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 도령
연꽃나무에게 길을 물어 굽이굽이 건너 간 오늘이는 한 정자에 도착했어요. 정자 안엔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책을 읽는 한 도령이 보였어요. 책을 읽던 도령은 오늘이를 보고 물었어요.
"너는 누구니?"
"저는 오늘이에요."
"나는 장상이야. 보다시피 여기서 매일 책 읽고, 공부를 하고 있지.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야."
"저는 원천강으로 가고 있어요. 혹시 길이 어딘지 아시나요?"
"저쪽으로 쭉 가면 돼."
오늘이는 장상 도령을 향해 고개를 숙였어요. 가려던 찰나, 아니나 다를까! 장상 도령도 오늘이를 불러 세웠어요.
"원천강에 가거든 내가 언제까지 여기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하는지 물어봐줘."
"네, 그럴게요."
매일이, 연꽃나무에 이어서 장상 도령까지. 오늘이는 벌써 세 명의 고민을 들어주기로 약조했어요. 어깨에 짐이 무겁긴 해도 오늘이는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제 나를 지긋지긋하게 했던 공부와 안녕이다! 이젠 영원히 책조차 읽지 않겠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건 내 오만이었다. 그런 말이 있다. 인생을 살면서 꼭 필수로 해야 하는 공부가 있으며 그걸 채우지 못하면 업보처럼 쌓여서 다 늙어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 맞다. 내가 지어낸 거다. 사실 그런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내겐 이 모든 게 업보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공부를 정말 싫어했다.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알아가는 재미는 많았지만, 시험을 위해서 하는 주입식 교육엔 영 흥미가 없었다. 대체 이 지문이 왜 이렇게 해석되는 건지, 3번에 답이 꼭 4여야 하는 건지. 세상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걸로 가득했으며 나는 그 사이에서 모든 걸 외웠다. 다행인 건 내가 기억력이 꽤 좋다는 점이었다.
남은 금방 잊어버리는 사소한 기억조차 나는 잊지 않았다. 기억력이 좋은 건 매우 좋은 일이었지만 글쎄. 망각은 신의 자비란 말처럼 그게 꼭 좋은 건 아니라고 여겼다. 많은 걸 기억한다는 건 남들보다 더 아프다는 소리였고, 자주 외로움에 사무친다는 소리였다. 물론 나는 냉철한 사람이기에 감정과 이성을 분리할 수 있었다. 이걸 생존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글을 잘 쓰기 위해선 다독, 다상, 다작이 필수여야 합니다. 이 셋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절대 안 됩니다!"
학부 시절, 교수님은 그렇게 말했다. 어느 대학을 가서도 글을 잘 쓰는 법은 짜고 친 것처럼 비슷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라.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만 부족하면 이 빠진 톱니바퀴처럼 부품이 삐걱거릴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난 청개구리이자 제멋대로 일인자였다. 어릴 적부터 반골 기질이 심했으며 지금도 그러했지만, 왜인지 그땐 더 심했다. 대학시절 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욕구가 뛰어났다. 내게 합평의 장은 새로움을 검증받는 장소였다. 잘 배운 교과서 같은 문장과 구조 안에 특이한 걸 끼어넣었다. 가령 설화 같은 거. 하여튼 나는 읽는 게 싫었다. 그 결과, 다상과 다작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이러면 안 된다. 하지만 내 하루는 온종일 상상에서 글 쓰는 걸로 마무리되는 걸 어떡하는가. 읽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꼭 읽지 않아도 나는 줄곧 칭찬을 받았으며 실기 수업에서 만점을 받곤 했다. 이게 정말 맞을까? 물음이 치밀어도 일단 엑셀만 밟았다.
그렇다.
나는 엔진이 고갈된 지도 모른 채 미친 듯이 달리던 차였던 것이다.
내 인생에 번아웃을 겪은 적을 손꼽아 보라면 셀 수조차 없었다. 그만큼 번아웃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써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백 앞에 앉아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내 하루는 허무하게 져버렸다.
그래서 처음으로 책을 읽었다. 소설, 심리, 이론서뿐만 아니라 웹소설을 손대었다. 친구에게 추천받은 작품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불이 다 꺼진 방에 산송장처럼 누워 지냈다. 책 페이지를 넘길 힘조차 없어서 휴대폰으로 웹소설을 읽었다.
그 속엔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내가 맛보지 못한 세상이 가득했다. 어쩌면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