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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점검, 그리고 랄랄라로 처리될 시간에 대해

잠시 휴재를 알립니다

by Onda

<직장인 독립 실험> 연재를 잠시 멈추려 합니다.

이번 주는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고민했다. 개인 기록용 블로그 포스팅 대신 에세이를 선택했다 보니, 매주 내 상황을 관찰하면서 그래도 무언가 인사이트를 남기려 노력했다. 하지만 2주 전부터 아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덕분에, ‘직장인 독립 실험’이라는 주제로 사색하고 기록을 남기는 일이 어려워졌다. 이 시간에 대해 고민하다, 김영하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음악처럼,
삶의 어떤 부분들은 그냥 ‘랄랄라’들로 처리되어도 되지 않겠는가.


지금의 시간은 내게 랄랄라로 처리되는 시간이고, 이 또한 가치 있다고 생각해 오늘의 생각을 남기려 한다.


휴직을 계획하면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한 달간 제주살이 또한 계획했었다. 2주 전부터 먼저 거제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번 주부터 제주 한달살이가 시작되었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또 아이를 두고서 다른 무언가를 할 수는 없다. 그 말은 내 개인시간이 예전처럼 잠을 줄여 얻은 1시간 남짓만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2주 전을 기점으로 예전처럼 무언가 사색하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제주살이가 끝나는 날까지는 잠시 <직장인 독립 실험> 기록을 멈추고 자연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집중하려 한다.


지난 세 달의 회고

오늘 글에는 중간 점검 차 지난 세 달을 회고하려 한다. 실컷 글을 쓰고 읽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휴직했고, 그 마음을 실컷 채운 나날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내 일상을 보았다면 심심해 보일지도 대책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글을 쓰다가, 책을 읽다가 ‘아 너무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곤 했다. 성과까지는 아니지만 지난 세 달을 회고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제일 큰 건 그동안 회사 다니면서 내 마음이 하던 말 - '실컷 글 쓰고 싶다, 그냥 하루 종일 책만 읽으면서 살고 싶다'-대로 실컷 살았던 것. 책을 실컷 읽었는데 대부분은 소설이었다. <여름은 고작 계절>, <혼모노>, <절창>, <연수>, <돌이킬 수 있는>, <매듭의 끝>, 25년 신춘문예작들 <복 있는 자들>, <어떤 진심>... 등 많은 소설들을 읽으며, 이야기 속 삶에 푹 빠져 살다가 나왔다. 그리고 이 시기 동안 경제경영서는 손에 잘 잡히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박소령 님의 <실패를 통과하는 일>은 25년 최고의 책이었다. (이건 나중에 독후감을 써보기로.)


2. 작년 10월에 출판 계약했던, <일감각을 키우는 주니어 성장 노트> 교정을 마무리하고 9월에 책이 나왔다. 25년 상반기에 회사 일과 원고 작업을 병행하며 정말 ‘죽네사네’로 썼던 원고였기에, 완성 그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쓰느라 고생하기는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만 쓸 수 있었던 글이었다. 일을 처음 시작하는 주니어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란다.


3. 그리고 21년부터 쓰려고 벼르던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를 완성하고 브런치북 공모에 도전했다. 이 글은 늘 쓰고 싶어 했지만 내가 아직 짬바가 없어서, 회사에서 힘들었던 순간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매년 해야 할 일 첫 번째 목록에 있던 주제였다. 이 글을 마무리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4. 소설 수업을 듣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로 쓰고 싶다고 생각한 이야기가 있었고 우선 그 이야기를 쓰기는 했다. (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아직 많은 것들이 불확실한 가운데 단 하나, 내년에도 무얼 하든 소설은 쓰고 있지 않을까 하는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5. 그 외에도 충만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동안은 아침에 눈뜨면 건조해서 한쪽 눈은 뜨지도 못한 채로 바로 노트북 앞에 앉아 원고 작업을 하고, 출근해서는 늘 바쁘게 달리고, 퇴근해서는 아이를 재우다 12시를 넘기며 아이와 함께 잠들어버리는 일상을 살았다. 그 시간들과 다르게 지난 세 달을 돌이켜 보면, 운동도 시작했고, 아이를 하원시키고, 아이 친구 엄마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늘 말하던 것처럼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상을 보냈다. 휴직을 시작할 때 큰 목표가 있지는 않았지만, 쓰고 싶던 글들을 쓴다는 목표는 마무리한 듯하다.


앞으로 제주에서 무얼 하려 하나

이제는 아이와 함께 제주에 있다 보니 글 쓰는 것에도 조금은 제약이 생기는데, 조금이라도 조바심 내지 않고 이 시간을, 그리고 제주를 실컷 즐기려 한다. 물론 시간이 나는 대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하고는 있겠지만.


랄랄라 시간을 잘 보내고, 11월 셋째 주에 제주 한달살이 회고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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