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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29. 2021

유모차 외출을 위해 선글라스를 샀다.

아이가 5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드디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외출할 결심을 했다. 아이가 백일이 될 때까지 병원에 예방 접종하러 가는 일 외에는 외출을 한 적이 없었다. 12월생인 아들이 외출을 하기 좋은 시기에 계절도 마침 여름을 향해가고 있었다. 아이와 유모차 첫 외출을 앞두고 나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유모차 외출을 위해 선글라스를 사러 간 것이었다. 남편은 왜 선글라스가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미쿡배우들이 아이와 외출할 때 선글라스를 쓰고 다닌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선글라스를 쓴 엄마와 아기라니 외출 전부터 벌써 간지 나는 기분이었다.


대망의 그날, 나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조금 무리해서 산 선글라스를 쓰고 집을 나섰다. 미쿡배우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에 고개가 저절로 꼿꼿해졌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았다. 유모차가 처음이라 아이가 울면 어쩌나 했는데 일단 공동현관을 나갈 때까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날 때까지도 아이는 신기한 듯 눈을 똘망똘망 뜨고 있었다. 느낌이 좋았다. 오늘 외출이 대단히 성공적일 거라는 느낌이 왔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마트까지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5분쯤 지나면서 아이는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처음에는 인상만 쓰는 정도였지만 점점 찡얼거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아이도 좋아할 거라는 기대로 조금 더 걸었다.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오~~~ 괜찮아. 불편해서 그래? 처음이라 낯설지? 아무리 달래도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유모차에 태울 거라 아기띠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돌아서 집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금방 울음을 그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마트를 갈 것인지. 나는 용감하게 마트로 가는 길을 택했다. 마트에는 수유실이 있으니까.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마트에 도착했다. 수유실로 직행해서 아이의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주었다. 다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마트 나들이를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제일 많이 간 곳이 마트일 것이다. 마트는 아이와 엄마가 그나마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것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우선 수유실이 있다. 마트의 화장실은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기에 편하게 되어있다. 아이가 울어도 노 키즈존이라며 나가라고 하거나, 시끄럽다고 하는 사람이 거의(아마 전혀) 없다. 아무튼 나는 마트 지하에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찬거리도 샀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알지 못했다. 유모차의 진짜 용도에 대해서. 유모차는 보통 아이를 태우고 외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마트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동안 아이가 너무 심하게 울어서 나는 아이를 안고 빈 유모차를 밀면서 집으로 왔다. 유모차 바구니에 찬거리를 담은 채 빈 유모차를 한 손으로 밀었다.  한 손으로 아이를 안은 채였다. 유모차의 진짜 용도는 장바구니였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아이를 안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중간 쉬어야 했다. 유모차를 미는 손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무 힘들어서 내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지, 땀에 얼굴이 벌게졌는지도 몰랐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를 눕히고 나서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힘이 들었다. 손을 닦기 위해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한 여자가 선글라스를 쓰고 서 있었다. 정말 처참해서 못볼꼴이었다. 순간 웃음이 날만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세상에 아이를 키우면서 스타일을 생각하다니 내가 너무 무모했던 것이다. 역시 미쿡배우이기에 가능했던 모양이다. 한 손으로 스타일 좋게 아이를 안고 선글라스를 쓴 배우가 여유 있게 웃는 것은 내게는 묘기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도 나는 마트에 갈 때 유모차를 끌고 갔다. 아이를 태우기도 하지만 몇 분 안에 아이를 안아야 했기 때문에 아기띠도 꼭 챙겼다. 유모차 밑에 바구니에 찬거리들을 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유모차의 진짜 중요한 기능은 바로 장바구니였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것이다. 엄마들이 왜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지 않고, 유모차가 있음에도 아이를 안고 마트로 향하는지. 식당도 카페도 불편한 엄마들이 마음 편하게 유모차를 끌고 활보할 수 있는 유일하다시피 한 공간이 마트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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