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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Aug 24. 2023

시각 사오정

 어릴 적에 형광등처럼 말길을 잘 못 알아듣고 딴 소리를 하던 때가 종종 있었다.



남자 직원들의 짓궂은 농담도 그저 장난으로 치부하던 시절 나는 사오정처럼 그런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맑은 뇌를 가진 순수한 아가씨처럼 보인 적이 있었으니. 20대 초반 직장에서였다.



 당시 남자 친구(현재 남편 아님)데이트를 하며 갔었던 근사한 식당에 대해 사무실에 모인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한참 이런저런 잡담 끝에 한 유부남 직원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그 남자 친구랑은 어디까지 갔어?"



 저 질문에 진짜로 '지역'이나 '거리'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발언은 분명 성희롱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저급한 발언을 입에 담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한 것도 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되게 멀리 가본 적은 없어요. 가까운 데로만 다녀요."



그 직원의 당황스러운 표정에 나는 해맑게 웃어 주었다. 내 그 물음의 의미를 뒤늦게 깨달은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영화 '기생충'이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덩달아 감독 곁에서 통역을 해주던 통역사가 재치 있고 노련한 통역으로 함께 유명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멋진 말들을 확인하며 영어 표현을 익히고 있었다.



 한 토크쇼의 진행자가 영화의 핵심 내용을 누설할만한 대답을 요구하자 이에 대해 감독은 '무턱대고(전혀 모른 채) 봐야 한다'라고 대답하고 통역사는 그 말을 능숙하게 영어로 전달했다. 그 답변의 마지막을 장식한 단어는 '코울드'였다. cold?   나는 당장 네이버에 cold를 검색하고 사전을 클릭했다.  


 



 당연히 차가운, 추운 등의 뜻이 보이고 아래쪽으로 좀 내려가니 '부사 / 무턱대고, 계획 없이'가 보였다. 전에 배운 적이 있는데 까먹은 건지 아예 모르고 살아온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 통역사의 약력을 확인하고는 '외국에서 언어 공부한 사람은 절대 못 따라가겠군....' 하며 cold 단어의 새로운 뜻을 가슴속에 깊이 새겼다.  





 어느 날 버섯 반찬을 먹다가 그것의 영어 단어를 생각했다. 영어가 재미있는 것 중에 하나가 생각지도 못한 동사뜻도 있다는 것이다. 혹시? 하며 또 포털사이트를 열어 mushroom 단어를 검색했다. 영어 문장을 많이 말해보고 새로운 문장을 익혀야 단어도 자연스럽게 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태껏 버섯에 관련해서는 맛있게 요리해서 먹은 경험밖에 없으니 동사로서의 mushroom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한탄했다. 핑계도 참 좋다. 



그럼 그렇지. 버섯의 동사로서의 의미를 사전에서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이 단어를 동사로 사용하면 꽤 있어 보이겠는데? 또 가슴속에 새겨 넣었다. 




동사 : 버섯을 따러 가다 



 사전을 보다가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버섯을 따라간다고? follow? 버섯을 왜 따라가? 혼자 큭큭거리며 웃었다. 무슨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버섯을 왜 따라가래? 정말 재미있는 단어다. 

혼자 버섯 반찬을 먹으며 웃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며 사전을 다시 보았다. '따라가다'가 아니라 '따러 가다'였다.





 사투리의 영향인지 평소 쓰던 말투의 영향인지 나는 따러를 왜 '따라'로 이해를 했을까. 할머니나 부모님이 누군가를 따라가라고 말씀하실 때를 기억했다. 

"얼른 따러가, 부지런히 따러가!"

이렇게 말하지 "따. 라. 가"라고 바르게 발음해 주는 이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행히 내 생전 버섯을 '따라'갈 일은 없을테니 단어의 뜻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다.  



이건 뭐 사전을 찾아봐도 뒷북을 치고 있으니.....  

돋보기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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