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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자아는 내가 먹여 살리기로 했다.

직장인 독립실험 한 달여의 종료일을 앞두고

by Onda

직장인 독립 실험을 해보겠다며 시작한 휴직이 벌써 4개월이 지났다. 회사 일에 치여 쌓아만 두던 글감을 실컷 쓰겠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자 목표였다. 이제 기한이 한 달 정도 남았는데, Next step을 어떻게 할지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난주 금요일 답답한 마음에 집 밖을 나섰다. 에라이 모르겠다, 목적지는 없었고 노래나 들으며 실컷 생각정리나 하자며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때 했던 생각들을 정리해 둔다.


쓰고 싶었던 글들을 쓰고 나면 길이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쓰고 싶은 글만 늘어났다.

휴직을 시작하기 전에 그간 쓰고 싶던 글들을 실컷 쓰고 나면 다음 길이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 기간 동안 실컷 글을 쓴 것도 맞다. 지난 5년간 매년 올해의 목표에 있던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를 드디어 완성했고 (출간계약은 모르겠지만, 일단 완성했다.), 소설 한 편도 완성했다. 글을 써놓고 나면, 마음 건강과 관련된 회사에 입사해야겠다거나 창업해야겠는 등의 깨달음이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깨달음은 모르겠고, 특히 제대로 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함과 동시에, 소설을 더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닿고 있다.


한 번 잘해보고 싶은 영역

소설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지난주에 3개월에 걸친 소설 수업이 종강했다. 예전에도 꽃꽂이, 드립 커피, 캘리그래피 등 관심 있던 분야의 원데이클래스나 수업들을 들어보고는 했다. 보통 그런 수업들은 단기간 내에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그런 수업을 듣고 나면 오늘 하루 즐거웠고, 본업을 열심히 해야겠다로 귀결되고는 했다. 그런데 지난 3개월간 함께 했던 소설은 달랐다. 이 일은 돈이 되든 안 되든,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든 못 받든을 떠나서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 수업에서, 소설은 결국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을 조명하는 거라 배웠는데, 나는 조명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나의 우산이 되어주기로.

그래서 더 어려웠다. 소설을 하나 써보고서 이게 아니구나 싶으면 더 쉽게 회사로 돌아가는 선택을 할 것 같았는데 소설은 더 써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글로 돈을 많이 벌어 회사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해피엔딩은 없었다. 내가 쓴 글들이 주목 받아 돈을 버는 행복회로도 잠시간 돌리기는 했지만 그건 더 장기적인 이야기, 아니 그 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그저 확실한 하나는 여전히 더 글을 쓰고 싶다는 사실 하나.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하염없이 걸었다. (사연 있는 사람처럼 추운 겨울날 아아 한 잔 손에 들고는)


물론 글쓰기로 돈을 벌려면 방법은 있을 것도 같았다. 기고를 하거나, 최근 검색량이 뛰는 키워드를 잡아서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글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분명 있으니. 하지만 나는 돈을 벌기 위한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 문장이 스쳤다.


글 쓰는 자아가 버틸 수 있게
돈은 다른 곳에서 벌어줄게.


나라는 사람은 돈벌이를 외면할 수는 없어서, 수입 없이 글만 쓰다 보면 언젠가 내게 속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팔릴 글을, 정말 내가 쓰고 싶어 한다고 착각하고야 말 것 같았다. 그래서 글 쓰는 자아가 흔들리지 않게, 돈은 다른 내가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음만큼은 이미 작가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더 이상 내가 다치는 건 원치 않았다. 그래서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는 회사 말고, 고객보다 투자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숫자 만드는 회사 말고, 조금 느리더라도 우리 브랜드가 고객에게 무엇을 주는지 내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회사로 가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회사에 대한 고민은 아래 글에. :)

https://brunch.co.kr/@236project/179


그래서 글 쓰는 자아가 흔들리지 않게 새로 회사를 찾고 다니면서 돈을 벌고, 한 달에 한 개씩 이야기를 써내야겠다는 결론을 그 날 내렸다. 그렇게 회사 다니는 내게 최고의 선물은, 내가 쓴 소설일 테니까. 그 결심과 함께 헛웃음도 나왔다. 내가 언제 한 번 남들이 살라는 대로 살았던 적이 있나, 늘 그랬듯 나는 내 방식을 찾을 거라고.


휴직 기간 동안 후회 없이 글을 써본 듯하다. 그럼에도 또 글을 쓰고 싶다고 하니, 방법을 찾아야 할 뿐이고.

연말까지 소설 한 편을 더 쓰고, 이제 새롭게 일하러 갈 곳을 찾자고 결론 내렸다. 다시 회사 다니면서 글 쓰는 바쁜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며 11월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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