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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꼬 Mar 14. 2023

시골 카페 실장되다

돈 받고 하는 직업 체험기, 현실판 키자니아

제가 시골 유학을 오면서 1년 동안 월세로 살기로 한 집은 펜션을 하고 있는 곳이에요. 지금은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마을 꽃축제가 시작해 손님들이 찾아오고 있죠. 저희 집주인님이자 펜션의 사장님은 예쁜 것을 좋아라 하는 분이세요. 그래서 창으로 소담한 시골 풍경이 보이는 예쁘게 꾸며진 메인 공간에 작은 카페를 운영하셨다고 해요.


 한창 이른 봄 꽃이 피는 이 시기에 다시 카페를 오픈할까 고민하셨지만, 성수기 펜션 관리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 엄두를 못 내고 계셨던 참이었답니다.


때마침 등장한 저란 세입자.


"여기서 뭐 일은 안혀요?"

"전에 일하던 곳에서 아르바이트받아서 조금씩 하려고요."

"아, 그라구만. 난 뭐 쫌 같이 할까 싶었는디."

"무슨 일인데요?"


하고 싶은 거 많은 욕심쟁이가 뭔가 하나 새로운 경험을 눈앞에 두고 그냥 지나칠 리 없습니다. 덥석 사장님이 내민 손을 잡아버렸네요. 그렇게 과거의 저는 설레는 마음만 가지고 축제 기간 주말에만 5시간 정도 카페 업무를 맡아서 해보기로 했습니다. 미래의 제가 또 저를 쳐다 보내요.


'너... 또 시작이구나.'

 

"내가 (삐꼬 엄마 손을) 자븐 것이 아니라 삐꼬 엄마가 (내 손을) 자븐 것이여."

"사장님이 바람 넣으셨잖아요."

"바람은 불믄 날라가분디 자블라는 사람이 있으니 자퍘지."


매출 대비 하루 일당을 지급받기로 했어요. 그 지분을 좀 더 높은 퍼센트를 네고하였지만 장사 만렙인 사장님께 바로 까이고,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외 조항을 하나 달아 두었습니다.

 

[하루 매출이 OO만원 이상일 경우, 이실장에게 기분 좋은 일이 생긴다.]

이실장이 누구나고요? 바로 저예요.

 

이렇게 저는 사장님이 불어 준 바람에 정신없이 치맛자락 흔들며 카페 실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누가 그랬더랬죠.

역시 옛말은 틀린 거 없다더니, 이 말도 여지없이 맞네요. 치맛자락 신나게 흔들며 호기롭게 시작했던 카페일녹녹지 않았습니다.


장사가 시작되면 저는 임시 알바생으해야 할 일들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매출 대비 일당이라는 급여 책정 방식, 이실장이라는 명함은... 네,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사 준비부터 실장급으로 했어야 했으니깐요. 제조법도 명확하게 인수인계 해주실 줄 알았는데 뭔가 두리뭉실한 것이... 네,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는 있으면 팔고, 없으면 안 파는 시골 카페니깐요.


전날 부랴부랴 메뉴판을 만들고, 사장님이 자세히 알려주지 않은 제조법은 인터넷을 검색하여 숙지하였어요. 다음날 메뉴를 하나씩 만들어 보며 익히기 위해 아침 일찍 카페에 출근했죠.


그런데... 얼음을 얼려두셨다고 했는데, 덜 얼었네요. 부랴부랴 남편을 시켜 마트에서 얼음을 사 왔습니다.

그런데... 우유도 없네요. 딸내미를 시켜 우유도 사 왔어요.

어라? 홀더가 몇 개 없네요... 종이컵 하나 더 끼워 드리면 되죠.

잉? 테라스에 탁자와 의자가 없네요... 남편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옮깁니다.

흐음... 빼놨던 입간판이 더럽네요. 물청소하고요.



느긋한 사장님과는 다르게 저는 마음이 급합니다. 뭔가 주먹구구식으로 카페를 오픈하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손님을 맞아 봅니다. 음료가 빨리 나오도록 동선도 짜고, 머릿속에 제조법을 되뇌면서 미리 컵의 위치와 쟁반의 위치도 잡아 둡니다.


한 두 팀이 시간 간격을 두고 올 때는 카페 실장 노릇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도 할 만하다 생각하며 여유 있게 음악을 들으며 앉아 있어도 봅니다. 하지만 여러 팀이 한꺼번에 들어오자 이런... 정신이 없으니 오히려 행동이 굼떠집니다.


안 되겠다 싶어 첫째를 알바로 채용했어요. 서빙하고 카드 결제를 하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놀이 하듯 신이 났네요. 손님이 가시면 테이블도 치워줍니다. 의자도 예쁘게 밀어 넣어주네요. 손이 꽤 야물딱져요. 쑥스럼 많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딸이 '맛있게 드세요.' 인사도 합니다.



치맛자락 펄럭이며 들떴던 애미는 옆에서 커피 내리랴, 우유 스팀하랴, 설거지하랴... 머리에 꽃 꼽기 일보 직전이지만 왠지 뿌듯합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몹시 피곤한 상태로 업무가 종료되었어요. 퇴청에 앉아 멍하니 먼산을 봅니다.  


'내가 뭐 하러 이걸 했을까?'

'남의 돈 벌기 쉽지 않다는 거 진즉 알고 있으면서 무슨 짓을 한 거지?'


역시 세상 쉬운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누가 경험이 전무한 40대 중반을 카페 실장에 앉혀줄까요. 시골이니 이런 기회 주어지지 않았나 생각하니 또 감사한 마음이 듭니. 


첫째도 이 경험이 기억에 오래 남을 거라 하네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요. 웃으며 인사해 주는 손님들에게 고마웠다 합니다. 그럼 되었지요. 키자니아에 가서 돈 주고 하는 직업체험을 돈 받고 했으니 오히려 이득입니다.


피곤했는지 다리 아프다며 레드썬으로 잠 든 첫째에게 알바비라도 줘야겠어요. 시간당 최저 시급은 못 맞춰줄 것 은데, 애미를 신고하진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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