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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24. 2021

딸이 아니어도 너를 사랑해

잘 키운 아들 열 딸 안 부럽다.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날도 나는 아들에게 일방적인 뽀뽀를 하며 사랑해 라고 말했다. 아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딸이었으면 엄마가 더 좋았겠죠?"


아들의 물음에 나는 놀랐다. 임신하기 전부터 나는 딸을 원했다. 아니 한 번도 내가 아들을 키울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딩크였던 때부터 남편은 '여보 우리 딸 하나만 키울까?'라고 나를 꼬셨다. 마치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딸을 낳을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나 역시 당연히 나는 딸을 낳을 사람이야 라고 생각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무모했다.


임신 5개월에 검진을 갔을 때였다. 초음파를 보던 내가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혹시 아들인가요? 제가 뭔가 본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지만 70프로 아들 맞네요."


나는 충격에 빠졌다. 내가 아들의 엄마가 된다니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임신을 확인하고부터는 매일 딸을 낳아서 키우는 나를 상상했다. 딸하고 같은 원피스 입고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나를 상상했다. 샤랄라 치마를 입은 아이와 카페에 앉아 있는 나만 상상했다.


그날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솔직히 울었다. 다음날까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내가 아들을 낳는다고? 딸 키우자며. 그리고 이성이 돌아오면 뱃속의 또미에게 사과했다. 또미야 미안해 엄마가 딸을 낳고 싶었지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어. 그러고 또 울었다. 1박 2일 후에 나는 완전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머릿속에 파란색 카디건을 입은 아들과 공원을 산책하는 나를 새기기 시작했다. 내가 쓴 육아일기를 읽던 아들이 그 날의 일기를 보고 물어온 것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일수록 당황하지 말고 최대한 솔직해야 한다. 어설픈 거짓말이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 나는 회상의 빠진 듯 아련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약간의 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지. 기억나."


또미는 말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진지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또미야 네가 읽은 것처럼 솔직히 엄마가 딸을 낳고 싶었던 건 사실이야. 엄마는 한 번도 내가 아들을 낳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


아들의 얼굴에 역시 하는 표정과 속상한 마음이 비쳤다.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수습이 잘 되고 있나 자신이 없었다.


"임신 5개월에 초음파를 보는데 엄마가 뭔가를 본 거야. 아들 같아서 선생님한테 물으니까 맞는 것 같다고 했어. 그날 엄마는 조금 놀랐어. 속상하기도 했고."


또미는 진지하게 내 말을 듣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심각한 표정이었다. 혹시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고 있다고 느끼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또미야 그건 너를 만나기 전의 일이야. 네가 이렇게까지 사랑스럽고 멋진 아들이라는 것을 알기 전의 일이라는 거지."


아들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보였다. 수습되고 있었다. 아들에게 쇄기를 박는 한마디가 더 필요했다.


"그리고 너를 키우면서 엄마는 항상 생각해. 딸 열을 데려와도 너랑 안 바꿀 거라고. 이 세상 누구보다 엄마는 너를 사랑해. 내가 딸을 낳았으면 어쩔뻔했어."


아들이 이번에는 씩 웃는다. 웃음을 참지 못한 표정이다. 마음이 놓인 표정이다. 다행이었다.


아들이라는 사실에 속상한 것은 정말 그 1박 2일이 전부였다. 나는 아들과 함께 멋지게 살아가는 나를 상상했다. 멋지게 살아가고 있진 않지만 아들과 나는 즐거웠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나는 아들에게 분홍색 옷을 입히거나 빨간색 모자를 씌우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걸었다. 사람들은 또미를 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얼굴이 딸 같기도 했지만 옷 색깔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입힌 것은 딸에 대한 미련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미가 남자이기 때문에 파란색이라는 고정관념을 갖지 않길 바래서였다. 그런데 6살에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아들은 파란색 옷을 사달라고 했다. 남자는 원래 파란색이라며.


사람들은 아들이 12살이 된 지금도, 내가 45살이 되었는데도 "엄마에게는 딸이 있어야 돼. 딸 하나 낳아." 하고 말한다. 엄마에게는 딸이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보면 아주 어린아이들도 딸은 엄마에게 살가운 것 같았다. 또미에게 그런 애교나 살가움은 없지만 또미는 어릴 때부터 엄마를 지키는 경호원 같은 구석이 있었다.

또미는 어릴 때부터 인형을 무서워했다. 어떤 인형이어도 무서워서 인형만 보면 울었다. 하루는 남편이 강아지 인형을 들고 엄마를 공격하는 장난을 하고 있었다. 또미는 인형이 무서워서 울면서도 나를 공격하는 강아지 인형을 막아줬다. 그때 남편도 나도 깜짝 놀랐다. 겁 많은 아들의 엄마사랑에 나는 감동받았다. 그 후에도 또미는 벌레를 보고 무서워하는 나를 위해 벌레를 잡아주기도 하고 초등학생이 되고부터는 장바구니를 들어주겠다고 허세를 부렸다. 아들의 귀여운 허세에 녹지 않을 엄마가 있을까.


다른 이유로 나에게는 반드시 아들이 필요했다. 나처럼 걱정 많고 겁 많은 엄마가 딸을 키우면 하루라도 편히 잠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도 뉴스 보기가 두렵고, 어린아이가 고통받는 뉴스를 보면 며칠을 잠이 안 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또미가 아들인 것은 신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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