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기다리는 사람이야

설화 '망부석'

by 장아연
망부석: 기다리다가 돌이 되어버리다


신라의 박제상은 바른말만 하는 충신이다. 그는 눌지왕 시절, 고구려에 붙잡힌 왕제들을 구하며 조국을 위하여 한 몸을 바쳤다. 그의 아내는 항상 충성스러운 마음을 응원하였다. 박제상은 언제나 자신이 신라에 충신이라고 자부하였으나, 오히려 이게 화가 되었다.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많았다. 왕제들을 구하여 공을 세운 박제상은 수많은 명성을 얻었다. 모두 입을 모아 그가 신라를 구한 영웅이라고 하였다. 고구려에 붙잡힌 왕제들을 모두 구한 박제상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러 간 그를 배웅하던 아내는 걱정이었다. 조국을 떠나 바다를 건너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박제상은 부인에게 말했다.


"꼭 살아서 돌아올 터이니 걱정하지 말게."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은 박제상의 아내는 매일 그를 기다렸다. 일본으로 건너간 박제상은 왕제를 구하였으나, 붙잡혔다. 자신은 신라의 충신이라고 소리쳤지만 일본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를 박제상의 아내는 일본으로 건너간 박제상을 계속 기다렸다. 매일, 같은 자리에 선 채 기다리던 아내의 몸은 점차 굳어갔다.


그렇게 아내는 돌이 되었다. 사람들은 박제상의 아내를 칭송하였으며 이를 망부석(望夫石)이라고 불렀다.




이 설화를 알게 된 건 망부석이란 말의 어원을 찾기 위함이었다. 나는 항상 기다리는 쪽이었다. 아내와 박제상 중 따지고 보면 전자에 가까웠다. 시간도 많고, 인내심도 깊은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게 익숙했다. 어릴 적엔 맞벌이로 바쁜 부모를 늦은 시각까지 기다렸다. 누군가와 싸우면 상대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 연락을 시작한 상대가 있으면 그들이 일과를 마치고 답장을 줄 때까지 기다렸다.


사람의 심리란, 갖고 싶은 걸 가지려고 들면 온 세상이 그걸 반대한다.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에 참여했다면 나는 최후의 1인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내게 들어오는 보상이 남들보다 많은 마시멜로였나? 그건 잘 모르겠다. 인내심이 좋은 것과 중요한 타이밍을 잡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언제나 너를 우선으로 살아야 해. 남이 아니라."


친밀한 지인이 내게 말했다. 끌려다니지 않고, 누군가에게 맞추지 않고, 너는 너대로 살아야 한다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나는 살았을 뿐이고 남들은 그걸 배려라고 느꼈다.


친구 중 카페인에 취약한 애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을 위해 자그마한 선물로 티를 주거나, 함께 만날 땐 찻집을 방문했다. 난 항상 커피를 먹는 사람이다. 한 번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해도 죽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평소 카페에서 선택지가 부족했으므로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나도 우아하게 차를 마실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보통 사람들은 그러지 않지."


친구 중 하나는 내게 몹시 고마워했다.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카페를 찻집으로 바꿨을 뿐이었다. 박제상의 아내는 몸이 굳도록 남편을 기다리면서 무슨 기분을 느꼈을까? 남편을 기다리는 행위가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박제상의 아내는 그걸 당연하다고 여겼을지도 몰랐다.


굳건한 믿음. 기다림이 보답받지 못하여도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한다는 의무감.


나는 줄곧 그런 걸 느꼈다. 기다리는 게 익숙했다. 남이 나를 배려하면 어쩔 줄 몰랐다. 선택지를 주고 선택권을 넘기는 게 훨씬 편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내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몹시 당황했다. 나라는 사람의 자아가 깨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망부석 설화를 꺼낸다. 어떤 기회를 붙잡기 위해선 무수한 기다림이 필요했다. 취업준비, 공모전, 인간관계 등등. 모든 일의 결과가 일어나는 건 단 하나의 타이밍이었다. 가끔 나는 이 기다림으로 많은 걸 얻었다. 오히려 기다리는 게 훨씬 편했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기회가 오길 기다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수많은 요행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몇 개의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운이 좋았던 걸까, 정말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걸까. 만일 망부석 설화 속 박제상의 아내가 2025년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오지 않는 남편을 계속 기다렸을까? 자기 몸이 죽어가는 걸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 나는 그 원동력이 궁금해지곤 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얌전히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내 자리에서 할 거 하며 나를 찾아주길 바랐다. 자그마한 제안이 들어왔고, 누군가는 나를 봐주곤 했다. 하지만 기회는 줄곧 도전하는 자에게 갔다. 조용한 방 안에 앉아 글을 쓰는 내겐 이리저리 명함을 돌리며 스스로를 영업하는 사람은 대단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란, 완성한 글을 어딘가에 기고하는 게 전부였다.


넉살 좋은 수신 메일도, 원고 준비도 없이 부딪히는 것도 내겐 어려웠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만일 망부석 설화 속 박제상의 아내가 다른 일을 하면서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이 설화 자체가 기록되지 않았겠으나, 아내의 삶은 훨씬 나았을 거다. 언제나 나 자신이 되라던 지인의 말이 자주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미미하지만 자그마한 도전을 하곤 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수많은 고민이 있었다. 항상 내 글은 저장소 공간 안쪽에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내 속도대로 한발 내딛으며 무언가를 기다려본다. 마냥 기다리지 않고 내게 득이 되는 무언가를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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