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 할까

by 장아연


이름을 가지게 된 오늘이는 문득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했어요. 평생 그런 걸 고민하며 살아온 적은 없었거든요. 비로소 이름과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자, 오늘이는 왜 자신이 이 척박한 땅에서 혼자 사는지 궁금해졌어요. 하지만 뱃사람들이 떠나고 다시 동물들과 함께 남겨진 오늘이는 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없었어요.


"기러기야.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니?"


오늘 만나서 오늘인 아이. 오늘이는 만나는 동물들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물었지만 그들은 답을 할 수 없었어요. 동물들은 사람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평생 동물들과 함께 살아온 오늘이는 혼란스러웠어요. 나는 누구인지, 왜 이곳에 혼자 있는지, 어쩌다가 태어났는지.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생각을 혼자 삼킬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가엾게 여긴 백로 부인이 다가왔어요. 백로 부인은 백로를 다스리는 사람이에요. 백로 부인은 오늘이에게 다가와 이렇게 물었어요.


"오늘이야. 넌 정말로 네가 궁금하니?"

"제가 누구인지 혹시 아세요?"

"그럼 당연하지."


오늘은 무척 기뻤어요. 드디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백로 부인은 아주 다정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말했어요.


"네 부모는 원천강에 있단다. 그들이 너를 찾고 있어. 이제 네가 스스로가 궁금해졌으니 원천강에 가서 네 부모를 만나면 너를 찾을 수 있을 거란다."


그 말만 남기고 백로 부인은 홀연히 사라졌어요. 다시 혼자 남은 오늘이는 원천강을 되뇌었어요. 내게도 부모가 있었구나! 하는 기쁨과 함께 굳게 다짐했어요.

좋아. 원천강으로 떠나자.

그렇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기 위한 오늘이의 여정이 시작되었어요.




막상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막했다. 지금 당장하고 있는 일을 그만둘 생각도, 그럴 용기도 없었다. 나는 금방 포기했고 어느 무리에서도 오래도록 잘 섞이지 못했다. 이를 내 사회성 부족으로 여기기엔 끝없이 반복되었다. 나는 사람과도 잘 지냈다. 그 이상이 못 되어서 그렇지.


폭풍 같은 4월이 지나고 나는 기나긴 슬럼프에 빠졌다. 원래도 슬럼프가 자주 오는 편이었다. 아, 내가 말한 슬럼프는 인생 전반적인 회의감이 아니었다. 글이 써지지 않는 것, 무엇을 써야 하는지 자주 까먹는 것. 이른바 '글럼프'였다.


나는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글을 적었다. 직장이나 취미는 금방 때려치우곤 새로운 걸 물색하지만 글만은 달랐다. 언제부터였더라. 누군가의 추천으로 글을 시작했던가. 아니, 난 그전부터 꽤 문장 능력이 좋았다. 줄곧 독서를 즐겼으며 대형마트에 놀러 가면 필수로 서점에서 책을 한 권 구매했다. 그게 만화책이든, 청소년 소설이든, 엄마는 내가 원하는 걸 다 사주었다.


어른의 시점으로 그때를 본다면 나도 내 자식이 장난감 대신 책을 사길 원하면 몇십 권이고 사줄 듯했다. 아무튼 내 문장 능력이 꽤 뛰어나다는 걸 알았던 누군가는 내게 글쓰기를 권유했고, 지금까지도 쓰게 되었다. 글럼프에 빠진다는 건 내 삶이 전반적으로 흔들렸다는 걸 의미했다. 그때의 나는 깊이를 모르는 어딘가에 끝없이 침잠하는 기분이었다.


내 속은 시꺼멓게 타들어가도 난 파트타임 강사를 하는 중이었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벚꽃의 꽃말인 중간고사 시즌이었고 나는 그 애들을 가르칠 의무가 있었다. 또 책임감은 강해서 도망치는 건 죽어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아무 일 없이 강의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또 침잠했다.


"선생님. 고3 한 번만 맡아주면 안 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맡은 강의가 하나 더 늘어났다. 그 아이를 위해서 자료를 조사하고,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버거웠다. 하지만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보면 내 기분이 좋지 않은가. 더불어 나는 그때 장편을 마감 중이었다. 교정고를 전달하는 담당자의 메일로 '제가 몸이 안 좋아서 한 주만 원고를 미뤄도......'라는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침잠해 있으면서도 나는 일과 마감을 해냈다. 완벽하게,라고 말하는 건 비약이다. 그냥 그럭저럭 어떻게든 해냈다. 아이들은 시험 성적이 좋았고 마감도 무사히 잘 끝냈다. 땅굴로 파고드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 빠져나가고 싶었고 그래서 일과 마감을 놓지 않은 게 아닐까?


사실 그때 방향은 잘 몰랐다. 그저 주어진 일을 하면서 유독 강의가 잘 풀린 날엔 한글 창을 열어서 한 문장을 적었다. 고작 한 문장에 마음이 일렁일 때가 많았다. 오늘이는 '원천강'이란 장소를 듣고 여정을 옮겼다. 그렇다면 내 여정의 끝은 '마감'이 아니었을까.


그때 일과 마감이 없었더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지 않았을까? 힘든 와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나 자신이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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