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카페 실장되다

돈 받고 하는 직업 체험기, 현실판 키자니아

by 삐꼬

제가 시골 유학을 오면서 1년 동안 월세로 살기로 한 집은 펜션을 하고 있는 곳이에요. 지금은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마을 꽃축제가 시작해 손님들이 꽤 찾아오고 있죠. 저희 집주인님이자 펜션의 사장님은 예쁜 것을 좋아라 하는 분이세요. 그래서 창으로 소담한 시골 풍경이 보이는 예쁘게 꾸며진 메인 공간에 작은 카페를 운영하셨다고 해요.


한창 이른 봄 꽃이 피는 이 시기에 다시 카페를 오픈할까 고민하셨지만, 성수기 펜션 관리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 엄두를 못 내고 계셨던 참이었답니다.


때마침 등장한 저란 세입자.


"여기서 뭐 일은 안혀요?"

"전에 일하던 곳에서 아르바이트받아서 조금씩 하려고요."

"아, 그라구만. 난 뭐 쫌 같이 할까 싶었는디."

"무슨 일인데요?"


하고 싶은 거 많은 욕심쟁이가 뭔가 하나 새로운 경험을 눈앞에 두고 그냥 지나칠 리 없습니다. 덥석 사장님이 내민 손을 잡아버렸네요. 그렇게 과거의 저는 설레는 마음만 가지고 축제 기간 주말에만 5시간 정도 카페 업무를 맡아서 해보기로 했습니다. 미래의 제가 또 저를 쳐다 보내요.


'너... 또 시작이구나.'

"내가 (삐꼬 엄마 손을) 자븐 것이 아니라 삐꼬 엄마가 (내 손을) 자븐 것이여."

"사장님이 바람 넣으셨잖아요."

"바람은 불믄 날라가분디 자블라는 사람이 있으니 자퍘지."


매출 대비 하루 일당을 지급받기로 했어요. 그 지분을 좀 더 높은 퍼센트를 네고하였지만 장사 만렙인 사장님께 바로 까이고,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외 조항을 하나 달아 두었습니다.

[하루 매출이 OO만원 이상일 경우, 이실장에게 기분 좋은 일이 생긴다.]

이실장이 누구나고요? 바로 저예요.

이렇게 저는 사장님이 불어 준 바람에 정신없이 치맛자락 흔들며 카페 실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누가 그랬더랬죠.

역시 옛말은 틀린 거 없다더니, 이 말도 여지없이 맞네요. 치맛자락 신나게 흔들며 호기롭게 시작했던 카페일은 녹녹지 않았습니다.


장사가 시작되면 저는 임시 알바생으로 해야 할 일들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매출 대비 일당이라는 급여 책정 방식, 이실장이라는 명함은... 네,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사 준비부터 실장급으로 했어야 했으니깐요. 제조법도 명확하게 인수인계 해주실 줄 알았는데 뭔가 두리뭉실한 것이... 네,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는 있으면 팔고, 없으면 안 파는 시골 카페니깐요.


전날 부랴부랴 메뉴판을 만들고, 사장님이 자세히 알려주지 않은 제조법은 인터넷을 검색하여 숙지하였어요. 다음날 메뉴를 하나씩 만들어 보며 익히기 위해 아침 일찍 카페에 출근했죠.


그런데... 얼음을 얼려두셨다고 했는데, 덜 얼었네요. 부랴부랴 남편을 시켜 마트에서 얼음을 사 왔습니다.

그런데... 우유도 없네요. 딸내미를 시켜 우유도 사 왔어요.

어라? 홀더가 몇 개 없네요... 종이컵 하나 더 끼워 드리면 되죠.

잉? 테라스에 탁자와 의자가 없네요... 남편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옮깁니다.

흐음... 빼놨던 입간판이 더럽네요. 물청소도 하고요.



느긋한 사장님과는 다르게 저는 마음이 급합니다. 뭔가 주먹구구식으로 카페를 오픈하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손님을 맞아 봅니다. 음료가 빨리 나오도록 동선도 짜고, 머릿속에 제조법을 되뇌면서 미리 컵의 위치와 쟁반의 위치도 잡아 둡니다.


한 두 팀이 시간 간격을 두고 올 때는 카페 실장 노릇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도 할 만하다 생각하며 여유 있게 음악을 들으며 앉아 있어도 봅니다. 하지만 여러 팀이 한꺼번에 들어오자 이런... 정신이 없으니 오히려 행동이 굼떠집니다.


안 되겠다 싶어 첫째를 알바로 채용했어요. 서빙하고 카드 결제를 하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놀이 하듯 신이 났네요. 손님이 가시면 테이블도 치워줍니다. 의자도 예쁘게 밀어 넣어주네요. 손이 꽤 야물딱져요. 쑥스럼 많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딸이 '맛있게 드세요.' 인사도 합니다.



치맛자락 펄럭이며 들떴던 애미는 옆에서 커피 내리랴, 우유 스팀하랴, 설거지하랴... 머리에 꽃 꼽기 일보 직전이지만 왠지 뿌듯합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몹시 피곤한 상태로 업무가 종료되었어요. 퇴청에 앉아 멍하니 먼산을 봅니다.


'내가 뭐 하러 이걸 했을까?'

'남의 돈 벌기 쉽지 않다는 거 진즉 알고 있으면서 무슨 짓을 한 거지?'


역시 세상 쉬운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누가 경험이 전무한 40대 중반을 카페 실장에 앉혀줄까요. 시골이니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나 생각하니 또 감사한 마음이 듭니.


첫째도 이 경험이 기억에 오래 남을 거라 하네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고요. 웃으며 인사해 주는 손님들에게 고마웠다 합니다. 그럼 되었지요. 키자니아에 가서 돈 주고 하는 직업체험을 돈 받고 했으니 오히려 이득입니다.


피곤했는지 다리 아프다며 레드썬으로 잠이 든 첫째에게 알바비라도 줘야겠어요. 시간당 최저 시급은 못 맞춰줄 것 같은데, 애미를 신고하진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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