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안의 씨앗을 찾는 일, 소설 수업 첫 기록

by Onda

내가 늘 시간이 나면 하고 있는 것이 글을 읽고 쓰는 것이니, 5개월간 멈춤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 기간 동안 실컷 작가로 살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8월부터 실컷 글을 쓰면서 그동안 마무리하려고 벼르던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를 끝냈고, 지금은 소설 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아직 결과라고 부를만한 건 없지만 소설 수업을 듣는 것 또한 나답게 살기 실험의 한 갈래라 정리해보려 한다.


첫 수업에서 배웠던 것들

올 초부터 듣고 싶었지만 바빠서 계속 미루던 소설 수업을 9월이 되어 드디어 듣게 되었다. 첫 수업에서는 ‘왜 소설을 쓰는가’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글쓰기가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도 아닌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설을 쓰는 이유는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아서, 그 공백 상태를 견디기 어려워서 쓰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소설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소설은 '질문'이라고 했다. 그동안 사람들이 보지 않던 것에 대해 그것이 맞는지 묻는 것. 초년생 시절부터 내 지향점으로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소설의 정의 자체가 질문, 발견이라는 말에 감탄을 했다.


또 수업에서 좋았던 이야기는, 이야기를 쓰기 위한 조건은 (예를 들면 책을 몇 권 이상 읽어야 한다느니 같은) 없고 그냥 내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강생들끼리 각자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나라는 사람은 현실 세계에 두 발 딱 붙이고 사람 사는 이야기 하는 글들을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기도 했다. 그리고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쓸지 모른다고 했다. 내가 어떤 씨앗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미리 판단할 것도 아니고, 써 버릇하면서 내가 어떤 씨앗을 가진 작가인지 찾아야 한다는 말도 좋았다. 그동안의 회사 생활은 뭐가 됐든 빠르게 기다/아니다를 판단하는데, 적어도 소설이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씨앗을 계속 찾아나가는 것이고,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조명하면 된다는 그 말들이 좋았다.


나는 왜 소설을 쓰고 싶은가

수업을 들으면서 내 스스로에게도 왜 소설이 쓰고 싶은지 물었다. 그냥 이야기들을 읽다가 어느 순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마다 이야기로 도망치고 내 삶과 다른 이야기로 위로를 받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고 싶다는 것. 내게 독서는 수전 손택의 말처럼 작은 자살이었다. 내 삶이 너무 버거워, 지금의 나는 절대 선택할 수 없는 삶, 하지만 늘 꿈꾸는 다른 삶으로 도망쳤다.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그래서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적어도 그 시간 동안에는 괴로움을 잊고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내가 늘 하는 이야기는 같다

그리고 이야기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소재들을 보면, 아직까지 내 정체성이 직장인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모두 직장인의 애환과 관련이 있다. 휴직 기간 동안 첫 번째 과제로 두었던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를 또 다른 형태로 치환해 쓰고 있는 느낌이랄까. 내 안의 같은 질문을 다른 언어로 시도해보고 있는 것 같다.


영화감독 팀 버튼이 한 말이 기억에 난다.

나는 어떻게 보면 늘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만들고 또 만든다. … 사람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하나의 아이디어를 반복해서 계속 재탕하며 평생을 보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고, 예술가는 더더욱 그렇다. … 어떤 소재를 다루든, 결국 마지막에는 똑같은 집착을 조금 다른 각도로 접근한 것으로 끝난다. 이것은 꽤 화나는 일이다. 누구나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결코 끝나지 않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필사적으로 풀어야 할 저주인 셈이다.

내게는 직장인이라는 조건값이 나를 붙잡아두는 생각 중 하나인 듯하다. 월급을 받다 보니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가끔은 그게 화살을 만드는 일에 가까울 수도 있고 (누구나 갑옷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씨앗이 그런 직장인의 애환을 풀어낼 씨앗인지는 찬찬히 두고 볼 일이고.


에세이와 소설의 차이

마지막으로 소설을 배우면서 내가 그동안 써오던 에세이 (업세이기는 하지만)와는 준비 과정 또한 다르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내가 썼던 에세이는 내가 가졌던 질문을 내 경험이라는 소재를 통해 대답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구성 요소가 있다면 질문과 내 경험에 기반한 답변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글을 써오면서 내 글감 서랍에는 질문이 먼저 생기기도 하고, 소재가 먼저 쌓이기도 하면서, 차곡차곡 글감들이 쌓여왔다.


그런데 소설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 같다. 아직은 소설을 썼다기에는 거창하고 과제 하나 한 정도지만 내가 깨달은 걸 정리해 보면, 에세이는 질문과 대답을 직접적으로 말했다면 소설은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요소가 있는 것 같다. 캐릭터를 통해 보여줄 수도 있고, 사건, 배경, 여러 상징적인 요소 등등. 그래서 내가 그동안 쌓아온 글감 서랍처럼 소설 서랍을 만들어보려 하는데, 아직은 소설 서랍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어떤 내용들로 채워야 할지 몰라 충만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조차 내 속도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찬찬히 부딪히는 중이라 충만하다는 생각을 계속한다.



실험 이후의 삶이 어떨지 아직 그려보지는 못하고 있는데, 내년에도 소설 수업을 듣고 글을 쓰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머릿속으로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눈에 보이는 이야기로 꺼내기 위해서 열심히 써 버릇해야 하고, 몇 달 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찬찬히 해야 하는 큰 프로젝트가 이제 막 시작한 느낌이다.


이번 주는 특별한 성취가 있다기보다는, 소설 수업이라는 작은 시도를 잊지 않고 붙잡아두려는 일기 같다. 하지만 실험의 가치는 언제나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으니. 내가 어떤 씨앗을 품고 있는지 아직 모르지만, 그 씨앗을 찾기 위해 한 걸음 내디딘 기록이니, 이것 또한 나답게 살기를 위한 중요한 단서로 남겨두려 한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