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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관성의 힘으로

by Onda

몇 해 전 일이다. 어느 날 적막한 사무실에서 인턴이 갑자기 외마디 비명처럼 이런 말을 외쳤다.

“아 놀고 싶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말을 뱉어버린 인턴이 다들 귀엽다며 넘어갔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인턴이 죄송하다며 “다들 어떻게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해요?”라는 질문을 했었다. 그 당시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간 생각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어떤 날엔 열정도 있겠지만, 또 어떤 날은 ’그냥 해야지’ 하며 책상 앞에 반복해서 앉는 관성의 힘이 아닐까란 생각이었다.


그 인턴 친구처럼 나 역시도 가끔씩은 반복되는 일상이 눈에 너무 잘 보이는 날들이 있다. 어떤 일이든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긴장감 속에서 일을 시작하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일이 손에 익으면서 긴장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대신에 무언가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다들 이렇게 사는지’ 궁금증도 생긴다. 그때 나를 도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일의 의미를 찾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복되는 일상에 져버린 채 해이하게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의 힘이었다. 즐거움이나 설렘 대신 '내게 주어진 일이니 그냥 한다.', '그냥 해야지 어쩌겠어.' 이유 없는 관성, 그것이 나를 도왔다.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앞에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그 안에서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고 거기서 재미를 찾으며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앞의 일에만 집중할 것

회사에서 내게 조언을 해주시던 분이 계셨는데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분이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막일 현장을 갔었는데, 그날 옮겨야 할 벽돌이 너무 많아서 눈이 휘둥그레하고 있으니, 베테랑 아저씨가 "눈멀지 마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냥 한 번 나르는 벽돌 몇 장에만 집중하라고, 그걸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벽돌을 다 옮길 수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 “눈멀지 마라.”는 문장을 계속 곱씹고 있다.

회사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때도, 회사, 육아, 원고 작업 3가지 일이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 원고 작업을 다 할 수 있을지 막막했던 때에도, 앞으로의 일들에 까마득해질 때에 그 말을 반복했다.

“오늘 당장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하자.”

"그냥 오늘 써야 할 한 파트만 고민하자."

“아이 달래는 것만 생각하자.”


내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어도 난 오늘 할 일을 끝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나씩 오늘 할 일들을 지워가다 보니, 시간 속에 나를 던져둔 채 오늘 해야 하는 일만 집중하다 보니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커있고 원고는 마무리되어 책이 벌써 2권이 나왔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결국 오늘 하루를 어떻게 채우는 지였다.


그리고 반복

오늘 할 일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을 반복하면 된다. 무언가 할 일이 있으면 그냥 하고, 그 일을 더 잘할 방법이 무엇 일지만 고민하면서 반복하면 된다.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들이 켜켜이 쌓이면 단단해진다.

종종 미래에 달성해야 할 목표에 압도되기도 하고, 과거에 후회하기도 하는데, 시선을 오늘 하루에만 두고, 오늘도 "눈멀지 말자."라고 외친다.



화면 캡처 2023-06-06 184558.png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재즈 연주자로 사는 것을 평생 꿈꿔오던 주인공이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원하던 재즈 팀에서 첫 공연을 마치게 된다. 첫 공연에서 느꼈던 황홀함도 잠시, 퇴근길에 주인공은 무언가 허무함을 느끼고 동료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은 뭐죠?”

“내일 밤 다시 와서 또 하는 거지.”

“평생 오늘만을 기다렸는데 상상하던 기분과 좀 달라서요."


그러자 동료는 큰 바다를 찾는 물고기 이야기를 해준다.

I heard this story about a fish.

He swims up to an older fish and says,

"I'm trying to find this thing they call 'the ocean.!"

"The ocean? the older fish says, "That's what you're in right now."

"This?" says the young fish. "This is water. What I want is the ocean!"


큰 바다를 찾는 물고기에게 지금 있는 곳이 큰 바다라고 말해주자, 그 물고기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그냥 물이에요. 나는 큰 바다를 찾고 있다고요.’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에서 계속해서 열정을 찾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늘에서 부여된 것 같은 단 하나의 일을 기다리면서, 그런 일을 찾기만 하면 열정을 불사 지르며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런 일은 하늘에서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일에서 그런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렇게 관성의 힘으로, 매일 반복하며 성장하다 보면 어느새 큰 바다 안에서 신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또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상을 다시 새롭게 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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