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지 못한 타이틀, 네임밸류에 괴로워할 때
첫 퇴사를 하면서 내가 원하는 일을 찾는 방법 중의 하나가, 내게 정말 맞지 않은 일들을 하나씩 경험해보고 제외해나가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 경험으로 내가 원하는 일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것은 사실이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찾을 때, '남들의 시선', '있어보이는 회사', '네임 밸류' 등을 놓지 못했었다.
난 왜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마음 단단히 일하는 것에 대해 언제부터 고민했을까 생각해보면,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고민이 있었다. 초년생 때를 생각해 보면 나를 가장 힘들 게 했던 건 나 스스로였다. 내가 나를 힘들게 했다고는 하지만, 남들의 시선, 그렇다고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도 모르는 누군가들의 시선에 나를 맞추고자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했다. 초년생이니까 실력도 없고, 경험도 없어서 회사를 골라갈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남들의 시선 따위 상관없어." 하면서 하고 싶었던 명확한 길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보니, 내가 갈 수 있는 회사는 남들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별로였고 나는 움추러들었다. 그래서 나를 설명하는 단어였던, 내가 속한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 어느 회사를 다니냐고 물어보면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이름을 말하고서 한참을 이 회사가 얼마나 유망한지 설명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냥 회사 이름을 말하기만 해도 누구나 끄덕거리는 회사를 다니고 싶었다.
무언가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도 배워야 하는데, 내려놓는 것은 배우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성적으로 일렬로 줄 세워놓은 상황에 놓여있고, 지금의 내 성적보다 더 높은 성적, 더 높은 학교를 갈망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갑자기 내 기준점을 낮추는 것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할 기회조차 없었고, 그럴싸한 학교, 그럴싸한 직업, 그럴싸한 회사를 갖지 못해 괴로웠다. 그리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은 비교급에 의한 것이었고,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앞에 글에서 말했듯, 내 첫 회사는 편의점 회사였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학교를 나왔고, 매일 밤 11시를 훌쩍 넘는 시간까지 하버드 비즈니스 케이스 스터디를 하는 학회도 했고, 교환학생도 했고, 인턴 경험도 있지만 졸업 후 내게 주어진 회사가 편의점 회사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회사 유니폼인 조끼를 입고 있을 때 나를 아는 누군가를 마주칠까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하지만 취업이 어려웠던 터라, 다시 취업 준비할 자신은 없었고 그래도 매달 찍히는 월급이 취준생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나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사실이어서, 처음에는 이 괴리감에 적응해보려 했다. 취준생 때는 비싸서 못 다니던 피아노 학원도 다녔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도피라는 생각뿐이었다. 피아노를 치는 순간은 괴리감이 사라질지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까라면 까’라는 문화를 보면서 논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대학생 때 왜 그렇게 노력했는지 현타, 그렇게 노력해서 겨우 입사할 수 있었던 회사가 이 정도라는 분노. 많은 감정들로 잠 못 이루던 시기였다.
원하던 나를 만나기까지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라는 소설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예술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사람이,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천천히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제가 얼마나 자주 봤는지 아십니까? ... 큰 회사에 다니고, 가업을 잇고, 대단한 돈을 거머쥐고, 다정한 반려인이나 귀여운 아이들을 얻고 나서도 무언가 안에서 그네들을 갉아먹습니다. 차라리 예술을 편히 시작할 수 있었을 나이에 시작했더라면, 그 성취나 결과가 형편없었을지는 몰라도 나았을 겁니다. 자기 자식이 어떤 성품인지 다 아실 테니 재능의 있고 없고를 떠나,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해칠 것 같습니까? 즐겁게 그리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지,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하는지 관찰하십시오.... 그런 아이들을 움직이는 엔진은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습니다.
이 문장들을 읽으며, 나를 읽었다. 한 번 갖겠다고 생각이 든 것은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고 가지기 전까지는 저 문장의 ‘갉아먹는다’는 표현처럼 나를 갉아먹는다. 초년생 때 내가 원하는 것은 남들의 시선이 전부였고, 그것이 갖기 힘들다고 목표를 낮춰가며 나를 갉아먹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원하는 나를 만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내가 괴리감을 극복한 것은 결국에는 그 타이틀을 가져본 후였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회사라는 타이틀을 겪고서야 내게 있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그 시기는 내 스스로가 버거워할 만큼 힘든 시기이기도 했지만, 겪지 않았다면 나는 끊임없이 그 세계를 동경한 채 가지 못한 곳을 바라보느라 힘들어했을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회사를 다녀보면서 내가 가진 것에 만족도 해보았고, 그토록 아등바등 가지려 노력했던 회사도 결국에는 사람 사는 곳이고, 이곳만의 힘든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남들의 시선에 자유롭게 되었다. 100% 독립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타이틀 외에 갖고 싶은 것을 찾는다던지,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내게 맞는 회사를 찾는 기준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원하는 나를 만나기까지 3가지 이야기
10년의 시간 동안 괴리감을 느꼈던 시간은 크게 2번 있었고, 그 과정에서 3가지를 배웠다.
1.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경험
고등학생 때까지 현실감각이 없었다. 내 성적이 원하는 학교를 갈 수 있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지방에 있는 한 학교에서 잘한다는 이유로 막연히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갈 것이다 미래를 꿈꾸었다. 그러다 수능을 치고 내가 실제로 갈 수 있는 학교 리스트가 정해지고, 그나마 최선이었던 지방에 있는 교대를 가게 되었다.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괴리감을 느꼈다. 누군가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묻는다면 어떤 것도 필요 없이 내 상황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밤에 자려고 누워도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교대에서 배우는 단소불기, 뜀틀 뛰기보다 더 어려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답답해 잠도 쉬이 못 들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수능을 볼 자신은 없고, 이도저도 못한 채 답답해했다.
그러다 다시 마음을 먹고 무언가를 해보겠다 마음먹은 후부터는 더 이상 내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반수를 했던 1년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상상도 없이 그저 '오늘 할 일'만 생각했다.
그렇게 수능을 끝내고 내게 남은 감정은 ‘진인사 대천명’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았고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안된다면 그저 내 길이 아닐 뿐이고, 이제는 미련 없이 좋은 선생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 남았다. 깔끔하게 포기가 됐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마음으로 1년을 보내자, 원하던 결과도 얻게 됐다. 그때 깨달은 것은, 나를 가장 괴롭히는 그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나면 결과와 상관없이 내 스스로에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이상은 저 멀리 있는데 오늘의 내가 달리지 않을 때, 외면하고 있을 때가 제일 괴로웠다.
2. 그래서 결국은 가져 보는 것
그렇게 더는 괴리가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초년생 때 회사를 다니면서 또 괴리감을 느꼈다. 마케터로 네임밸류가 있는 곳에서 일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내 커리어의 시작은 편의점 회사, 그리고 그 다음은 스타트업이었다. 이미 스타트업이 나와 맞다는 것을 편의점 퇴사 후 조인했던 첫 스타트업에서 알았으면서도 늘 의심했었다. 내가 작은 조직에 있어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스타트업이 재밌다고 느껴지는 것은 혹 여우의 신포도처럼 자기 합리화가 아닌지 의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브랜딩을 배우고 싶었고 큰 기업에서 제대로 일해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기에 P&G를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운 것도 맞지만 결국 내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은 스타트업이라는 것도 절실히 깨달았던 것도 사실이다. 남들이 다들 가고 싶어 하는 회사였지만 나는 그곳이 힘들었다. 그때 내게 맞는 곳, 맞지 않는 곳이 있을 뿐 '절대적으로 모두에게 좋은 회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네임밸류 있는 회사라는 것이 PLC (Product life cycle)에 있어 성숙단계에 속하는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곳에서는 리스크 관리 때문에 무언가를 해보려면 내부 설득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것 등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력서의 잦은 이직 또한 흠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에 3년은 다니자고 나를 달래던 시기였다. 3년은 다니자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다시 좋아하던 스타트업 필드로 나오면서 이제야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 3년의 시간 동안 남들이 가고자 하는 회사도 그 회사만의 고충이 있음을 깨달았고,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도 그것이 더 이상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스타트업으로 나온 이후, 누군가 어느 회사를 다니냐고 물으면,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한참을 설명해야 할 때도 있었고, 동료가 “왜 그렇게 좋은 회사 관두고 오셨어요?”라고 묻거나, 동료들끼리 ‘아 공부 좀 더 열심히 해서 이런 곳 오지 말 걸.’하며 자조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나는 내가 아쉬워서 모자라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내가 회사를 키워가는 것이 재밌기에 이곳에 있는 것이기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자존감이 깎이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또다시 이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설명하는 삶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내면의 모든 것은 충족되었고 ‘일의 재미’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재밌어하는 일을 선택해도 더 이상 마음이 시끄럽지 않은 상태. 원하던 나를 만났다. 그렇게 남이 보는 내가 어떤지에 대해 안절부절못하던 내가 사라졌다.
3.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갈 것
그렇게 남들의 시선에 독립한 이후에 그때부터 내가 나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 일에서는 P&G에서 배운 것에 더해 내가 기존에 잘하던 것들이 접목되면서 정말 신나게 일을 했고, 그 일들에서 얻게 된 깨달음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시작되었다. 예전부터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아 글로 써보고 싶었지만 그동안은 일에 치여 무언가를 더 해볼 생각을 못했는데 내가 잘하는 곳에 있고, 신나게 일을 하게 되자 일은 많아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볼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고, 퇴근길에 글감을 핸드폰 메모장에 하나씩 정리하고, 잠들기 전 오늘 계획했던 일을 끝냈고 메모장에 쌓여가던 글감을 정리해 글을 발행하고 나면 찾아오는 뿌듯함을 즐기며, 뿌듯한 날들을 하루씩 하루씩 늘려갔다.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기에,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끝났다고 확답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오늘의 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괴로워하지는 않게 되었다. 내 시선을 남에게서 나로 가져왔고,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내가 행복한 기준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고, 그리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그 기억. 그것이 내 두 눈을 이상에서 현실로 데려왔다.
자꾸 높은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가 싫어질 때
우연히 동상이몽에서 김소영 씨가 심리상담을 받는 이야기를 보았는데, 너무 와닿아 노트에 적었다.
잘하고 싶다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다. 목적지를 모른 채 달릴 수도 있다. 목적지를 몰라도 괜찮다. 이루고 나서야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했는지 뒤늦게 그 이유를 알 수도 있다. 이루는 동안에는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달리는 동안 종착지를 몰라 불안해도, 나중에 삶의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그리고 나를 채찍질하는 성격으로 얻은 것도 많지만, 나는 한시도 나를 편히 못 두는 내 성격을 싫어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때도 내 아이는 내 성격을 닮지 않고 그냥 하루의 행복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성격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아이가 혹여라도 이상향을 높게 세우는 스스로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적어도 삼십 대가 된 나는 이것을 어떻게 컨트롤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이 이야기를 꼭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글들을 쓰면서, 내가 그렇게 열심히 달려온 이유가 이 글들을 쓰기 위해서는 아닐까 생각했다. 10년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나와 공존해 가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고, 이렇게 글로 정리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와서 보면 욕심 많은 나를 다루는 법을 명확하게 깨달은 것 같지만, 사람인지라 늘 일관되게 선택할 수도 없었다. 내 성격은 욕심은 많아서,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싶었고, 그러면서 안정성도 있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회사가 네임밸류는 있었으면 좋겠고 등등 원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일관된 선택을 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줄다리기하듯 어떤 때는 남들의 시선이 이겨서 좋아하는 일이 따로 있는 것을 알면서도 네임밸류를 선택할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지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렇게 P&G에 있을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늘 생각했고, 스타트업에 있을 때는 어떤 날에는 안정성을, 네임밸류를 아쉬워했다. 그러다 내가 글로 남길 수 있는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가 회사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 밖에서도 혼자 설 수 있는 사람, 나만의 길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 10년간 이어오던 줄다리기가 끝났다. 더는 회사라는 타이틀로만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기에,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곳에서 일하면서 글을 꾸준히 남기자는 생각만 남았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10년간의 줄다리기가 있었기에 온 깨달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욕심 때문에 힘든 사람이 있다면, 어떤 때는 내 선택에 이기기도 지기도 하면서 내 스스로와 친해지는 법을 깨닫는다는 것을 꼭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