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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05. 2021

입학 가방은 졸업 가방이 될 수 없다.

제발 가방 바꾸자!

아들 가방 바꿀 건데 어떤 게 좋아?

갑자기? 왜 가방을 바꾸는 거예요?

이제 5학년이잖아. 지금 가방은 입학할 때 산 거야. 이제 바꿔야 돼.

꼭 바꿔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바꿔야지.

왜요?


또 시작이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가방을 살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들 입학해야 하니까 가방 사러 가자.

집에 가방 두 개나 있는데 왜 사는 거예요?

입학할 때는 새 가방이 필요해.

왜요?


아들을 설득해서 산 입학 가방을 바꾸는 문제로 2년째 이러고 있다.

나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비싸서 못 산다거나 돈이 없어서 못 산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돈이 부족하긴 했다. 분양받은 아파트 대출금으로 남편의 월급의 30프로가 나갔다. 임신과 동시에 일을 그만둔 나는 애 키우는 재미에 빠져 돈을 벌러 나갈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가난했다. 그래도 아들이 가난해서 못 산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비싸거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는 거라고 했다. 아들이 고른 물건을 보고 이거 필요한 거야? 묻고 아들이 그렇다고 하면 되도록 사주었다.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줄 때도 생일이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주었다. 그런 아들이 보기에 가방은 필요한 물건이 아닐 수 있다. 집에 사촌 형에게 물려받은 가방이 하나, 외출할 때 장난감을 담을 작은 가방이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새 가방이 필요하다. 아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나에게는 필요했다.


하루에 버스가 2번 다니는 시골 마을에서 나는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집은 가난했고, 할머니는 바늘처럼 날카로웠는데 며칠에 한 번은 그 바늘이 우리 6남매를 찔렀다. 아빠는 바늘보다는 망치였다. 일 년에 한두 번 쓸모가 있고, 평소에는 엄마와 6남매에게만 쓰이는 망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새것을 가진 적도, 나만의 것을 가진 적도 없었다. 친척들의 옷을 언니들이 물려받고, 나는 언니들의 것을 물려받았다. 학교에 입학할 때도 언니들의 물건을 가지고 갔다. 새 가방은커녕 새 연필이나 새 지우개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독 내 것에 집착이 심하다. 작은 물건 하나도 내 물건을 남이 갖거나 잃어버리면 견디기 힘들었다.


아들을 임신했을 때 나는 내가 가진 결핍을 아들이 한 번도 느끼지 않게 키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육아책에서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21세기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약간의 결핍이라고 했다. 내심 다행이었다. 어차피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주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아들과 여기저기 다녔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산이나 공원을 다니면서 아들이 보고 느끼는 대로 이야기하고 들었다.


아들은 갖고 싶은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외동이라 넉넉하게 사주지 않아도 결핍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사촌 형한테 물려받은 옷이나 장난감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입학 가방을 사줄 때도 애를 먹었다. 나는 아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억지를 썼다. 원래 입학할 때는 새 가방을 사는 거라고 스마트폰으로 입학 가방을 검색해서 보여주기까지 했다. 여기 봐. 입학 가방이라는 말이 왜 있겠어?


이렇게 산 입학 가방을 3학년이 끝나고 바꾸려고 했는데 아들이 반대해서 일 년을 더 썼다. 이제 5학년인데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아들은 싫단다. 일단 멀쩡한 가방을 바꿀 필요가 없다며 강하게 거부한다.


그럼 가방이 멀쩡하지 않으면 바꿔도 돼?


음흉한 내 목소리에 아들은 그렇다고 일부러 망가뜨리진 마시고요 이런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다. 옆에서 남편은 왜 가방을 꼭 바꾸려고 하냐고 도움 안 되는 훈수를 둔다. 원래 바꾸는 거야. 다들 3학년에 바꾸는데 얘는 늦었어. 그런 게 어딨어. 자기가 좋아하는 가방을 쓰면 되지 이런다. 우 씨!


결국 입학 가방을 5학년에도 쓰기로 했다. 아들은 그 가방이 편하고 좋다고 한다. 아들이 좋다는데도 다들 바꾸니까 너도 바꿔야 한다고 고집 피우기에 내가 논리적으로 억지스러웠다. 이러다가 입학 가방을 6학년 때까지 쓸까 봐 걱정된다. 남편이 또 옆에서 말도 안 되는 훈수를 둔다. 6학년 때까지 쓰면 안 돼? 어이구!


가방 바꾸고 싶다. 아들의 가방을 바꿔주고 싶다.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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