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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11. 2021

아들의 등교는 밤 9시에 시작된다.

잠을 자려고 누운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또미야 왜? 어디 아파?"

아이를 따라나가서 물었다.

"아니요. 필통에 지우개를 넣어두는 걸 깜빡했어요."

책상 위에 있는 지우개를 필통에 넣고, 필통을 가방에 챙겨 넣고서야 아들은 다시 누웠다.


등교를 시작하면서 아들은 밤 9시부터 준비물이나 교과서를 챙기느라 바쁘다. 어느 날은 학교 과제를 다 못했다며 자려다가 다시 일어나서 숙제를 끝내고 잔 적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해도 될 일도 다 끝내야 잠을 편히 잔다.


한 번은 학교에서 가지고 온 가정통신문에 체크하는 것을 까먹고 자러 간 적이 있었다. 아들이 잠이 들 무렵 생각이 나서 불안해했다. 나는 아침에 해도 되니까 그냥 자라고 했는데 아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마음이 불안해서 잠이 들려다가도 깬다고 했다. 결국 일어나서 가정통신문을 다 체크하고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원래도 이런 성격이었지만 코로나 이후로 더 심해졌다. 4학년 첫 등교는 6월 중순이었다. 아들은 등교 전날 많이 들뜨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준비물과 교과서 챙기는데 더 많은 신경을 썼다. 반 친구 중 한 명이 준비물을 안 챙겨 왔는데 선생님이 준비물을 꼭 챙겨 오라고 말했단다. 코로나로 옆 친구에게 준비물을 빌릴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다음 날은 교과서를 까먹고 안 가지고 온 친구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교과서를 복사해 주면서 다음부터는 꼭 챙겨 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짝꿍 없이 혼자 앉기도 하고 책을 같이 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학교 분위기에 아들은 긴장했다. 준비물을 안 챙겨 간 적도 없는데 혹시라도 자신이 준비물을 안 챙겨서 선생님께 방역수칙을 동반한 질책을 받을까 봐 겁이 나는 것 같았다. 덩달아 나도 바짝 긴장했다. 수업 준비물뿐만 아니라 여분의 마스크와 소독 물티슈, 손소독제와 물병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면 안 되는 방역 준비물까지 신경이 쓰였다.


5학년이 되면서 아들은 준비물을 챙기거나 옷을 입을 때도 나의 손길을 많이 벗어났다. 이제는 혼자서 준비물을 챙기고, 옷도 자기가 알아서 입겠다고 한다. 숙제는 저녁 먹기 전에 할 때가 많다. 그래도 여전히 아들은 밤 9시면 가방을 점검하고 있다.

"필통은 챙겼고, 교과서는 다 넣었고, 일기 숙제는 다 했고."

완벽한 가방을 확인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잠든 아이의 얼굴은 편안하다.


아들의 성격은 참으로 나와는 다르다. 남편을 닮았다. 남편은 무슨 일이든 미리 하는 성격이다. 아들도 그렇다. 나는 심각한 벼락치기 파다. 최대한 미뤘다가 마지막에 급하게 하는 성격이다. 학교 다닐 때 시험공부나 학교 숙제를 할 때도 그랬다. 벼락치기는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더 많다. 일을 미루는 시간이 마냥 편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마음속으로 해야 할 일을 신경 쓰고 있으면서 하지 않는다. 막상 시간이 촉박해서 하면 한꺼번에 해야 하니까 몸도 마음도 힘이 든다. 결과도 별로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 버릇을 달고 사는 내가 보기에 아들이 나를 닮지 않고 남편을 닮아서 다행이다.


아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도 마음 편히 잠이 들 수 있는 느긋한 성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조금은 내려놓고 이래도 저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살면 좋겠다. 물론 그렇다고 나처럼은 안 된다. 벼락치기를 한다고 해서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뭐든 열심히 미리 하는 것도 좋지만 다 준비하지 않아도, 완벽하게 해 놓지 않아도 뭐 어때 하고 쿨하게 넘기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남편은 아들의 편안한 잠을 위해 잠들기 전에 아들이 몇 번 자다가 일어나도 기다려준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 나처럼 벼락치기파로 변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아이들은 자꾸 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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