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알게 하는 구슬

설화 '여우구슬'

by 장아연
여우구슬: 세상의 이치를 알게 한다.


1

어느 학동이 한 구미호와 사랑에 빠졌다. 구미호는 입맞춤만은 허락하지 않았는데 학동은 이를 졸랐다. 입맞춤을 하지 않으면 다신 만나지 않겠다고 겁박했다. 하는 수 없이 구미호는 학동에게 입맞춤을 허락했다. 학동은 구미호의 입에서 여우구슬을 빼물었다.


그 여우구슬은 진리를 알게 해주는 것이나, 학동은 땅을 먼저 보았기에 미처 하늘의 일까지 알지 못했다.



2

어느 구미호는 학동 100명과 입을 맞춰야 승천할 수 있었다. 99명의 학동과 입을 맞춘 후, 마지막 한 명만 남겨놓고 있었다. 마지막 학동은 이러한 구미호의 계략을 눈치채고 도주했다. 어여쁜 여자로 둔갑한 구미호는 학동에게 추파를 던졌다. 구미호는 학동의 입안에 여우구슬을 여러 번 넣고 빼기를 반복하며 학동의 기력을 앗아갔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간 학동은 스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그 여인은 필히 구미호일 것이다. 넌 여우구슬을 삼켜라."


학동은 구미호에게 농락당할 때, 그렇게 했다. 여우구슬을 삼킨 학동은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었다.




이 설화는 드라마나 여러 창작물에서도 많이 등장했다. 위 설화처럼 노골적인 건 아니지만, 구미호를 주제로 하는 많은 매체에서 심심찮게 출몰했다. 조금 다른 건 여우구슬에 관한 상징이다. 위 설화 속 여우구슬은 인간이 삼키면 많은 걸 알게 되는 깨달음의 물체다. 하지만 다양한 매체 속 여우구슬은 구미호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주는 징표처럼 쓰였다.


여우구슬을 활용한 설화에선 인간의 몸으로 많은 걸 깨달아서 성공한 사례가 등장했다. 왜 인간은 앎에 관해서 무구한 호기심을 가질까? 이 호기심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나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왕성한 어린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매번 사후세계가 궁금했다.


이면의 세계, 다른 세계로 가는 법, 저승 체험 등등. 어린 나는 위험한 호기심에 젖어갔다. 특히 괴담처럼 통용하는 '엘리베이터 타고 다른 세계로 가는 법'은 여러 차례 정독했지만 막상 시도하진 못했다. 시도한 사람들의 후기론 엘리베이터가 특정 층에 멈춰서 다른 세계인 줄 알았는데 경비 아저씨더라... 가 있었다.


알지 못하는 세계는 신비롭다. 어쩌면 다른 세계나 차원에 가는 명목으로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그도 그렇듯이 내 삶은 정말 안온하고 평화롭다. 현재 나는 총 세 가지의 일을 하는 중이었다. 대학원생이자 마감하는 작가다. 더불어 학원에서 강사 일도 함께했다. 도무지 밥을 먹을 시간조차 나지 않아서 새벽 5시에 기상한다.


어떻게든 아침을 먹은 후 글을 적고, 시간을 쪼개서 논문을 읽거나 과제를 해치웠다. 퇴근하면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가끔 학원과 학교가 쉬는 날이면 밀린 영화와 드라마, 책을 읽곤 했다. 겉으로 듣기엔 이런 삶이 꽤 빡빡해 보이겠지만 나는 만족했다. 내겐 충분히 망상할 시간만 주어지면 되었다.


"넌 뭘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내가 궁금한 건 세상의 이치 같이 거대한 게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아예 안 궁금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너무도 추상적이며 한낱 인간인 내가 소화하기 어려웠다. 나는 항상 사람의 심리가 궁금했다. 내 감정을 직면하는 걸 즐겼으며 작품 속 인물의 심리를 분석하는 걸 좋아했다. 사람마다 다른 고유의 특성을 해석하고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행동이 나타나는 걸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가장 좋은 실험체는 나 자신이다. 살아온 과정도 전부 알고, 매번 행동 분석이 가능하다. 불안을 겪을 땐 책을 읽는다. 속이 안 좋으면 초콜릿 한 알을 먹는다. 까다롭고 예민해지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을 잔다 등등.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라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같이 살기 하지만 아직도 서먹하긴 매한가지였다. 그 이유를 골몰해 보니까 나를 실험도구로만 사용했다. 사람은 적절한 채찍과 당근이 있어야 만족했다. 너무 풀어주는 건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옭아매면 안 되는 법이었다.


얼마 전 TCI 검사했다. TCI는 선천적인 기질을 알아보고, 후천적인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는 심리 검사다. 선천적인 기질과 후천적인 성격의 차이가 극심하면 고통받기 십상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태어났는지 궁금했다. 운명을 믿는 내 입장에선 하늘에서 부여한 기질을 아는 게 중요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내가 자극을 추구하는 동시에 위험 회피 기질도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선천적으로 독립심이 강하고 호기심이 왕성하다. 하지만 후천적인 성격으론 타인을 의무적으로 챙기는 성향이기에 에너지 소모가 극심하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검사 결과를 보면서 느낀 건 나는 굉장히 모순적인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느끼며 안전을 도모하지만 자극적인 걸 찾아 헤맸다. 양극단의 감정 속에서 중심을 잡느라 쉼 없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검사 결과지를 여러 번 정독하면서 눈을 끔뻑였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내 친구들은 검사 결과가 나와 잘 맞는다고 했다. 나는 대체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있는 거지?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싶었다. 유체이탈을 하거나, 내 혼령이 타인에게 빙의하지 않는 이상 어렵다는 거 잘 알았다.


여우구슬은 여러 이야기와 갈래로 쪼개서 전승되었다. 이야기의 구조나 골격은 수없이 변화하였지만 단 하나, 주제는 바뀌지 않았다.


<인간은 땅의 일만 알지, 하늘의 일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절대 인간은 하늘의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후세계와 이계를 궁금해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연구 자료들은 다 추측에 불가했다. 한번 다른 세상에 발 들이면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까. 그건 영영 인간사에 미스터리로 남을 거다.


그렇다고 모든 걸 다 버리고 진리를 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겐 해야 하는 일이 있었으며 책임질 토끼 같은 내가 있었다. 열길 사람 속도 모르는데 어떻게 한길 이치를 알겠는가. 어쨌거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세상의 거대한 비밀을 깨우치는 게 아니었다.


조금 더 나라는 사람에 집중해서 최대한 호감도를 올려두는 일. 나라는 사람을 정밀하게 분석해서 어떤 인간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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