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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일을 찾아가는 과정

by Onda

내게 맞는 3가지 층위의 일을 찾기 위해, 1) 끌리는 일을 찾고 2) 내게 맞지 않는 일을 소거해 나가며 3) 미래의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야 한다고 했다.


계속되는 세부 조정

이 과정을 통해 초년생 때는 ‘있어 보이는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라는 네임 밸류라는 업 가치관과 ‘마케터로 일하면 좋겠다’ 정도의 내게 맞는 일에 대한 생각이 많이 구체화되었다. 10년 동안의 세부 조정을 통해, 내 업 가치관은 성장이고 내가 마케팅 그중에서도 어떤 성격을 띤 마케팅 일을 좋아하는지 점차 세분화하며, 나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제보다 오늘 성장했는가?’라는 성장이라는 가치관이 제일 중요했다. 직접 경험하면서 내게 무엇이 충족되지 않을 때 괴로운가를 돌이켜보면, 초년생 시절 낮은 월급이나 부족한 워라밸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성장이 멈춘 순간이었다. 나는 여러 상황에서 불안을 느꼈는데, 특히 성장이 멈춘 순간에는 ‘이러다 도태되는 거 아니야?’ 같은 질문과 함께 무언가 더 배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내게 마케팅이 잘 맞았던 것은 맞았지만, 그 영역도 점차 세분화되었다. 여러 개의 회사를 경험해 보면서, 산업군으로는 여러 브랜드들의 상품을 모아 놓고 판매하는 유통 플랫폼보다는 우리의 상품을 파는 브랜드사가 더 내게 맞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브랜드의 메시지를 개발하고 이를 잘 알리는 것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데, 브랜드사에서는 중요했던 활동이 플랫폼에서는 그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PLC (Product Life Cycle,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 시점부터 사라질 때까지의 단계,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로 보면 성숙기에 접어든 기업보다는 도입기 또는 성장기의 스타트업이 더 잘 맞았다. 규율이 적고, 내가 해볼 수 있는 룸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렇게 산업군, PLC, 조직문화 등 새로운 기준을 찾아가면서, 내게 맞는 일을 점차 세분화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회사는 힘들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내가 기꺼이 괴로워할 수 있는 곳을 세부 조정해 나가며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선택의 근간에 있던 업 가치관 ‘성장’이 맞는가 라는 질문을 만났다. 그동안 ‘성장’이라는 가치관에 1) 직무 2) 인더스트리 3) PLC 4) 조직문화라는 순으로 내가 가장 즐겁게 일하면서도 성장하고 싶은 영역을 정의해 왔었다. 좋은 마케터가 되고 싶었고 더 내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5), 6), 7)에 해당하는 기준들이 생겨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유를 찾지 않던 것들에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또 다른 나를 만나다 - 나는 끊임없이 변하고 내게 맞는 일도 바뀐다.

정답인 줄 알았던 업 가치관, 내게 맞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 나의 기준에 맞춰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왔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것은 그저 재밌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떠나는 것에 가깝다. ‘미래의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설명했던 것처럼, 오늘의 나는 괴로울지라도 미래의 내게 필요한 일에 시간을 쏟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자 내가 변했다. 과거의 내가 묻지 않던 질문이 들기 시작했다.


성장 그렇게 해서 뭐 할 건데?

예전에는 야근을 해도 기회비용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성장하느라 야근하는 시간의 기회비용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야근을 며칠 반복하고 나면, 아이의 깨어있는 얼굴을 보지 못한 날이 며칠 쌓였다. 그 사이 아이는 어제까지 말 못 하던 단어를 배워 말하기도 하고, 새로운 개인기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무얼 위해 이걸 놓치고 있나,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 또한 아이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인데 주객전도 되는 상황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돈을 쓰고, 한 번 지갑을 열 때 더 많이 쓰도록 하는 일에서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라는 질문 또한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의미 없다’라는 대답이 내 내면에서 계속 들려왔다. 그동안 내가 묻지 않던 새로운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업무적으로 더 성장이 없을지라도, 더 극단적으로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더라도, 내가 의미 있다 생각한 일, 지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이커머스에서 퇴사를 번복하며 남았지만 그로부터 1년 반 정도 버티는 시간을 보내면서 내 업 가치관이 바뀌었다. 데이터를 보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을 더 배우고 싶어 남았지만, 사람들이 돈을 더 쓰는 것만 생각하는 일을 더 이상 잘해보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시점이 왔음을 알았다.


그와 동시에 글쓰기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예전에도 내가 시간이 나면 하고 있던 일은 일하면서 배운 것을 글로 남기는 것이었다. 내게 유일하게 허락된 개인 시간, 출근 전 아이가 깨기 전 한 시간, 주말에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키즈 카페에 간 시간. 내게 허락된 이 시간에 늘 글을 써왔는데 그 시간만으로는 부족해 다 쓰지 못한 채 쓰고 싶은 글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의미’를 묻기 시작한 업 가치관, 새롭게 잘해보고 싶은 ‘글쓰기’라는 일. 내가 지난 10년의 나와 또 다른 갈림길에 서있는 것을 깨닫고 5개월 정도 글쓰기라는 새로운 일로 독립할 수 있을지 실험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나다운 일을 찾는 건 한순간의 결정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계속 세부 조정하고, 또 나는 바뀔 수 있으니까 바뀐 나에게 맞는 일을 늘 다시 찾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괴로워야 하나

친구들과 만나면 늘 회사 이야기, 일 이야기, 앞으로의 인생 이야기를 한다. 초년생 때는 취업이 왜 이렇게 힘든지,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일의 불균형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10년쯤 뒤에는 안정적으로 살고 있겠지 라며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헤어졌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고민 속에 있다.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이제는 회사를 독립하고 나만의 일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우리가 매번 만나 이야기하는 것들에 정답은 없지만, 단 하나 명확한 것은 아마 또 새로운 10년 뒤에도, 우리는 일 이야기를 하고, 무얼 하면서 먹고살아야 할지, 또 일과 일상의 괴리를 이야기할 것이라는 것이다. (지겹지만) 아마 은퇴라는 것을 하기 직전까지, 우리는 내게 맞는 일을 찾고 세부 조정하는 것을 계속한다는 것만은 명확하다. 모두가 다 같이 괴롭게 고민하는 주제라고 이야기하면 조금의 위로라도 될는지. 정말 끝이 없는 세부조정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내게 맞는 일을 찾고 도전해 나갈 때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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