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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19. 2021

또미는 엠블런스를 타고 왔다.

그해 겨울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출산 전 마지막 검진과 동시에 첫 내진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소파에서 쉬고 있었다. 이제 점심을 먹고 병원에 갈 준비를 해야지 하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였다. 찌이잉! 무슨 스타워즈 광선검 소리가 났다. 다른 곳도 아닌 내 몸에서. 실제로 그런 소리가 났는지 아닌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나는 정확하게 그렇게 들었다. 양수가 터지는 느낌이 나에게는 소리로 들렸던 것 같다.

 

처음에는 양수가 터졌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고, 임신 기간 중에 수없이 들었던 산모 수업에서 양수가 터지는 느낌이라든가 양수가 터졌을 때 대처법에 대해 들은 기억이 없었다. 나는 몸이 안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침대로 가서 누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몸에서 물이 빠져나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집에는 혼자 있는데 몸에서 물이 나오는 배가 남산만 한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드라마에서는 한밤중이나 새벽, 아니면 가족 모두가 저녁을 먹는 시간에만 진통이 오고 임산부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으로 향하는데 그런 아름답고 안정적인 분위기는 현실이 아니었다.

 

나는 몸에서 흐르는 물을 보면서 생각했다. 운전을 하고 병원으로 혼자 간다. 운전 중에 갑자기 진통이 오면?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간다면? 아파트를 나가서 버스나 택시를 기다리는, 물이 줄줄 흐르는 나를 상상했다. 눈까지 내리는데 가다가 넘어질지도 모르고 물에 젖은 나는 틀림없이 추울 것이다.

 

나는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양수가 터진 것 같다고 구급차로 병원에 갈 테니까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남편의 떨리고 긴장되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나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빨리 와도 나보다 빨리 병원에 도착할 수는 없을 테니까 최대한 조심해서 오라고 하고 전화를 끊고 119를 눌렀다.

 

바닥에 쏟아진 양수를 대충 닦고 구급대원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급차의 내부를 실제로 본 경험이었다. 양수가 터지긴 했지만 진통은 없었기 때문에 너무 멀쩡한 정신으로 구급차에 앉아 있으니까 자꾸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애 낳는 연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병원은 집에서 10분 거리였다. 민망함에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혼자 병원에 가야 했던 것은 아닐까?


병원에 도착하자 촉진제를 주사했다. 그리고 첫 내진을 시작으로 수시로 내진을 핑계로 나를 찔러댔다. 나는 내가 '로마의 휴일'의 진실의 입이 아닌가 생각했다. 내진을 하는 간호사도 그랬겠지만 나도 끔찍했다. 게다가 임신기간 중에 그렇게 운동을 했건만 내 몸은 출산에 부적합했다. 조금도 아기를 낳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밤새도록, 그리고 다음날이 될 때까지도 내 몸은 처음 병원에 들어갈 때와 같았다. 이러다가 양수가 부족해서 큰일이 날 거라고 했다. 간호사가 나를 강제로 운동을 시켰다. 병원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굶었는데 잠도 못 잤는데 운동까지 하라니 거 너무 심한 거 아니요?


다행히 운동 덕에 나는 힘줘! 침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힘줘! 를 외쳐도 아기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20대 초중반의 간호사는 산모님 제대로 힘주세요 이러면 애 못 낳아요 제대로! 를 짜증스럽게 외쳤다. 나도 그렇고 싶었다. 너보다 내가 더 그러고 싶다. 제발 나보다 더 아픈 것처럼 굴지 말아 줄래!


결국 나는 수술실로 끌려갔다. 간호사가 내 배 위에서 눌렀는데도 아기를 낳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때서야 나타났다. 자! 산모님 잘하고 있어요. 한 번만 더 해 보고 안 되면 수술합시다. 뭘 잘하고 있다는 거지? 이제야 나타나서 지난 24시간의 나의 어디 부분이 잘하고 있다는 것일까? 의사는 네 잘하고 있어요 좋아요 를 반복했다. 그리고 수술실에 들어간 지 10분도 안 됐는데 아기가 태어났다. 내가 병원에 도착하고 정확히 24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수술실에는 들어올 수 없어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그때서야 수술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간호사가 태어난 아기를, 첫 목욕도 하기 전의 아기를 내 품에 안겨줬다. 아기는 난산으로 인해 얼굴과 몸에 피가 많이 묻어있었고 찐빵처럼 김이 모락모락 났다. 산도에 걸린 시간만큼 머리가 외계인처럼 길어져 있었다. 의사는 며칠 지나면 머리는 동그랗게 돌아올 거라고 했다. 태지도 거의 없고 주름도 없는 아기는 정말 예뻤다. 나의 아기 또미를 품에 안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둘째를 낳아야겠어!


나는 평생 이렇게 무언가를 열심히 해 본 적은 없었다. 지난 24시간 동안 나는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못 자면서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진통과 내진을 하러 오는 간호사의 공포스러운 슬리퍼 소리를 들으면서 버텼다. 오직 나의 아기 또미를 만나기 위한 시간이었다. 나는 아픈 것은 조금도 못 참아서 나이 서른에 치과에서 마취주사를 맞기 위해 어린이용 마취연고를 먼저 바르고 주사를 맞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24시간의 진통과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사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의연하게 해냈다. 내가 이렇게 용감하고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나는 남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남편에게 욕을 하지도 않았다. 참 좋은 출산이었다.


다음 날 거울을 보고 나는 기절할 뻔했다.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심지어 눈까지. 진통을 하면서 얼굴과 눈의 실핏줄이 다 터졌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충격받을까 봐 말 못 했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얼굴이 진정되고 알기를 바랐다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애도 낳았는데 그깟 실핏줄 몇 가닥 터진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떨 필요가 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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