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하게 살자

설화 '자청비와 문도령'

by 장아연
자청비: 농업을 담당하는 세경신


자청비는 김진국 내외가 마흔이 다 되어서야 얻은 첫 딸이다. 태어날 적부터 씩씩하고 호탕한 자청비는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어느 날, 자청비는 주천강 여울로 빨래하다가 문도령을 만난다. 문도령은 옥황 문선왕의 아들이며 글공부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자청비는 얼른 부모님께 글공부를 하고 오겠다고 말하며 남장하고 문도령과 동행했다.


두 사람은 3년 동안 함께 공부했다. 문도령은 자청비가 여자임을 의심해서 달리기, 씨름 등등 내기했지만 전부 다 자청비가 이겼다. 함께 하산한 두 사람은 주천강 여울에서 목욕한다. 그때 자청비는 자신이 여자임을 밝힌다. 문도령이 하늘로 올라가기 전, 두 사람은 자청비네 집에서 배필을 맺었다. 하지만 문도령은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


"이 호박이 다 자라기 전에 돌아오겠소."


문도령은 자청비에게 호박씨를 주고 떠났다. 호박이 다 자라도 문도령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청비는 괜히 하인 정수남에게 화풀이했다. 정수남은 나무를 해올 테니 식량을 챙겨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산으로 간 정수남은 나무는커녕, 식량만 축냈다. 정수남은 기지를 발휘하여 도둑맞았다고 거짓말한다. 자청비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정수남과 산으로 동행한다.


정수남은 자청비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으며 자신과 혼인하자고 한다. 문도령이 다른 선녀와 놀아났다는 거짓말도 지어낸다. 분노한 자청비는 정수남을 죽인다. 정수남의 혼령은 부엉이가 되어 저승으로 날아갔다. 돌아온 자청비는 이 사실을 부모에게 말한다. 부모는 분노하였고, 자청비는 정수남이 하던 농사일을 모조리 맡았다. 개미의 방해로 일을 끝마치지 못한 자청비는 그대로 쫓겨났다.


다시 남장한 자청비는 저승으로 향한다. 서천꽃밭에 가서 환생꽃을 요구한다. 대왕은 자청비에게 자기 셋째 딸과 혼인할 것을 명한다. 자청비는 셋째 딸과 결혼하고 환생꽃을 받아 정수남을 살린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정수남과 집으로 돌아온다.


"넌 사람을 살리고 죽이느냐? 이 요사스러운 것! 넌 오늘부터 내 딸이 아니다!"


자청비는 어떤 주모할미의 양딸이 된다. 주모할미는 옥황 문선왕의 아들인 문도령과 약혼자인 서수왕아기의 혼수를 만들었다. 자청비는 그곳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걸 본 문도령은 자청비를 만나러 갔다. 하지만 자청비는 문도령을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이 사실을 안 주모할미는 자청비가 말썽을 피운다며 내쫓는다.


다시 갈 곳이 없어진 자청비는 옥황 시녀들을 만난다. 문도령이 자청비를 찾는단 말에 직접 옥황에 간다. 문도령은 자청비와 혼인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문선왕은 서수왕아기와 자청비에게 불이 가득한 칼선 다리를 건너라고 명한다. 서수왕아기는 기권하고 자청비는 비가 내리길 기도한다. 기적처럼 비가 내려 불이 꺼진 칼선 다리를 끝까지 건넜다.


혼인 후, 변란이 일어났다. 자청비는 문도령을 서천꽃밭 셋째 딸에게 자기인 척 대신 보내놓고 본인은 변란을 해결했다. 하지만 문도령은 자청비가 아님을 들키고 말았다. 다시 문도령이 오지 않을 걸 걱정한 셋째 딸은 문도령을 말에 거꾸로 태워 보냈다.


자청비는 공로를 크게 인정받아 정수남, 문도령과 함께 농업신이 된다.




이 설화 속 자청비는 호쾌하고 호탕한 사람이다. 요즘 말로 사이다가 어울리는 신이었다. 무수한 고난과 시련을 겪어도 자청비는 좌절하거나 무너지지 않았다. 단지 여러 기지를 발휘해서 사건을 해결했다. 비슷한 플롯으론 오래전 드라마 <대장금>이 있다. 주인공 장금이는 갖은 모함과 오해를 당해도 결국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나는 심정으로 유약하지만 회복 탄력성이 빠른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히려 고난과 시련을 기회로 바꾸는 쪽에 속했다. 모든 창작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난 유독 직접 겪거나 본 일을 작품에 녹여냈다. 그 당시엔 숨도 못 쉴 정도로 슬프고 괴로운 일도 어떻게든 훌훌 털고 일어났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이런 줄 알았다.


삶이 무너져도 루틴을 바로 잡고 나를 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돈 벌 궁리하며 어떤 일을 하고자 마음먹으면 핑계 대지 않았다. 쓰고 보니 자랑 같지만 안 좋은 점도 수두룩하다. 일단 나는 타인의 말 한마디에 강하게 반응했다. 이 사람은 왜 이러지?라는 마음이 남들보다 더 많이 들었다. 불편한 감정을 내색하고자 해도 표정에 다 드러나는 편이었다.


이런 나는 자주 주변 환경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길이 없어서 수많은 서적을 찾아보았다. 사주는 물론, 하다 하다 점성술까지 알아보았다. 웃긴 건 모든 결과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애초에 이렇게 태어날 운명이었다.


자청비 또한 수많은 시련을 몰고 다니면서 해결할 운명이지 않았는가? 두 번이나 쫓겨나면서도 씩씩하게 살지 않았는가. 본인이 배필로 정한 문도령을 갖고자 칼선 다리를 건넜으며 끝내 세경신의 자리까지 올랐다. 자청비는 시대와 맞지 않는 태생이지만 본인의 능력으로 단점을 완벽히 장점으로 변화했다.


"너는 좀 특이한 거 같아."


특별한 게 아니고 특이. 주변인들은 간혹 내가 지나치게 매정하다가도 따뜻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게 무슨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나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에 남들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이상해 보인다는 거다.


언제나 주류가 될 수 없다고 느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그저 어떤 공간에 있으면 내 자리가 아니란 걸 수없이 느꼈다. 그 감각이 들면 금세 그곳에서 빠져나왔으며 다신 돌아보지 않았다. 설령 후회하거나 그리워할지언정. 예전엔 몰랐는데 요즘엔 내 무의식이 어쩌면 삶의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막상 본체인 내가 그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 뭔가 불편한 감정이나 무의식이 보내는 경고가 생기면 나는 일단 모든 걸 멈췄다. 감각이 예민한 게 이럴 때 참 좋았다. 고통 속에서 강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다. 문제는 삶 자체가 고통이어서 이젠 뭐가 성장을 위한 거름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아무것도 되지 못할까 봐.'였다. 나는 남들보다 걸음이 1.5배 빠르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다. 남들은 내 걸음걸이가 시원시원하니 대장군 같다고 평가했다. 남들보다 빨라서 홍길동이라고도 불렸다. 이렇듯이 나는 성격 자체가 급하며 무언가를 빨리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하루를 빠짐없이 꽉꽉 채워서 살아간다. 일을 하거나, 글을 쓴다.


자주 책상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내 시간은 오로지 여백을 채울 때만 흘렀다. 얼마 전, 나는 내가 사실 의미 없는 스크린 타임을 좋아하지 않는 걸 깨달았다. 매번 미루던 독서나 일을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엔 두려움이 가득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홀린 듯이 빠져들었다.


어쩌면 나는 형체 없는 두려움으로 그동안 많은 시간을 허비한 걸지도 몰랐다. 그 헤맨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탄생한 걸지도 몰랐다.


씩씩하게 살자, 자청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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