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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06. 2021

카시트가 자동차를 방전시켰다고?

아이의 출산이 다가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카시트였다. 카시트가 없으면 산부인과에서 집까지 오는 십오 분 동안 무슨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남편은 백화점에서 카시트를 사고 직원에게 설치방법을 꼼꼼하게 물어봤다. 카시트를 차에 설치하고 든든했다. 이제 언제든지 아이를 낳아도 될 것 같았다.


3일간의 출산 입원을 끝내고 집으로 올 때 아이는 카시트에 첫 시승을 했다. 얌전하게 앉아있는 아이가 어찌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이 카시트만 있으면 아이와 어디든 다닐 수 있겠지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카시트에서 울지 않았던 것은 그날 하루뿐이었다.


병원에 예방접종을 하러 가려고 카시트에 태우면 아이는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울었다. 처음에는 '안아주세요.' 하듯 찡얼거리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안아주지 않으면 폭격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래도 아이를 카시트에서 내려 안아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카시트에서는 울어도 안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줘야 했다. 아이가 운다고 아이의 안전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몇 번 울다가 말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매번 차를 탈 때마다 아이는 울었다. 차를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그래도 우리 부부는 아이를 안아주지 않았다. 아이와 우리가 기싸움하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안아주면 바로 울음을 그칠 텐데 그 쉬운 것을 못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정말 심장이 쫄아드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안아주는 대신 아이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너를 카시트에 태우지 않고 안아줄 수 있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을 거야. 너를 더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야. 대신 엄마가 니 옆에 있을게. 그리고 니 손을 절대 놓지 않을게.'라고 차에서 내릴 때까지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물론 그렇게 해도 아이는 내릴 때까지 울었다.


가끔 부모님이 차에 탈 때가 있었다. 우는 아이를 안 달래고 카시트에 태우는 우리를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서 아이를 안아서 달래라고 했지만 우리는 부모님의 말도 듣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면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차 타고 가는 곳은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외출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를 안고 걸을 수 있는 곳만 외출했다. 꼭 가야 하는 병원이나 명절 외에는 차를 쓰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17개월쯤 되면서 카시트에서 우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점점 울지 않다가 나중에는 편안하게 잠이 들기도 했다. 점점 아이와 외출하는 것이 편해졌다.


오랫동안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고 외출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시동을 거는데 걸리지 않았다. 당황했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아마 오래 차를 쓰지 않아서 방전된 것 같다며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라고 했다. 운전을 시작한 지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보험회사에서 나온 분이 간단하게 차를 충전하고 나서야 외출할 수 있었다. 내가 차를 쓰면서 방전된 것은 처음이라 사실 자동차에 배터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6살까지 아이와 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카페를 다니며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아이가 6살이 되면서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아이를 데려올 때까지 나는 자유부인이 된 것이다.


그날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는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다. 백화점 물건은 다 비싸서 사실 눈으로만 하는 쇼핑이지만 나는 가끔 그 시간을 좋아했다. 두 시간 남짓 백화점을 돌다가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자동차 시동이 또 걸리지 않았다. 나는 훗 웃음이 났다. 이쯤이야 이제 당황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지. 하면서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직원분이 오셔서 보닛을 열어서 배터리를 연결했다. 그리고 시동을 걸었는데 걸리지 않았다.


직원분이 다시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자 당황하신 것 같았다. 잠시 차를 안팎으로 살피시던 직원분이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어 나를 불렀다. 나는 긴장했다. 배터리 문제가 아니라 차가 고장 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직원분이 기어를 가리켰다. 나는 왜? 하는 표정이 되었다. 기어를 보고 있어도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기어가 후진에 있죠? 기어를 후진에 놓으면 시동이 안 걸려요.'라고 말하는 직원분의 말투에는 한심하긴 하는 말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기어는 후진에 걸려 있었다. 직원분은 형식적인 인사만 남기고 휙 하니 가버렸다. 혼자 남은 주차장에서 나는 창피하고 황당해서 자꾸 웃음이 삐져나왔다. 기어가 후진에 있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 나이까지 몰랐다는 사실이 웃겼다. 분명 면허시험 볼 때 공부했을 텐데 새까맣게 까먹은 모양이다. 차가 방전됐다고 보험회사에 전화한 것이 너무 창피해서 웃었다. 그러다가 내가 이제까지 이걸 몰랐다는 건 그동안 기어를 후진에 놓고 시동을 걸지 않았으니 나름 모범운전자가 아닌가 위로하면서 웃었다.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운전만 해온 나에게 닥친 당연한 결과였다. 이게 다 카시트 때문이었다. 카시트로 차가 방전되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당연하게 보험회사에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황당한 투정까지 부려가며 한참을 웃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12살이 된 아이는 지금도 카시트에 앉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주니어로 교체한 것이다. 아이의 친구들이 가끔 차에 탈 때 아이는 '나 아직도 카시트 해. 대단하다. 아직도 카시트 한다.'라고 먼저 말할 때가 있다. 아이의 친구들이 차에 탈 때마다 '너 아직도 카시트 해? 너 아기야?'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는 친구들의 그 말이 은근 신경 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선수 쳐서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카시트는 12세까지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카시트 없이 아이에게 안전벨트를 매 봤다. 턱밑에서 벨트 줄이 닿을락 말락 했다. 아직은 카시트를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12월 생인 데다 또래보다 작은 아이는 초등학생까지는 카시트를 써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주변에 카시트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도 그냥 아이를 엄마가 안고 차를 타는 것을 자주 봤다. 심지어 아기를 안고 앞자리 보조석에 앉는 지인도 있었다. 카시트에 태우면 아이가 울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카시트를 턱 하니  설치하고서도 아이는 엄마가 안고 타는 경우도 봤다. 나는 아이를 안고 차에 타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차나 택시를 이용하지 않았다. 불편해도 걷거나 내 차를 이용하려고 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아이에게 엄마의 품이 아니라 카시트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카시트에 적응하는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한번 적응하고부터는 카시트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가 실수로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출발하면 '엄마 안전벨트 안 했어요.'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안전벨트를 맨다고 해서 모든 사고에서 안전할 수 없겠지만 아이를 위해 카시트와 안전벨트의 중요성을 아이에게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최소한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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