.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이는 유독 규칙에 예민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다. 1학년 때 학교에서 매일 바른 글쓰기 노트를 써야 했다. 유독 성격이 느긋한 아이는 글씨는 또박또박 예쁘게 썼지만 매번 다하지 못해서 나중에는 몇 주가 밀리게 되었다. 하루는 아이를 등교시키는데 학교 문 앞에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바른 글쓰기가 너무 밀려서 괴롭다고 했다. 아침에 10분 동안 써야 하는 거라 다 못쓰면 자꾸 밀리게 된다고. 그래서 집에 가지고 와서 한꺼번에 여유 있게 쓰고 다음날 가지고 가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집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하는 거라고 했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한참을 괴로워하는 아이에게 말했다.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하라고. 유독 선생님을 무서워했던 아이는 그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더 울면서 학교로 들어갔다. 그날 하교를 하는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선생님께 말했더니 매일 남아서 조금씩 쓰고 가라고 했단다. 나중에 다른 엄마에게 물어보니 그 노트는 안 쓰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안 써도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했다. 자기 아이는 처음에만 몇 번 쓰고 지금까지 안 쓰고 있다고도 했다. 아들만 괜히 속앓이를 한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밀린 노트를 다 쓰고, 솔직히 말하면 그 무서운 선생님도 용서해준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 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때마다 나는 고민에 빠진다. 아이에게 규칙이라도 다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해도 되나? 아니면 규칙이니까 안 지키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말해도 될까? 세상을 살다 보면 규칙을 꼭 지켜야 할 때도 있지만 부득이하게 규칙을 어길 때도 있다. 몇 년 전에 지인이 셋째를 낳았을 때였다. 새벽 4시에 진통이 와서 남편과 병원을 가는 중이었다. 셋째라 아이가 빨리 나올 것 같아서 지인은 마음이 급했다고 한다. 그런데 새벽 4시에 차도 없는데 남편이 신호를 꼬박꼬박 지키는 것을 보고 폭발했다고 한다. 결국 '야 XX야 그냥 가!'라고 소리쳤다고. 다행히 아이는 병원에 도착하고 십 분 만에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다. 그때는 지인의 말을 웃으면서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아들이 그렇게 할 것 같아서 이제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월요일 일로 충격이 컸던지 아들은 다음날 일찌감치 운동을 끝냈다. 오늘 아침에는 낮에 너무 더우니까 아침에 산책하자는 내 말에도 순순히 따라나섰다. 그리고는 의기양양하게 계획표에 동그라미를 쳤다. 월요일 밤의 쓰린 기억이 아들을 더 성장하게 하는 거름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고지식하고 꽝 막힌 아들의 타고난 성격을 지켜주는 것이 아들을 위한 일인지, 아직 세상에 온전히 맞서지 못하고 있는 아들에게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미숙한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이미 태어난 아이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져든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는데 나를 보고 자랄 아이에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가 요즘 더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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