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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읽고

by Onda

책은 진작에 읽었는데 잘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독후감이 늦어졌다. 지금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내 일을 점검하고 있는데, 이 시기에 읽게 되어 감사한 책이었다. 박소령 대표님이 퍼블리와 함께 한 10년을 그린 책이고,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과 다르게 결과를 만들기 위해 처절하게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책장을 넘기다 멈추기를 여러 번 생각에 잠겨 읽었다.


내게도 뜻깊은 브랜드, 퍼블리

퍼블리는 내게도 뜻깊은데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쓰며 살아가게 된 데는 퍼블리의 지분이 상당하다. ‘콘텐츠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사업을 시작한 누군가의 계기가, 나에게는 작가로서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박소령 대표님과도 몇 번 뵈었던 적이 있다. 퍼블리에 썼던 콘텐츠가 인연이 되어 21년에 한 번, 그리고 내가 첫 책을 내고 소령 님께 인사드리고 싶어서 뵈었던 23년. 그 시기를 돌이켜 보면, 21년은 퍼블리가 시리즈 B 투자를 받고 커리어리를 키우며 콘텐츠 회사에서 채용 서비스로 키우려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리고 23년은 대표님이 HR 담당자들을 만나며 직접 발로 뛰던 시기로 기억한다. 책에는 이런 시기들을 포함하여 퍼블리의 10년 역사가 나오는데 옆에서 종종 들었던 이야기도 포함되다 보니, 나의 이야기처럼 더 와닿았다. 살아남기 위한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라 정말 혀를 내두르면서 읽었는데, 내가 몸담고 있는 스타트업 씬이 이렇게 솔직한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책의 모든 부분이 공감되고 도움이 되어 포스트잇이 한가득이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3가지를 정리해두려 한다.


1.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해

나 역시 스타트업 씬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스타트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있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등등의 단어가 떠오르지만 이를 머릿속으로 아는 것과 마음 깊숙이 아는 것의 괴리가 있다는 말이 와닿았다. 나 역시 머리로는 스타트업이 임시 조직이라는 것을 알지만, 마케터로서 내가 해볼 수 있는 것이 많고, 회사 내 프로세스를 따르는 것보다 진짜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 등의 이유로 스타트업을 선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스타트업을 선택한다면 이제는 내 선택의 무게를 정확히 알고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달에 회사가 살아 있을지, 내년 이맘때 회사가 존재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그럼에도 나는 스타트업을 선택할 것인가. 그 문제를 풀 것인가.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물론 다른 조직도 마찬가지겠지만) 끊임없이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는, 수십 명 규모의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넷플릭스가 전 세계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확장하던 시기에 겪은 내부 진통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패티 맥코드에게 초기 멤버였던 팀원이 회사가 변했다며 불만을 토로하자, 당신은 50명 규모의 스타트업 조직에서 가장 행복해할 사람이라며 이제는 회사와 개인의 교집합이 종료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커리어 상담을 하러 찾아온 직원에게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계속 같은 회사에서 할 필요는 없다고도 조언한다. 차고를 짓기 위해 채용된 사람이 마당의 잔디를 깎는 데 필요하지는 않다는 비유를 들면서, 이 회사에서 당신의 역할은 완료되었다는 말을 전하기도 한다.


예전의 나도 조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마냥 예전의 조직을 그리워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것이 더 큰 성장, 생존을 위한 방향이었는지를 물었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모습을 바꾸는 것에 불만을 가질게 뭐가 있나. 나라는 사람이 계속 스타트업에서 일하려면, 계속 배우고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버티는 조직원으로서의 자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2. 나 자신을 속이지 말기

그리고 나 자신을 속이지 말 것. 나도 겪어보았는데, 내가 원한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 직접 경험해 보고 한두 꺼풀 벗겨내고 나면 정말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남들의 시선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를 여러 번. 왜 자꾸 내게 속을까? 깨달았지만 왜 다시 돌아올까? 가 내 고민 중 하나였는데, 박소령 대표님 역시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콘텐츠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라는 미션을 가지고 퍼블리를 시작했지만, 시장 크기 등의 이유로 지금 이 시점에 ‘새로운 CEO가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채용이라는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HR 담당자를 만나고 직접 발로 뛰어본 이후에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했다고 했다. 새 CEO가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을 걸고 사업하는 것인데. 콘텐츠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더 이상 그 길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이 내게도 전해졌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더 큰 시장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로, 더 높은 기업가치를 노릴 수 있다는 이유로 일하는 것은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접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잠깐은 할 수 있어도 오래 할 수는 없었다.

- 모든 회사가 유니콘이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으며, 작은 시장에서도 얼마든지 매출과 이익을 내며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 그러나 나는 인생의 미션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창업을 선택했다. 그러므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는 주체였다. 이건 새 CEO가 와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거니까. 내가 내 인생을 걸고 하는 것이니까.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이걸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좋아하나?’를 물어야 했다.


3. 끝을 함께하는 사람에 대해

마지막으로 또 인상 깊었던 부분은 끝을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박소령 대표님이 퍼블리를 그만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 끝을 함께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창업과 관련하여 공동창업자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지만 사실 처음만 중요할까. 실은 언제든 함께 할 수 있는 동업자가 필요한 것 아닌가 라는 고민을 하게 해 주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했는데, 예전의 나는 회사에 위기 신호가 보이면 더 안전한 회사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년생이었던 나에게는 그게 최선의 생존 전략이기도 했으니까, 그 당시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위기 때 함께 버티는 사람’, ‘끝을 함께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커리어가 조금 망가져 보일지라도, 적어도 내가 책임지고 싶은 문장이 무엇인지는 알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전체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초년생 때는 개인의 커리어가 중요했고,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전체 조직에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조직이 푸는 문제가 나 역시 공감하는 문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남들의 시선, 회사의 네임밸류나 연봉 같은 것들에서 한 발 물러나, 사람들이 ‘나답게 일하는 것’을 돕는 일에 마음이 간다. '시장이 얼마나 크고,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를 떠나서, 이 일이 정말 내가 내 인생을 걸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인가?' 이 질문을 붙들고, 다시 내 일을 점검해보려 한다.


대표님께도 오랜만에 인사를 드려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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