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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22. 2021

12살 아들 키즈폰과 이별하다.

12살 아들의 워치형 키즈폰을 해지했다. 6학년까지는 워치형 키즈폰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2년을 앞당긴 결정이었다. 그동안 가족회의를 통해 워치형 키즈폰을 6학년까지 사용하자고 했지만 사실 엄마 아빠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들은 회의임에도 자신의 의견을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 아빠가 한편을 먹고 아들을 설득하는 회의였던 점을 인정해야겠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들이 처음 워치형 키즈폰을 사용한 것은 처음 어린이집에 갔던 6살부터였으니 6년을 사용한 것이다. 6년 동안 4번을 바꿔야 했다. 워치형 키즈폰을 처음 사용했던 6살에는 키즈폰을 쓰는 아이가 그래도 몇 있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는 한두 명이 키즈폰을 사용했지만 2학년부터는 아들이 유일한 키즈폰 사용자였다. 3학년이 되었을 때 아들의 키즈폰을 놀리거나 무시하는 아이들도 가끔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속상해하면서 말했다. 친구가 너 아직도 키즈폰 쓰냐?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는 키즈폰을 잘 사용해줬다. 3학년 때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공신 폰이나 2G 폰을 사용하는 아이들도 가끔 있긴 했지만 아이가 2학년이 되는 시점부터는 워치형 키즈폰을 사용하는 아이가 주변에 한 명도 없었다. 학교에서도 공문을 보낼 때 카카오톡이나 스마트폰 앱으로 보냈다. 학교의 공문은 내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아들은 2학년에 처음으로 스마트폰 게임을 시작했다. 아들이 스스로 게임 시간을 정하게 했고,  정해진 게임시간에 엄마 아빠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이번에 아이는 공신 폰으로 바꾸게 되었다. 바뀐 전화번호를 친구들에게 단체문자로 보내면서 아들을 좋아했다. 키즈폰으로는 단체문자를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이 기능 하나만으로도 아들은 행복해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너 드디어 스마트폰이냐?

아니 인터넷은 안돼

아~~ 그럼 이제 손목에는 안 차는 거야? 와~~ 축하한다! 나는 아이폰이야!

어 그래!


아들의 통화를 듣던 나도 남편도 짠하고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잠들고 나서 남편은 아들이 안쓰러워서 마음이 흔들렸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식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2년이나 빨리 키즈폰과 이별하게 돼서 행복해하는 아들을 보면서 우리가 너무 가혹한 부모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들은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한 적이 없다. 기특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안 사 줄 것을 알아서 미리 포기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스마트폰을 사주겠다고 했다. 아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자신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도 버티기 힘든 스마트폰이다. 주변에서는 거칠게 말해서 작작 좀 하라는 반응이다. 나중에 니 아들 인생 다 망가진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친구도 없는 왕따가 될 거라고 했다. 이런 애들이 나중에 중독에 빠진다고도 했다.


내 것을 가져본 적이 없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 절대 이런 결핍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뭐든 사주겠다고 뭐든 다 해 주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는 오히려 잘 사주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장난감도 기념일이 아니면 사주지 않았고, 옷도 사촌 형에게 물려받은 것이 더 많았다. 스마트폰은 최대한 미루고 싶어서 아들에게 아픔을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어떨 때는 정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 이게 뭐라고.


스마트폰을 사주는 것이 사주지 않는 것보다 부모에게는 훨씬 쉬운 일이다. 스마트폰이 있으면 부모는 편해진다. 아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는 대신 우리 부부는 아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시간과 노력을 줬다. 아들이 이상한 실험을 하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아들과 함께 재료를 찾아보거나 문방구에서 같이 재료를 구입했다. 아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색종이나 클레이, 기타 등등의 미술재료를 언제든지 사 오려고 노력했다. 아들이 원하면 우리 둘 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 보드게임을 언제든 함께 했다. 남편은 아들과 몸으로 놀아주려고 자주 놀이터에 함께 나갔고, 코로나 전에는 한 달에 두세 번은 캠핑을 갔다. 저녁시간에 우리도 스마트폰을 하기보다는 아들과 책을 읽는다. 아들에게 스마트폰이 주는 즐거움을 줄 수 없지만 가족과의 즐거운 시간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


아들이 키즈폰에서 가장 불편하게 생각한 것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과 문자를 보내는 중에 누군가 전화가 걸거나 문자를 보내면 작성 중인 문자가 다 지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은 지금 좋아한다. 사진을 찍어서 바로 친구들에게 문자로 보낼 생각에 들떠있다. 다행히 아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왕따가 되지는 않았다. 거의 매일 놀이터에서 줄넘기나 딱지치기를 하며 노는 친구들이 있고, 멀리 사는 친구와는 매일 통화를 한다. 아들이 놀이터에서 스마트폰을 하고 있지 않는 것만으로 우리의 결정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길을 걸으면서, 학교 복도에서, 놀이터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심지어 썰매를 타면서도 스마트폰을 하는 아이도 봤다.


워치형 키즈폰을 사용하면서 줄이 끊어져서 몇 번을 교체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키즈폰의 장점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일단 손목에 시계처럼 차고 있으니까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아들의 말이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는 일이 자주 있다고 했다. 아들이 길에서 또래 아이의 스마트폰을 주워서 돌려준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리고 키즈폰은 기능이 단순해서 키즈폰을 보면서 길을 걷거나 중독될 위험이 없다.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는 기능 외에 게임이나 다른 기능이 있긴 하지만 너무 유치해서 아들은 처음에만 몇 번 보고 더는 안 본다. 아들의 바뀐 전화기도 기능 면에서는 키즈폰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제 유치원생이냐는 친구들의 놀림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 나도 아이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들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스마트폰을 사주겠다고 했던 말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들이 사달라고 졸라서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 아들이 짠하고 아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우리 부부는 먼저 사주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대한 미루자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하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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