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나를 견디는 일

닫는 문

by 장아연

나는 내가 특별한 줄 알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줄곧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인기가 많거나,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다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어디서나 당당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눈치가 조금 없지만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는 나를 미워했으며 못살게 굴었다. 그래도 나는 꺾이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맹자 고자장 속 문장이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근육과 뼈를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은 빈궁에 빠뜨려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느니라. 그 이유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그 어떤 사명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


내가 큰 사람이 되길 바랐다. 누구나 시련을 겪는 법이었다. 다만 내겐 그 시련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으며 나는 피를 흘리며 그걸 감내했다. 인간관계와 일은 같은 선상에 놓였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늘 나를 상처 주는 건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일로 도피했다.


꾸준히 작업했다. 문장을 직조했으며 머릿속에 떠다니는 이야기를 모조리 여백에 흩뿌렸다.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문학 치료 중 글쓰기가 가장 좋다던데, 나도 모르게 어릴 적부터 이 일을 행하는 중이었다.


나는 인풋이 없어도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저 살며시 스쳐가는 사소한 일상에서 건더기를 잡아서 내 것으로 만들었다. 골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글을 쓰는 행위는 마치 동굴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이 결과물이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플라톤의 '동굴 속 우화'처럼 어쩌면 나는 눈을 가린 채 거짓을 보고 있었던 걸 아닐까.


오래간만에 책을 펼쳤고, 영화와 드라마를 감상했다. 그 속엔 수많은 이야기와 사념이 담겼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건 무엇일까. 곰곰이 떠올린 끝에 사극 드라마를 되뇌었다. 어릴 적부터 동양풍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 오랜 취향을 잊고 살았다.


19살 이후로 덮고 살았던 설화를 다시금 펼쳤다.




스스로 직면한다는 건 꽤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회복 탄력성이 정말 빠른 편이었다. 피를 철철 흘려도 몇 년이고 무너지지 않았다. 우물에 갇혔다고 한들, 돌 하나씩 어떻게든 딛고 올라왔다. 열 손톱이 다 빠져서 고통이 일어도 나는 주저앉지 않았다.


절대 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래서 평범한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든 최악 속에서 최선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이건 흔하지 않은 일이 아닌가? 내가 특별한 사람이었으면 했다. 모두가 나를 사랑하며 인정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이젠 잘 알았다. 나는 타인에게 받는 인정을 바랐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뒤에도 인정받고자 저승까지 갔던 바리, 나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오늘이,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우투리, 힘을 합친 삼 형제, 배신당한 궁상이, 자신의 능력을 찾은 한락궁이와 명진국 따님애기,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된 여인, 복을 찾기 위해 떠난 총각, 지혜로운 원님, 관세음보살의 사랑을 받은 오세암, 사랑에 빠진 광청아기, 여우구슬과 우물명당, 운명을 택한 구렁덩덩 신선비, 씩씩한 자청비까지.


수많은 설화를 읽고 내 이야기에 대입하는 건 꽤 즐거웠다. 세상엔 더 많은 설화가 존재하지만 내가 저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 평범한 사람들이 기록된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 힘으로 신성을 얻었다.


어쩌면 평범한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특이한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 비주류인 나는 주류가 되는 걸 꿈꿨다. 그게 쉬운 일은 전혀 아니지만 이렇게 진솔하게 이야기를 적으면서 바란다. 특별한 사람은 꿈도 꾸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건 내게 무수한 과제로 남았다. 이제 막 설화를 펼쳤으며 나는 이걸 놓을 생각이 없었다. 설화는 모든 이야기의 원형이며 훌륭한 플롯 교본이었다. 나는 창작자이자 강사, 연구자를 희망하는 대학원생이다. 이제 첫 페이지를 펼친 셈이었다.


한 번도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밌었으니까. 나의 과거와 무수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어떤 발자취를 남길지 고민 중이다. 부지런히 글을 적고 멋진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바라는 건 하나.


평범한 내가, 세상에 단 하나인 특이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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