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무례한 사람에 대처하는 법
이제는 회사에서 마음 단단히 일하는 것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동안 성과 중심의 회사를 다녀서인지 회사에 무례한 사람들이 많았다. 매일의 매출 목표, 압박감, 목에 칼이 들어온 느낌, 끊임없이 내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를 위해 예의를 차리고 다정하게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희귀하다. 이번 글에서는 왜 회사에는 무례한 사람이 계속 생겨나는지, 그리고 그런 사람을 대처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왜 회사에는 무례한 사람이 계속 생겨날까
회사라는 곳은 늘 이익을 창출해야 하다 보니 회사의 모든 프로젝트는 돈을 버는데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로 판단된다. 회사의 모든 일이 덧셈, 뺄셈으로만 판단되다 보니, 같이 일하는 동료마저도 이 사람이 가치판단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평가하게 된다. 주니어 때는 매니저가 나를 평가했고, 매니저가 되고 보니 내 위에 있는 누군가는 여전히 나를 평가하고, 이제는 밑에서 양 옆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두가 나를 판단한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이 질문을 던지고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면? 회사라는 곳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판단한 사람에게 더 이상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묵인하는 곳 같다.
한 번은 유관부서와의 미팅에서,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매니저가 계속 반박을 하면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내 얼굴이 다 화끈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미팅이 끝난 뒤 몇 명이 남은 자리에서 매니저는 자신의 감정이 격해졌다며, “그 사람 때문에 내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아 괴롭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그 표현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의 본모습이 그런 게 왜 그 사람 잘못인지? 일을 못한다는 게 인간적인 존중까지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인지?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이 사람에게는 평가의 대상이겠구나, 다행히 그날은 무사했지만 언제든 나 역시 도마 위에 오를 수 있겠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그 매니저는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사람 중 하나였다. 미팅에서 다소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음에도 동료들은 ‘진정해 보라’는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회사가 무례한 사람을 키워낸다고 생각했다. 일만 잘하면 되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그 에너지마저 아껴서 일하는데 쓰라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만 통용되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규칙과 정반대 되는 규칙들. ‘돈을 버는데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 하나로 모든 것이 묵인되었다.
- 일만 잘하면 그 사람이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 일을 못하는 사람이 문제다. 이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 내 쓸모는 내가 증명해야 한다.
쓸모를 증명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해서
회사의 룰처럼 계속해서 내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쓸모를 증명하는 일은 한 번 증명하고 나면 끝나는 성격의 일이 아니었다. 이동진 평론가가 어른이 되는 것은 전망대보다는 방파제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얘기했는데, 회사에 다니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내가 예전에 큰 파도를 잘 막았던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오늘의 파도를 잘 막는 것만 생각해야 한다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여유를 갖기 어려운 것도 맞다. 쓸모를 묻고 누군가를 막 대하는 사람마저도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니까. 회사는 모두에게 달성하기 버거운 목표를 준다. 그걸 달성함으로써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매니저라면 팀원의 퍼포먼스가 좋지 않은 것까지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계속 아웃풋을 잘 내는지 경쟁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결국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모두가 버거울 수밖에 없는데 함께 일하는 동료가 내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함께 해결책을 찾자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례해지는 사람이 있다.
무례한 사람을 만났다면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결국 나도 인간이다 보니, 누군가의 가치 판단에 늘 ‘도움이 된다’라고 판단될 수는 없다. 회사 생활이 괴로웠을 때를 돌이켜보면, 결국 내가 ‘이 회사에 부족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찍혔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연차가 낮을수록 ‘당장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긴 어렵고, 또 연차와 상관없이 이직을 하며 산업군이 바뀌거나, 조직 형태가 바뀌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직 초기에는 모두가 ‘쓸모를 입증’ 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내가 ‘이 회사에 부족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증명해 내는 것을 선택했다. 물론 도망쳐도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는 자존감이 바닥나고, 너무 주눅 들어 평소의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이대로 피하면 비슷한 시도를 다시는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은 해보고, 정말 아니라는 판단이 설 때 물러서자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선택했던 4가지 방식을 돌이켜보면 다음과 같다.
1. 먼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기
먼저 일로 증명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일 잘하는 사람처럼 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일 잘한다는 사람들을 따라 해 보며, 무작정 부딪히며 익혀 나갔다. 성장은 삽질하면서 계단식으로 변화가 일어나다 보니, 사실 하루아침에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삽질을 계속했었다.
2. 솔직하게 도움 요청하기
두 번째로는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솔직함의 힘을 믿는다. 물론 최소한 내가 뭘 모르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정리해야 했다. “이 부분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의 조언이 필요한데 가능할까요?”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혹시 그런 것도 모른다고 안 그래도 어려운 매니저가 실망할까 두려워도, 어차피 언젠가 드러날 일이라면 차라리 오늘, 빠르게 알리고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후회하지 않게 모든 것을 해보자고 생각했었다.
3. 피드백인지 단순 비난인지 구분하기
그리고 상대가 내게 의견을 줄 때 이것이 피드백인지 아니면 단순한 비난인지 구분했다. 상대가 내게 이 말을 하는 의도가, 이런 행동을 고치고 개선하라고 것인가? 단순히 왜 이렇게 못하냐고 비난하는 것인가?
개선하라는 말이면 개선하면 될 일이고, 비난이라면 상대가 지금 나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아 나를 비난하고 있네?’
그때는 이렇게 되물었었다. “그래서 매니저님께서는 지금 제가 무엇을 개선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매니저 역시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한 것이 단순 비난임을 깨닫고 말을 멈추고 개선점을 이야기하려 했다.
4. 스스로 당당해지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적인 존중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매니저는 바뀐 업무에 내가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다소 날카로운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이렇게까지 버티세요?”라는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우선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래도 어렵다면 퇴사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매니저님도 아시다시피 모두에게는 커리어가 중요하고, 그래서 그냥 그만두기보다는 제게 맞는 자리를 찾을 때까지는 이곳에서 버텨보려 합니다. 그래서 매니저님께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 시간이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만 더 너그러이 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말들을 꺼내며 내 마음을 다독이고, 내 편에 서주려는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렇게 버티고 견디며, 결국 맡았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내가 회사에 도움이 되자 내 쓸모를 묻던 괴로움이 끝났다. 사실 이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도움을 주느냐 여부로 관계가 악화되고 회복된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 과거의 냉정했던 태도는 어느새 사라졌고, 함께 웃으며 일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쓸모를 판단하는 곳에서는 내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냥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만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씁쓸했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회사는 그랬다.
이제는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초년생 때는 매니저만 나를 평가하는 줄 알았지만, 팀장이 되고 보니 매니저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팀원도 팀장을 막 대하는 경우가 있었다. 누가 봐도 공격적인 말투로 ‘문서 작업이 너무 많아요’, 내 지시에 대해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의구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때도 똑같이 나는 이게 정말 요청 사항일지, 아니면 단순한 비난인지 생각했다. 매니저가 일부러 문서 작업을 늘린 게 아니라 회사의 큰 방향과 환경 때문인데, 어딘가 비난할 대상이 필요해서 날을 세우는 것인가? 그때는 ‘회사에서 같이 월급 받는 직장인끼리 왜 날을 세우냐.’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럴 때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더 좋은 방법을 제안해 줄 수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상대도 뾰족한 답이 없다면? 그때는 '그냥 따르라'라고 직급으로 누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준 상처는 결국 돌아오게 되어 있어서
내가 회사 생활을 10년 하면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누군가에게 준 상처는 결국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무례하게 대하며 승승장구한 사람들도 언젠가 똑같은 이유로 상처받는다. 인간인지라 매번 일을 잘할 수만도 없고. 아니 일을 계속 잘하며 인정받더라도 몇 십 년 뒤에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은 것을 보고 내가 왜 그랬나 반성할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나중에 상처가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날을 세우면 결국 나만 손해다. 무례하고 날을 세우는 사람에게는 상대도 더는 에너지를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주니어가 날을 세우면 매니저가 입을 다물어 성장할 기회가 사라지고, 날을 세우는 매니저에게는 책 잡히고 싶지 않아서 최소한의 결과물만 공유하게 되고, 그만큼 접점은 없어지고 혼자가 된다.
다정하게 일합시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무례하게 대한다는 건, 나 역시 일을 잘 못하게 되면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일인 것 같다. 여유가 없는 상황일지라도, 상대를 생각하고 한 번 더 정제해서 단어를 고르고. 우리는 우리를 위해 다정하게 일해야 한다. 나도 힘들면 당연히 맞은편에 앉아있는 상대도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상처를 준다면? 내 일에 관한 피드백이라면 받아들이고, 일에 대한 피드백을 나에 대한 비난으로 확대 해석하지 말고. 이미 다친 것에는 더 마음 쓰지 말고, 여기서 어떻게 대처할지, 어떻게 나를 지킬지만 집중하기로 해본다.
작은 다정함이 모여 조금씩 바뀌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