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나무
매일이의 안내를 따라서 길을 걷던 오늘이는 한 연못가에 도착했어요. 그곳엔 한 가지에만 꽃이 핀 연꽃나무가 있었습니다. 오늘이는 연못에 앉아 나무에게 물었어요.
"연꽃나무야, 나는 원천강을 향해 가고 있어. 너는 혹시 원천강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니?"
"저기로 쭉 가면 돼."
연꽃나무는 매일이처럼 길을 알려주었어요. 오늘이가 떠나려고 하자, 연꽃나무는 오늘이를 붙잡았어요.
"너 원천강으로 간다고 했지? 그럼 내 고민 하나만 들어줘."
"그럴게."
"난 이 연못에서 산지 오래되었어. 지금 네가 보는 것처럼 내 나무엔 연꽃이 자라지 않아."
오늘이는 연꽃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말마따나, 정말 그랬답니다. 연꽃나무의 가지는 풍성하지만 꽃은 한 곳에서만 피었어요.
침울하게 말한 연꽃나무는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왜 다른 가지엔 연꽃이 자라지 않았는지 물어봐줘."
"알았어."
오늘이는 연꽃나무와 약조한 후, 길을 떠났어요.
나는 사주를 맹신했다. 아니, 애초에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마치 컴퓨터의 데이터처럼 우리가 태어날 적부터 모든 건 정해졌다고 생각했다.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질타를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믿었다.
꽃이 핀다는 비유적인 표현은 대성을 뜻했다. 즉, 사람마다 성공하는 시기가 천차만별이라는 거다. 누군가는 젊을 때 성공하고, 누구는 말년에 성공하고...... 인생의 전체적인 그래프를 보았을 때, 가장 좋은 성공은 말년이 평안한 거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젊을 때 성공하는 사람들이 눈물나게 부러웠다.
나는 인내심은 뛰어나지만 성격이 다급하다. 스스로 제어하는 능력이 있긴 해도 마음속에 가득한 불안감은 쉽게 떨치지 못했다. 특히 나는 어릴 적부터 성공에 대한 야망이 대단했다. 한창 내가 어릴 적에 유행했던 <12살에 부자가 된 키라>처럼 나는 10대 시절에 성공하고 싶었다.
최연소 작가. 이 타이틀을 얼마나 갖고 싶었던가!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글을 썼고, 실제로 출판사를 통해 출간하는 등 10대 시절부터 많은 커리어를 쌓았다. 그게 나를 유명하게 만들어주진 않았다.
성적은 미미했고, 나는 걸어도 늘 제자리였다. 매일 노력하는데 내게 돌아오는 건 거의 0에 수렴했다. 대체 왜? 남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교를 가거나, 일찍 자기 길을 찾아서 취업전선에 뛰어들곤 했다. 나는 무언가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막상 손바닥에 쥔 건 금세 부서졌다. 내가 뭘 했어야 했을까? 바람에 쉽게 날아가는 허울뿐인 성공을 허망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넌 공부를 대체 언제해?"
10대 시절을 솎아보면 나는 계속 글을 썼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애초에 공부엔 흥미가 없었으므로 놓았다. 그럼에도 대학에 갔고, 무사히 졸업했다. 그리고 또 글을 썼다. 계속, 끊임없이. 내 친구들은 매번 공책이나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쓰고 두드리는 나를 지겨워했다. 공부 좀 해, 그게 내 주변 사람들의 말이었다.
막상 모든 게 무너졌던 2025년 4월,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매일 같이 했던 글쓰기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으며 나는 그 당시, 무너질 틈이 없었다. 하필 마감을 해야 했으며 얼떨결에 도맡은 중간고사 대비 수업까지 해치워야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나날 속에서도 나는 무엇이든 했다.
대신 오랫동안 잡았던 글을 놓고, 업보처럼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가르치기 위해선 일단 공부를 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글만 쓰던 10대의 나는 20대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했다. 아, 그리고 유명한 철학관에서 본 사주에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50대에 성공합니다."
그만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