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사람을 이끈다

설화 '구렁덩덩 신선비'

by 장아연
구렁덩덩 신선비: 뱀 아들에게 시집간 셋째 딸


옛날, 어떤 할머니가 자식을 기원해서 뱀 아들을 낳았다. 이웃집의 세 딸들이 이를 구경하러 왔는데 유독 셋째만 관심을 보였다. 뱀 아들이 자라서 자신을 이웃집 딸과 혼인시켜 달라고 청하니, 오직 셋째만 좋다며 청혼을 받아들였다. 혼인 후 뱀 아들은 낮엔 뱀, 밤엔 잘생긴 남자로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뱀 아들은 완전히 허물을 벗어 잘생긴 남자의 모습이 되었다. 뱀 아들은 과거 시험 보러 가는 날, 셋째에게 뱀 허물을 주며 당부했다.


"절대로 이걸 남에게 보이면 안 됩니다."


셋째는 그 말을 지켰다. 하지만 셋째 집에 놀러 온 두 언니가 이 사실을 모르고 호기심에 뱀 허물을 태워버렸다. 뱀 아들은 셋째가 허물을 태워버렸다고 생각하며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뱀 아들이 떠난 후, 이웃집 세 딸에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첫째와 둘째의 남편들이 앓아누운 후, 시름시름 앓았다. 두 사람은 죄책감에 시달려 셋째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뱀 아들이 돌아오지 않아서 마음 졸이던 셋째는 본인이 직접 찾아 나섰다. 여러 사람에게 길을 물은 셋째는 지하세계까지 들어갔다.


뱀 아들은 그곳에서 새 장가를 들어 살고 있었다. 셋째는 노래를 불러서 뱀 아들이 자신을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오해가 풀리지 않은 뱀 아들은 셋째에게 여러 내기를 시켰다. 새 여자와 물 길어오기, 호랑이 눈썹 뽑기 등등.


모든 내기에서 이긴 셋째는 뱀 아들과 재회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이 설화는 금기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시선에선 이유 없이 재가한 뱀 아들에 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뱀 아들보다 스스로 고난을 헤친 셋째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 예능 프로그램에선 그런 말이 자주 나왔다.


'우리는 하지 말라고 안 하면 안 돼. 그건 직무유기야.'


분명하지 말라고 쓰여있는데 그들은 그걸 굳이 터뜨려서 봉변을 당했다. 그 모습이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그러니까 시청자들은 안 된다는 걸 무시하길 은연중에 바란다는 것이다. 인간의 호기심은 금기를 깰 정도로 강력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뱀과 혼인한 셋째도 비범한 사람이었다.


나는 운명을 믿었다. 세상물정 모른다는 이야기를 줄곧 들었지만, 한눈에 알아보는 인연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가령 사령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과는 오래갈 거 같아서 내버려두면 정말 쉽게 인연이 이어졌다. 또 다른 사람과는 인연이 아님을 직감했지만 끝까지 추하게 늘어지다가 나만 상처 입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이렇듯 나는 운명을 믿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이 육체는 무엇을 담기 위한 그릇인가, 이런저런 생각하다 보면 내 운명을 알기보단 게슈탈트 붕괴가 먼저 올 거 같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라고 했다. 나도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삶은 굉장히 짧다고 늘 생각했다.


어릴 적 나는 구미호가 되고 싶었다. 얼마나 진심이었느냐면 9살쯤 직접 질문을 올렸다. 제목은 '구미호가 되는 법'. 그걸 또 진지하게 답변해 준 사람이 있었다. 밤 12시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옷장에서 여우구슬을 꺼내서 먹으면 된다,라는 답변이었다.


그걸 진지하게 믿었던 어린 나는 야속하게도 하얀 원피스가 없어서 그걸 시도하지 못했다. 아마 그 당시 구미호 소재 드라마가 많아서 그런 생각한 게 아닐까. 답변자도 구미호=하얀 원피스로 미디어가 비치니 그렇게 말한 게 분명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운명애(運命愛)'를 주장했다. 다른 말론 아모르파티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말이다. 하지만 운명을 정확히 모르는 지금의 내겐 그 말은 야속하게 들릴 뿐이었다. 듣자 하니 운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고 한다.


운명을 피하고자 발버둥 쳐도 어차피 그곳으로 돌아온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설화나 동양풍, 사극물은 나와 운명인 듯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사극 드라마를 챙겨보았다. 그 당시엔 궁중암투나 왕위 쟁탈전 같은 정통사극이 많았다. 어린 나는 그게 무슨 내용인지, 어떤 계략인지도 모르면서 빨려 들었다. 자라오는 내내 내 관심사는 그런 것이었다.


명절이면 꼭 한복을 입고 다녔으며 노리개 같은 장신구를 모았다. 미디어 소비도 비슷한 부류만 했다. 친구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 관심은 성인이 된 후, 사그라졌다. 그런 줄 알았다. 적어도 21살 때까진 그런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우연하게 사극 드라마를 보았다. 플리마켓에서 노리개를 발견했다. 몇 년 동안 뛰지 않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인정한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동양풍 사랑 인간이다. 친구들은 내게 '넌 동양풍을 파야해. 무조건 한 우물을 파.'라고 말했다. 그 길이 얼마나 험한 줄도 모르고. 수요가 적은 곳에 몸을 담근다는 게 얼마나 피로하고 슬픈지 모를 것이다. 내가 2년 동안 동양풍을 거들떠도 보지 않은 건 나도 주류에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수요도, 소비도 많은 곳에서 활개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 이렇게 돌고 돌아서 설화를 쓰고 있지 않은가. 운명은 어떻게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이끌어갔다. 어릴 적부터 뱀 아들에게 관심 보이던 셋째가 어떤 고난에도 다시 뱀 아들과 만난 것처럼.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걸 슬퍼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걸 쓰고, 모은다. 그랬더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생겼다. 작업이 늘었으며 바깥에서 인정도 받았다.


앞으론 운명과 협동해서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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