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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17. 2021

너희 엄마라고 생각해!

어느 눈 오는 날이었다. 아들은 눈이 오면 옆 동에 사는 동갑친구와 신나게 논다. 아이가 눈 오는 날에는 엄마 또는 아빠도 함께 할 때가 많다. 경사가 심한 우리 아파트는 눈이 오면 자연 눈썰매장이 되는데 그곳에서 가끔 사고가 발생한다. 어느 해에는 올라오던 아이와 내려가던 아이가 부딪쳐서 이가 부러진 일이 있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눈 오는 날은 특히 보호자가 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했다. 그날은 남편이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아파트 옆 마트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들고 오는데 아이들이 앉아서 눈을 쌓아놓고 장갑 낀 손으로 다지듯 두들기고 있었다. 마치 북을 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야 이 눈을 너네 엄마라고 생각하고 때려!"

옆 동 아이가 말했다.

"야 그건 좀!"

아들이 말했다. 두 아이 모두 눈을 두드리느라 나를 보지 못했다. 옆에 서 있다가 나를 본 남편이 말했다.

"그런데 그 엄마가 뒤에 있다는."

남편의 말에 뒤를 돌아보던 옆 동 아이는 마치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봤다. 너무 놀라서 뒤로 살짝 주저앉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너무 드라마 같아서 귀여웠다.

"나를 왜 때리려는 거야? 삐치려고 하네."

나는 살짝 삐친 것처럼 장난스럽게 말했다.

옆 동 아이는 여전히 놀라서 더듬더듬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모른 척 하던 놀이를 계속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나와 남편은 그 얘기를 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놀라서 자빠지던 아이의 표정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이 '그래'라고 하면서 엄마를 때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아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때리고 있었다면 나는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쓰렸다. 아들의 말이 그 아이는 자주 엄마를 그런 식으로 말한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난 요즘 자꾸 그때 일이 생각이 난다. 아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일까 자꾸 스스로를 점검하게 된다. 싫다는데도 하루에 몇 번씩 안아주고 뽀뽀해서 귀찮은 것은 아닌지. 매일 한 시간씩 아들보다 늦게 일어나는 엄마가 한심하게 보이지는 않은지.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자기가 읽는 책의 재미있는 부분을 읽어주는 아들에게 영혼을 살짝 빼고 대답해 준 것을 눈치챈 것은 아닌지. 어제 점심에 계란찜을 해 달라고 했는데 귀찮아서 저녁에 해 준 것이 서운하지는 않은지. 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학원도 학습지도 안 해준 엄마가 혹시 아들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엄마가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아들에게 배우게 한 것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하루에 몇 번씩 사랑한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이 그냥 습관처럼 들리는 것은 아닌지.


어느 평화로운 오후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집에서 저녁 반찬을 만들고 있는데 놀이터에 간 아들이 친구와 무언가를 나로 생각하고 두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가 있다. 아들이 있어서 나의 하루는 매일이 눈부신데 아들에게 나는 눈부신 것 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가끔 속상할 때 위로받고 싶은 존재라도 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적어도 싫어서 때리고 싶은 엄마는 되지 말자고 아들 앞에서 더 긴장하면서 살자고 다짐해 본다. 내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아들에게 강요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뻗어가는 마음을 멈추고 아들을 인정하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 아직은 세상 어느 누구도 아닌 지금의 나로 사는 게 좋다는 아들의 말을 앞으로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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