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세상의 모든것은 실체가 없다

by 도우너 킴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을 막연한 허무로 오해했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 붙잡을 것이 없다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은 차갑고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삶을 조금 더 살아보니, 공은 비워진 자리에 남는 ‘공백’이 아니라 가득 채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한자로 空은 ‘구멍 혈(穴)’과 ‘장인 공(工)’이 합쳐진 글자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가 아니라, 무언가가 들어올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비워진 상태를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도 그렇다.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질 뿐이라는 가르침은 ‘아무것도 의미 없다’가 아니라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잠시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가르침을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에서 가장 선명하게 느꼈다. 자식은 나의 연장이 아니고, 내가 기대한 모습으로 살아 줄 의무도 없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내가 바래고 기대하는 형상이었던 것이었다. 그 기대를 내려놓자 아이와 나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믿음과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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