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의 나에게 집중할 것

일에 관한 두 가지 상반된 조언 사이에서

by Onda

내 마음을 중심에 두기 위해서는 내 시선을 오늘에 두어야 했다. 이번 글에서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내가 헷갈렸던 두 가지 상반된 조언

일하는 것과 관련하여 여러 조언이 있지만 상반된 두 가지 조언 사이에서 헷갈렸다.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부터 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투자해야 한다.

P&G에 입사하고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잘못 왔는데? 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바로 했지만, 누가 봐도 내 미래를 생각하면 좋은 회사였고, ‘그래 3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다니자’라는 마음으로 버티기로 결정했었다. 그런데 버티는 3년의 나도 나라는 사실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그 시간 동안 매일은 아니었지만, 다 같이 하하 호호 웃는 자리에서 웃음이 나지 않아 어색하게 억지미소를 짓고, 야근하고 밤늦게 집에 도착해서는 불을 켤 힘조차 없이 어두운 원룸방에 멍하니 앉아있고는 했다.


오늘을 사세요.

그러다 조승연 님이 911 테러를 보고, 그때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던 형들을 떠올리며 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당시 경영대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형들이 있는데 항상 하는 말이 뭐였냐면, 월스트리트 은행에서 일하면 매일 죽고 싶대요. 근데 자기는 버틸 거래요. 거기서 10년만 버티면, 나중에 중소기업 CEO로 스카우트될 수도 있고, 나중에 그 돈 가지고 나와서 조그만 사업도 할 수 있대요. 나 서핑하러 가겠다, 비행기 조종하는 거 배우러 가겠다. 그 형들 중에 8년, 9년 채운 형들이 그 건물 안에 있었어요. 1년, 2년만 남은 형들이. 10년 뒤에 나한테 도움 될게 뭘지 어차피 모른다고 그랬죠. 그러면 뭘 하는 게 맞을까요? 당연히 내가 끌리는 거를 하는 게 맞겠죠.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 시간들을 채우고서 내가 인생을 살려고 그랬을 때, 내 인생이 10년 동안 날 기다려줄지 아닐지 몰라요.”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내 상황을 돌아보았다.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부터 해야 한다는데, 내가 그러면 원하는 게 뭐지?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마케터를 하고 싶었고, 좋은 마케터가 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배우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무엇을 배웠나?

그러다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 올림픽을 앞둔 운동선수를 생각했다. 운동선수가 원하는 것이 4년마다 있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라면, 금메달은 오늘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보상을 위해 루틴을 지키고 매일매일을 체육관에서 땀을 흘려야 했다.


그래서 오늘의 행복만 생각하며 해이하게 살 것도 아니었다. 오늘이 행복하더라도 미래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놓친다면 인생 전체로 보았을 때 더 불행할 테니. 그렇다고 미래의 나를 위해 그저 오늘을 저당 잡을 것도 아니었다. 원하는 것이 미래에 있어서 오늘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럴 때에 시선을 오늘에 두는 게 필요했다.


1. 먼저 최소한의 기본 조건으로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방향과 지금 하는 일은 맞아야 한다.

월스트리트에 다니는데 파일럿이 되고 싶다면 바로 파일럿이 되기 위해 떠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마케팅을 배우고 싶었고, 내가 있던 회사가 마케팅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은 맞았기에, 다행히 방향은 맞게 설정했었다.


2.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큰 카테고리 안에서 맞다면, 거기서부터는 오늘 내가 배우는 것에 집중하며 오늘을 살아야 했다.

그러고 나서 ‘오늘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만 생각해야 했다. 내가 그당시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오늘 무엇을 배웠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P&G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몇 년 뒤에 더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시선을 미래로 둔 채 버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오늘은 이런 걸 배웠네, 다음에는 이렇게 써먹어야겠다’처럼 오늘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나는 그래서 무엇을 잘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면서 배우는 즐거움을 오늘부터라도 느껴야 했었다.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부터 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투자해야 한다

두 가지 조언이 전혀 상반되어 보이지만, 그 조언의 공통은 ‘오늘’을 중심에 두는 자세였다.


그 이후 다시 만나게 된 버티는 시간

버티는 시간은 초년생 때만 필요한 줄 알았지만, 9년 차가 지난 시점에도 버티는 시간을 다시 만나게 됐다. 여러 회사를 경험하며 내가 브랜드사에 맞다는 것은 알았지만, 커리어를 더 잘 그리기 위해서 이커머스를 경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이곳에서 버티는 마음을 다시 만났다. 하지만 회사라는 곳은 자신의 쓸모를 계속해서 증명해야 하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다닐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를 앞두게 됐었다.

그래도 내가 여러 경험을 통해 얻었던 태도, 먼 미래를 생각할 것 없이 '오늘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만 집중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이건 내 일이고, 오늘 내가 뭘 배우고 있는지에 집중했다. 그 덕분인지 퇴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표님은 그것을 보면서 내가 이곳에서 함께 ‘내가 잘하고 싶은 영역’을 키워나갈 수 있을 거라 판단하셨는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을 제안 주시면서 회사에 남게 되었다. 마지막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면 이 기회는 없었는데, 이 경험으로 다시 한번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는 이동진 평론가가가 말했던 것처럼 한 문장을 얻었다.


그런데 예전의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반대로 행동한다. ‘하루하루는 되는대로, 인생전체 계획은 성실하게’ 내 일을 집중해서 해야 하는 시간에 인생 계획을 세우고 그럴싸한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시선을 미래로 두다 보니 오늘과의 괴리도 때문에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냥 미래에 대해 더 생각하지도 말고, 아무 생각 없이 당장의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된다.


오늘을 버틴 그 이후

3년을 버틴 후 무슨 일이 있었는가 생각해 보면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내게 맞는 환경으로 떠나서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일했었다. 또 최근에 경험했던 이커머스 회사처럼 일이 힘든 상황이 오기도 했지만, 한 번 ‘오늘만 보면서 버틴 경험’ 덕분인지 맷집이 생겨서 해볼 만하다고 느꼈었다. 내가 과거에 버티는 동안 일에 있어서 성장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 깊이가 커졌고, 힘든 상황을 버텨내는 맷집도 세졌던 덕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두 가지 상반된 조언 사이에서 헷갈려한다면, 시선을 ‘오늘’에 두고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