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독서수업을 하고 있다. 초등 저학년을 위한 그림책으로 안녕달 작가님의 '쓰레기통 요정'을 읽고 수업을 했다. 어느 날 쓰레기통에서 태어난 쓰레기통 요정은 쓰레기를 버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소원을 들어드려요'라고. 사람들은 갑자기 소리치며 나타난 쓰레기통 요정이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다. 쓰레기통 요정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소원을 빈 사람들은 모두 쓰레기통 요정이 소원을 들어준다. 왜 하필 쓰레기통 요정일까?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통에서 태어난 요정에게 편견 없이 소원을 비는 사람들만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였을까?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줄 마음에 신나서 소리치는 쓰레기통 요정의 등장에도 놀라지 않고 그 마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을 찾아 소원을 들어주려는 의도가 있었을까?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물었다. 만약 쓰레기통 요정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어떤 소원을 빌고 싶냐고. 동생을 갖고 싶다거나 학교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한두 명의 학생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학생들이 돈을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이렇게 어린 학생들의 소원이 10억을 주세요 100억을 주세요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덟 살의 나이에 돈이 소원일만큼 아이들은 돈이 궁핍했던 것일까? 그 돈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학생들은 게임 아이템을 사거나 엄마아빠한테 주고 싶다고 했다.
여덟 살 학생들이 10억, 100억이라는 아이들도 그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모르는 금액을 소원으로 비는 이유가 무엇일까? 씁쓸하지만 어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그대로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진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에 인기 있는 책들은 돈을 말하고 있다. 어디서나 만나면 주식이나 부동산을 이야기한다. 마치 이야기할 주제가 돈밖에 없는 것처럼. 그럴 수밖에 없다. 물가는 무섭게 오르고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 나만 하더라도 장을 볼 때마다 놀란다. 예전보다 적게 샀는데도 가격이 더 많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도 돈 이야기가 자주 나올 것이다. 가족이 모이는 시간, 집에서 나누는 돈이야기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동심이 아닌 돈심을 심어준 것이다.
내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십여 년 전에 학생들의 소원은 민족사관고등학교였다. 서울대였다.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에 사람들은 학원비에 돈을 많이 썼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좋은 학교에 가야 좋은 직업을 구한다고 했을 것이다. 좋은 학교에 가야 꿈을 이룰 수 있다고도 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서울대에 간 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 말에 답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걱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때는 꿈이 돈은 아니었다. 좋은 학교에 입학한 후에 생각해 볼 꿈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돈 자체가 꿈이다. 학교에 가지 않고도 돈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 10억 생기면 원하는 대로 게임아이템을 사는 것이 꿈인 아이들을 걱정해야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만약 나에게 소원을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지 생각해 봤다. 책이 사면에 쌓여있는 방에서 원 없이 책만 보며 살고 싶다고 했던 어린 시절의 소원을 그대로 빌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돈은 없어도 되니까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 못할 것 같다. 그런 내가 돈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이 사회를 걱정할 자격이 있을까? 우리 아이들에게는 돈심이 아니라 동심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돈이 아니라 파랗게 변하기 시작하는 가을 하늘을 봤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돈이 아니라 친구의 웃는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꿈에 돈도 있어야겠지만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하루에 한 번은 크게 웃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했으면 좋겠다. 지금 나이에 그런 소원을 빈다고 해도 자라면서 아이들은 돈을 원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할 것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돈이 없으면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아갈 것이다. 그 시간이 아이들에게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