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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Dec 27. 2023

내 하루의 파티오

파티오라금

































오늘 나는 침대에서 오래간만에 늑장 부렸다. 큰 창으로 하얀 하늘이 가득한데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누워만 있었다. 준의 전화에 느적느적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무슨 옷을 입을까 평소에 잘 입지 못 하는 옷 입고 멋을 좀 부려볼까 하다가 결국은 매일 입는 편안하고 따스한 옷을 입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소중하게 보내야지. 오늘이 지나면 무려 일주일 간의 긴 출장이 기다리고 있고, 주말과 집은 나에게 더욱 애틋한 것이 되었다.




     선물 받았는데 아직 한 번도 들지 않은 새 가방에 좋아하는 책 한 권, 읽던 잡지 한 권, 일기장과 작은 생각 노트, 펜 하나와 연필 한 자루, 올리브 향이 나는 향수를 챙겨 넣고는 세탁소부터 갔다. 오래 미뤄두었던 운동화 세탁을 이제는 정말 챙길 때였다. 그리고는 브런치를 먹으러 근처의 카페로 갔다. 이런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 이 동네에 이사 올 이유는 충분하다는 후기가 있던 카페였다. 나도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카페 하나로 동네 전체에 사로잡히곤 했다. 동네를 대변하는 듯한, 동네의 분위기가 되어주는 듯한 공간을 우연히 만나면 금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늘 방문한 카페는 정말 이웃 주민들이 편안하게 오가는 장소라는 것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갓 구운 빵 냄새와 커피향이 솔솔하고, 창으로는 잎사귀들이 가득. 맞은편에 앉으신 아주머니가 두 눈을 꼬옥 감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는 것이 졸고 계시는 것처럼 보이기보다는 리듬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오후에는 책방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 두 권을 사고 근처의 식물 가게에 갔다. 사실 오늘 하루의 가장 커다란 미션이 바로 집에 둘 식물을 사는 것이었다. 플랜트 숍에 도착해 찬찬히 둘러보던 와중 빼죽하게 줄기를 내고 있는 파티오라금에게 눈길이 갔다. 줄기의 끝에는 아주 작은 연둣빛 잎도 귀엽게 나고 있었다. 파티오라금의 학명은 유포르비아 티루칼리. 길쭉하고 단단한 줄기 덕에 연필 선인장이라고도 불린다. 다육식물이라 물을 많이 주면 안 돼요. 고사리와는 다른 직선적인 매력에 이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녀석이었는데, 물을 가끔 주어도 괜찮은 식물이라길래 바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파티오라금을 들고 기분좋게 가게 밖으로 나오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졌다. 역까지 거리는 꽤 되는데 근처에 우산을 파는 편의점은 없고, 입고 있던 가디건 안으로 그를 우선 피신시켰다. 빗물에 푹 젖어버리면 어쩌지 노심초사하며 역까지 잰걸음. 파티오라금은 과습에 취약하다. 물은 10일에 한 번 정도, 속흙이 마르거나 줄기가 힘없이 쪼그라들 때 주면 된다.




     집으로 돌아와 햇빛을 좋아하는 파티오라금에게 침대맡 창가 자리를 선사했다. 다행히 그에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고, 머리맡에 초록 몸이 보이는 풍경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커다란 창과 심적 여유가 있어 나는 드디어 식물을 집안에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식물은 무슨, 나는 나부터 잘 키워야 돼. 볕이 잘 들지 않는 좁은 방 안에서 나 하나 살기도 힘든데 식물의 삶까지 책임진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집에도 잎과 줄기, 생명이 자란다. 창으로는 식물에게, 그리고 나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볕이 든다. 파티오가 있음으로써 나의 집을 사랑할 이유는 하나가 더 늘었다. 나도 이 집에 온지 한 달도 안 되었어. 같이 잘 살아보자. 영어로 파티오(Patio)는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테라스 정원이나 중정을 뜻한다. 내 파티오라금 역시 아늑한 나만의 장소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만끽할 수 있게 해 주기에 이름을 파티오로 지었다. (파티오라금의 파티오가 Patio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나의 아침과 저녁에 파티오가 함께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이렇게 마음이 가는 것들을 내 땅에 심으며 살아야지. 그러면서 나도 한 뼘 한 뼘 자랄 수 있을 테다.





- 이름 : 파티오

- 함께한지 : 3개월

- 사는 곳 : 경의 집 햇빛 잘 드는 창가

- 특징 : 

1. 여기 좀 봐달라는 듯 팔을 죽 내밀며 자란다.  

2. 직선적인 생김새지만 사실 줄기의 끝은 둥글고, 작은 연둣빛 잎이 달려 귀여운 구석이 있다.

3. 줄기를 아래로 축 늘어뜨리며 목마른 티를 내기 때문에 물 줄 때를 알아차리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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