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낙이 없다

by 장아연


그 시절,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겐 그렇다 할 낙이 없었다. 대학을 그만둔 지 오래였으며 키즈카페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생활은 지겹기 그지없었다. 일상은 매일 똑같았다. 그저 일어나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오늘 입을 옷을 골랐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도 눈에 띄지 않을 옷을 입었고, 지하상가에서 자주 파는 가방을 메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키즈카페 아르바이트는 새로울 게 없었다. 가게를 오픈하기 전에 장난감이나 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서가에 동화책을 꽂고,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기다렸다. 포스기를 켠 후, 키즈카페가 손님을 맞을 준비가 끝나면 지긋지긋한 하루는 시작되었다. 함께 아르바이트하던 동기는 문득 내게 물었다.


"술도 안 마셔, 담배도 안 피어, 그렇다고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야... 도대체 네 낙이 뭐야?"


낙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 질문을 오래오래 곱씹었다. 정말 그 동기의 말처럼 나는 낙이 없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나는 부단히 애써야 했다. 누군가가 나를 봐주기 전까진 나는 그저 흘러갈 뿐이었다.


이맘때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하며 노는지, 정말 낙이란 게 존재하는 건지, 다들 고작 헐거운 그것에서 원동력을 얻어서 사는 건지. 궁금한 건 많았지만,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느덧 키즈카페를 가득 메운 손님들은 부지런히 음식과 음료를 주문했다. 바쁘게 몸을 움직인 후, 서가에 책을 정리하러 갈 무렵.


어지럽게 놓인 바닥엔 한 권의 동화책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오늘이>, 원천강 오늘이었다.




이 소설을 쓸 때쯤 나는 인생을 내 마음대로 꾸리고 싶었다. 대학교 2학년, 21살의 나는 '낙'에 대해서 고민했다. 즐길 락, 떨어질 낙, 기타 등등.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따로 있는데 내겐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나는 지독한 일중독자였다. 처음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선 매번 실수만 했으며 한 달간 울면서 퇴근했다.


사회성이란 건 갑자기 발생하는 게 아니었다. 모든 외동이 그런 건 아니지만, 유독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았던 나는 사람과 어울리는 게 유독 어려웠다. 남과 함께 발맞춰 일한다는 것도, 의미 없이 갖는 회식까지도 다 끔찍했다. 다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스트레스를 클럽에서 춤을 추며 푼다고 하던데. 혹은 어떤 사람은 도서관이나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고 했다.


난 조금 모호한 사람이었다. 노는 걸 좋아하지도, 책 읽고 스스로 가꾸는 걸 즐기지도 않았다. 난 명예 외엔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명예는 원한다고 해서 한 번에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즉, 내가 낙이라고 여기는 건 오직 글쓰기뿐이었다. 나는 게임도, 이렇다 할 취미도,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낙에 관한 소설을 적으면 무언가 달라질 거 같았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돋보였지만, 전체적으로 플롯이 단조롭고 평이하다.'


70매짜리 단편은 합평 수업에서 이런 평가를 얻었다. 나와 함께 소설 합평 수업을 들은 동기들은 등단이란 원대한 목표를 품었다. 그 당시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땐 몰랐다. 내가 단편소설엔 영 재능이 없다는 걸. 어릴 적부터 단편보단 장편을 써온 나는 기승전결을 늘이는 버릇이 있었다. 사소한 사건을 자잘하게 묘사해서 남들보다 빨리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밀도는 적었다.


내가 쓴 낙에선 오늘이를 형상화한 어린이가 나왔다. 화자는 부모를 잃어버렸다던 어린이를 돌봐주고, 곁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인형 뽑기, 아이스크림, 공원에서 하릴없이 멍 때리기 등등. 평소 화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다. 무사히 부모를 만난 오늘이가 신처럼 신기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 소설에서 가장 힘을 준 부분은 그곳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 가장 많은 비평이 쏟아진 부분도 그곳이었다.


"왜 화자가 오늘이를 만나야 하나요? 오늘이가 너무 이용적이지 않나요?"


무릇 소설 합평이란, 나조차도 모호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콕 집어줄 때 가장 큰 쾌감을 느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넋이 나갔다. 오늘이를 사용한 건 그저 내가 그 설화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왜 그걸 좋아하는지, 소설에 녹여서 쓸 생각을 했는지까진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후인 지금, 그 당시의 내 의도를 파악했다.


어쩌면 21살의 나는 변화를 꾀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때 내 삶은 정말 단조롭고 재미없었다. 청춘이라고 해도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추악하고 틀에 박힌 삶이었다. 물론 그때 내가 루틴에 대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했기에 지금의 내가 탄생했다는 걸 알았다. 할 일이 없어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쉬지 않고 수영을 나갔고, 그때 쓴 글이 최근에야 출간되기도 했다.


누군가가 내게 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지금의 나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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