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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적당한 거리 두는 법

회사에서만 내 쓸모를 찾고 있다면,

by Onda

일과 나, 거리를 둘 수 있을까

일에서 많은 걸 기대했다. 돈도 벌어야 했고, 세상에 나를 설명할 단어가 회사밖에 없어 네임밸류도 필요했다. 자아실현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일에서 너무 많은 것을 찾을 때면, ‘어느 회사 다니는 누구’라는 정체성이 커졌다.


그리고 회사 역시도 내게 많은 것을 기대했다. 역량이 있는지 없는지를 끊임없이 판단했고, 쓸모없다고 느끼면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려 했다. 그래서 회사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집에 오면 진이 빠져 다른 무엇도 할 수 없을 때까지, 회사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렇게 한계에 다다르는 일이 반복되었다.

일과 너무 가까워진 탓에, 나의 행복은 일에 의해 쉽게 좌지우지되었다.


너는 나의 쓸모야, 나는 너의 쓸모고.

이 글을 쓰게 된 건 드라마 ‘무빙’ 속 한 문장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며 주눅 들어 있던 주인공에게 아내가 고기쌈을 싸주며 말한다.


넌 나의 쓸모고, 난 너의 쓸모라고.



일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 것

누군가는 내 쓸모를 따지지만, 누군가는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

아이는 말한다. 그냥 엄마라서 좋다고. 내가 밥을 잘 챙겨줘서도 아니고, 많이 놀아줘서도 아니다. 그냥 엄마라서 좋다고. 나도 그렇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어도, 말썽을 피워도, 잠을 안 자 새벽에 나를 괴롭게 해도, 그냥 내 딸이어서 좋다. 그렇게 우리 엄마도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쓸모와 상관없이, 나를 지속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내가 이렇게 쓰는 글. 나는 쓸모를 따지며 글을 쓰지 않는다. 돈을 떠나서, 평가를 떠나서, 쓰지 않고는 못 배겨서 쓰게 된다. 굳이 출근 전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 잠을 포기하고, 주말 노는 시간을 포기하고서 쓰고 있다. 이 또한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회사 일은 내 인생의 1/3, 나의 또 다른 2/3 찾기

회사와 거리를 둔다는 건,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중요한 것을 기억하다 보면 회사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은 낮아지지 않을까. 내게는 그것이 가족, 글쓰기라는 나의 일상, 그리고 일이었다.


일과 적당한 거리 두는 법

나도 잘 못하지만 몇 년의 경험을 통해 배운 적당한 거리 두는 법은 다음 3가지였다.


1. 먼저 일에 있어서,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필요했다.

역설적이게도 회사 일과 적당히 거리를 두려면 먼저 최선을 다해야 했다. 최선을 다하고 나면 남들의 시선이, 결과가 중요해지지 않는다. 교대 다닐 때 반수를 했는데, 다시 돌아가도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노력했다. 시험을 다 치고 나서 ‘이제는 좋은 선생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했고,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아 교대에 남게 되더라도 후회가 없어서, 이제는 내게 주어진 길을 잘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좋은 결과가 따라왔었다.


그때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을 경험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하고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겠다.’ 회사 일도 똑같았다. 내가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어제보다 오늘 성장했고, 그런데도 회사가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뭐 별 수 있나. 나는 여기서 이런 걸 배웠고, 앞으로 이런 걸 배우고 싶고, 그냥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2. 그리고 내가 시간을 쏟는 만큼 중요해진다.

정말 중요한 것은 급하지가 않아서

내 존재 이유 같은 가족과 글쓰기는 중요하지만 급하지가 않다. 아이와 애착을 쌓는 것, 내 생각을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야 하는 일인지라 오늘 하루 빼먹는다 해도 티 나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가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며 채찍질할 때는 이것보다 급한 상황은 없다 보니 회사 일에 끌려다니곤 했다.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렇게 글 쓰는 나, 아이의 엄마인 나,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인 나, 소중한 나를 뒷전으로 미뤄왔다. 하지만 언젠가 대체될 게 당연한 일에만 시간을 쏟고, 그곳에서만 내 쓸모를 찾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 본다.


어린 왕자에 이런 말이 나온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그 장미를 위해 소비한 시간이야

물론 물리적으로 회사에 많은 시간을 쏟을 수밖에 없지만, 그 외의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돌이켜본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야 하고, 내가 시간을 쏟는 만큼 더 중요해지고, 소중해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기 전 매일 생각한다. 아이는 이미 나를 12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내가 오늘 아무리 지쳤어도 아이가 나를 기다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아이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면, 아이는 늘 반갑게 ‘엄마~’하고 부르며 꼭 안아준다. 늘 나를 이해해 준다는 이유로, 오늘 빠져도 티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요한 것을 후순위로 두지 않겠다고 매번 다짐한다.


3. 일 말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야 한다.

이 부분은 예전에 쓴 글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회사와 상관없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하나 생겼다.

쓰는 사람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비즈니스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지만, 내가 오늘 글을 쓰기만 하면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고, 저 먼 목적지로 '누군가 읽고 힘이 되는 글을 하나 남기면 잘 산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회사에서의 쓸모를 떠나, 내게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짧더라도 매일 시간을 내는 것. 그것이 회사와 적당한 거리를 만드는 법, 회사보다 더 중요한 나를 다시 한번 인지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는 일보다 더 큰 존재니까, 나는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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