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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꼬 Mar 18. 2023

시골 학교, 제 점수는요

엑셀과 브레이크를 같이 밟으면?

시골 학교에 다니는 딸내미는 요새 즐겁습니다. 사춘기 출발선에서 부릉거리며 시동을 걸고 있는 첫째는 제가 농촌 유학을 결정한 큰 이유 중 하나예요.


우리 딸은 엑셀과 브레이크가 공존하는 아이입니다.

하고 싶은 모든 걸 잘하고 싶지만 주목받는 걸 싫어하죠. 학교에서 발표를 하고 싶어도 절대 손들지 않아요. 시켜줄 때까지 기다립니다. 숨고 싶지 않지만 숨겨지는 아이, 그래서 누군가에 의해 가끔은 드러나 보이고 싶은 아이.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누르기에 앞으로 달려 나가고 싶지만 멈춰져 있을 때가 많은, 그런 아이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서울의 25명이 훌쩍 넘는 교실은 우리 아이가 숨겨지기에 딱 좋은 환경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에게 물었어요.


"작은 학교 어때? 좋아?"

"응, 좋아."

"뭐가 좋아?"

"몰라, 그냥 좋아."

"말해줘. 그래야 엄마가 글로 쓰지.(웃음)"

"(웃음) 알았어. 음... 우선..."


"첫 번째로 선생님이 너무 좋아. 예전 3학년 선생님 같아."

딸은 3학년 때 선생님을 가장 좋아했었어요.


"둘째로 손을 안 들어도 발표할 수 있어. 다 기회를 줘."

아! 바로 제가 원하던 일입니다.


"그리고 6학년이랑 합동 수업을 할 때가 있는데 특히 체육이 재미있어. 서울에서는 그냥 피구를 했다면 여기서는 초능력 피구를 해."

역시 노는 게 제일 좋죠.


"또 중간 놀이 시간 30분이 있어서 좋아."

처음에 쑥스러워 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같이 나가 주셨다는 선생님, 감동입니다.


"그리고 언니들이 밝아. 그래서 학교가 밝은 가봐."

친절하게 말 걸어주는 선배 언니들에게 무한 고마움을 느껴요.


학교를 다녀오는 아이의 첫 얼굴은 항상 웃고 있어요. 사실 서울에서는 학교 얘기를 잘 해주지 않아 못내 서운했던 경우가 많았어요. 우리 아이의 이야기를 돌고 돌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은 적이 많았더랬죠. 여기에서는 같이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럴까요? 아이의 입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이런저런 얘기를 해줘요.


"엄마, 오늘 어떤 후배가 나한테 예쁘다고 했어."

"진짜? 몇 학년인데? 이름이 뭔데? 언제 그랬어?"

학교 얘기를 해준 반가움에 질문이 터집니다.


"몰라. 근데 나보다는 어려. 나한테 '언니, 0학년이지? 예쁘다.' 하더라."

"너무 고맙고 예쁜 친구네. 참 밝은 아이 같다."

내 자식 칭찬해 준 아이는 무조건 착한 아이입니다.


물론 앞으로 지내면서 웃지 못할 일들이 생기겠죠. 가령 친구와 다툰다거나, 또는 친구와 싸운다거나... (이 나이에는 친구가 전부 아니겠어요?) 그래도 숨을 곳 없는 학교에서 도망치지 않고 불편한 상황과 감정을 맞닥뜨리길 바랍니다. 그래서 본인이 겪는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좀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해요.



한 학부모님이 시골 학교는 숨을 곳이 없는 학교라 좋다고 하셨어요. 크게 동감합니다. 우리 아이처럼 숨겨졌던 아이도, 스스로 숨었던 아이도 시골 학교에서는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부끄러워 못내 등 돌렸던 아이가 용기를 내어 내미는 한 발이던, 등 떠밀린 아이가 억지로 내미는 한 발이던, 이 시골 학교라는 공간은 그 한 발을 스스럼없이 디딜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내딛는 모든 발걸음을 응원하고 격려합니다.


시골 학교, 제 점수는요... 95점입니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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