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만 하는 운명

매일이

by 장아연


원천강을 향해 여정을 떠난 오늘이는 발이 닿는 대로 걸었습니다. 걷고, 또 걸었습니다. 처음으로 사는 곳을 벗어난 오늘이에게 새로운 땅은 낯설기만 했습니다. 한참을 걷던 오늘이는 어느 정자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엔 책을 읽는 처녀가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이가 인사하자, 처녀는 읽던 책을 덮었습니다. 댕기를 길게 늘어뜨린 처녀는 빙긋 웃었어요.


"넌 누구니?"

"오늘이에요. 원천강을 향해 가고 있어요."

"난 매일이야. 이곳에서 매일 책을 읽지."


그 말을 마치자마자 매일이는 다시 책을 펼쳐서 읽었어요.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 그 옆에 선 오늘이가 몹시 신경 쓰였어요.


"원천강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세요?"

"저쪽으로 쭉 가다 보면, 연꽃나무가 있을 거야. 걔한테 물어봐."

"감사합니다."


오늘이는 꾸벅 인사했어요. 잠시 숨을 돌리고, 매일이가 알려준 방향으로 걸어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때 매일이가 벌떡 일어났어요.


"원천강에 가거든, 왜 내가 매일 책을 읽어야 하는지 물어봐줄래? 이놈의 책을 왜 매일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네, 좋아요."


오늘이는 매일이의 고민을 들어주기로 약조한 후, 다시 길을 떠났어요.




문예창작과 재학 당시, 동기들끼리 떠돌던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사실 우리 중에서 끝까지 창작자로 남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건 하늘에서 정하는 거고,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다. 바늘구멍 같은 입시를 통해서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지만 여기서 더 걸러진다니. 말마따나 우스갯소리였다. 노력하지 않으면 재능 있는 사람도 금세 고꾸라지는 게 예술이지 않은가.


조금만 연습을 게을리해도 손이 굳어서 초보자의 마음으로 다시 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서 창작자의 운명 같은 게 있을 리가? 코웃음 치던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바로 그 운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나는 늘 글 쓰는 사람을 만나면 똑같은 질문을 남겼다.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되셨나요?' 대개 이유는 다양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모티브로 한 글을 쓰다가, 어떤 사람은 책을 많이 읽어서 자연스럽게, 또 다른 사람은 가족의 영향으로. 나로 말하자면 조금 독특한 편이었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힘들 때마다 글을 적었고, 걸작이 나왔다. 심리학에선 이걸 문학 치료 혹은 글쓰기 치료라고 일컫었다. 하지만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초등학생이었으므로 그런 치료 기법을 알 리 없었다. 쉽게 말하면 내게 글은 도피처였다.


그 도피처가 인생 전체로 자리 잡아서 이것 외엔 다른 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수업시간에 교과서 밑에 공책을 껴넣어 받아 적는 척 글을 쓰곤 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지독한 현실에 괴로워하거나, 그 현실을 초월한 주인공이 등장해서 어떻게든 성장했다.


그렇게 삶을 버티고 직면했다. 4월부터 나는 30분 정도 자리에 앉아서 지겹도록 인생을 회고했다. 왜 내가 이런 식으로 글을 적을 수밖에 없었는지, 내 운명은 대체 어딜 향하고 있는지. 나는 읽는 것보다 쓰는 걸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남들이 글쓰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왜지? 이렇게 재밌는데.


설화 속 매일이는 자기 행동에 이유를 품었다. 그저 매일 지속하던 일에 의문을 품는 순간, 사람은 그것에 압도되기 마련이었다. 나 또한 그냥 썼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어쩌다가 나는 글을 적게 되었는지, 내가 궁극적으로 글을 통해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한 장르와 방향성을 정하고 싶었다. 지금까진 쓰고 싶은 것과 써야 하는 걸 번갈아 작성했다면 이젠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글에 서린 욕망을 찾는 건 내게 중요했다. 그건 내 삶의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가 될 거니까. 이젠 내 삶에서 뭐가 무엇인지 가늠이 불가했다. 가끔 왜 내가 글을 써야 하는가, 싶다가도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래서 사람은 안 하는 짓을 하면 안 되는 걸까. 거의 15년 넘도록 글을 적은 내 삶은 이미 써야 하는 운명에 접어들었다. 만일 이게 운명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운명을 개척한 셈이 아닐까? 행위의 당위성을 찾는 건 자기 객관화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매일이처럼 이유를 모르면 몹시 괴로울 터.


매일이가 오늘이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것처럼 나도 스스로에게 다시 물었다. 넌 대체 왜 이 일을 계속 하니? 돌아오는 건 적막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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