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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24. 2021

5학년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들의 5학년 담임선생님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새 학기가 되기도 전에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는 경우가 없었다. 작년에는 3월에 등교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화가 오지 않았다. 4월에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면서 4학년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초등학교 6년 동안 한번 만날까 말까 하다는 남자 선생님이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인기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할 만큼 좋은 선생님이라 축하까지 받았었다. 하지만 아이가 선생님을 실제로 본 것은 날짜로 따지면 한 달도 안 된다. 마스크를 쓴 얼굴이었다. 그나마 2학기에는 줌으로 얼굴을 보는 날도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날이 며칠 안 되었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아마 길에서 만나도 못 알아볼 것 같았다. 4학년 선생님과 마스크 없이 신나게 운동장에서 체육수업 한번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쉽기가 그지없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5학년 담임 선생님은 역시 여자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나와 인사를 하고는 바로 아들과 통화하고 싶어 했다.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들에게 설명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다. 보통 저학년의 아이들은 엄마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아들은 직접 공지사항을 전달받을 나이가 되었나 보다. 아들에게 스마트폰이 없다는 말에 선생님은 당황한 것 같았다. 다행히 PC로도 학교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고 아들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학교와 아들 사이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이제 나를 소외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아들은 선생님과 한참을 통화했다. e-학습터의 달라진 프로그램에 대해 선생님이 설명해줬다고 한다. 일단 일주일은 이틀 등교하고 다음 주는 세 번 등교하는 방식이었다. 등교가 없는 날은 온라인 수업이었다. 달라진 것은 많이 없었다. 오전 수업 후에 급식을 먹고 바로 하교, 오후에 온라인 수업이 한 시간 추가되었다.  


학교에 가는 당연한 일상을 언제쯤이면 다시 찾을 수 있을까? 4학년 때 아들은 친구들 얼굴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원래 아는 친구들은 알겠는데 4학년에 처음 만난 친구는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있고, 줌으로 가끔 수업을 하긴 하지만 30명 가까이 한 화면에서 보고 있으니까 구별이 잘 안 되는 것이다. 나는 학교라는 공간이 공부를 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만나고 놀고, 다투기도 하면서 마음도 몸도 단단해지는 공간이 학교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4학년이 책의 접힌 페이지 같다고 했다. 두장이 겹쳐서 읽지 않고 넘긴 책장처럼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4학년 선생님과 보낸 기억을 되살려 주려고 노력했다. 


선생님과 함께 했던 가위바위보 퇴장 놀이 기억나? 줌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선생님을 이긴 아이가 먼저 줌에서 나가는 놀이를 했다. 길어도 일분 차이지만 아이들은 묘하게 승부욕에 휩싸였다. 그리고 선생님과 했던 빙고 놀이나 달력 만들기 기억나지? 아들에게 4학년을 찾아주고 싶다.


아무런 기억도, 내용도 없는 책의 한 페이지가 다시 시작되려고 한다. 올해는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붙잡아 둬야겠다. 두장을 넘기지 않도록 손끝에 힘을 줘야겠다. 그런데 자꾸 시간이 달아나고 있다. 벌써 2021년이 두 달이 지났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들이 올해를 더 많이 기억할 수 있게 계획이 필요하다. 


아직 5학년 선생님의 얼굴도 모르고, 같은 반 친구들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올해도 마스크에 가려지고 컴퓨터 화면의 30명 중 하나의 얼굴로 보일 친구들이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종이처럼 얇은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체는 없고 실루엣만 있는. 2021년에는 희미한 실루엣을 꽉 채우고 싶다. 이렇게는 더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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