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주사를 놔야 하는 내 입장도 번거롭지만 그것을 맞는 사람은 오죽할까 싶다. 나도 이제는 주사를 놓는 것에 도가 텄는데도 아이가 아프다고 하는 날이 있다. 그것이 나의 부주의 때문인지 아이의 컨디션 탓인지 알지는 못한다. 내 잘못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에게 '잘 참았다, 고생했다.' 칭찬하며 달래준다. 항상 잘 견뎠다고 말해주고 격려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더 많은 교감을 갖게 됐을 것이다. 이 숙제가 끝나면 아이와 가까이 앉아서 오늘도 잘 참았다고 수고했다고 칭찬을 해 줄 거리가 줄어들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나는 아이가 키가 작은 이유가 질병에 의해서 일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언젠가 크겠지 하면서 방임하던 나에게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아이의 몸에 이상이 있나 검사를 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하게 된 건 분명 운이 좋은 케이스다. 키가 많이 작으신 어르신들을 보면 저분도 혹시 그런 탓에 키가 작으신 걸까? 생각을 해본다. 물론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혹시 성장호르몬의 이상으로 키가 많이 작으신 거라면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이 정말 좋아졌다. 만약 성장호르몬의 이상이 아니더라도 의사의 처방 하에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장 호르몬을 더 주입하여 키가 더 큰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키와 관련하여 아이에게 유쾌하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다. 내 아이는 키는 작아도 활달하고 긍정적인 성격에 친구들과 곧 잘 어울렸다. 친한 친구 중에 반에서 가장 키 큰 친구도 있다. 가장 큰 아이와 가장 작은 아이가 어울려 다니는 것을 상상해보라. 딱 큰언니와 막냇동생이 있는 것 같다. 이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는 별로 친하지 않은 아이와의 일이었다. 그 아이는 딸아이의 키가 작은 것을 약점 잡으며 놀리곤 했다. 하루는 한참 어린 남동생을 옆에 세우고 누가 더 큰 가 대보자 하더란다. 이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마침 그날은 그 아이의 엄마도 있었지만 'OO이가 더 크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를 했다면서 아이는 짜증을 애써 감추며 나에게 털어놨다. 분명 그 심술궂은 친구는 자기 동생과 친구 중에 누가 더 큰 지 정말로 궁금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작은 아이를 골려주고자 먼저 시비를 건 것보다 언짢았던 부분은 그 엄마의 태도였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따끔하게 가르치지 않고 별일 아니라는 듯 대응했던 모습을 상상하니 안 좋은 감정을 조절하기가 어려울 정도여다. 상처받은 아이를 생각하면 밤에도 잠이 오질 않았다. 적당한 선에서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이런 상황은 또 벌어질 것이 뻔했다. 며칠 후 안 되겠다 싶어서 그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OO엄마 안녕하세요.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그 엄마는 점심시간이 되어 내게 전화를 했다. 내가 그 사건 때문에 연락을 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난 혹시라도 별일 아닌 것으로 유난을 떤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올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손은 떨리지만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물으며 우리 아이가 속상해했다고 하니 그 엄마는 당황을 한 눈치였다. 내 걱정이 무색하도록 그 엄마는 나의 말에 예의 있게 대응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시비를 걸고 못되게 굴었다는 사실에 다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 엄마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달하는 내 기분도 썩 좋지는 않았다.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며 그 아이가 내 아이의 키를 가지고 기분 상하게 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성장호르몬 주사의 목적은 단 한 가지다. 키를 더 키우기. 하지만 아이의 성격에 따라 이러한 상황이 자랑스러운 것 혹은 부끄러운 것이 되기도 한다. 큰 아이의 친구 중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가장 키가 작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제법 여유가 있는 그 아이의 부모는 아이에게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히기로 결심한다. 그 아이는 성장 호르몬 결핍 증상을 앓는 아이가 아니었다. 아니, 여유로운 부모 입장에서는 성장호르몬 결핍 여부를 알 필요가 없었다. 비용이 얼마든 간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 성장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면 되었다. 부모의 재력 덕에 주사를 시작한 그 아이는 그 치료가 즐거운 듯했다. 성장호르몬 치료를 시작했으니 그 주사는 그 아이의 키를 보장해 줄 것이 분명했다. 큰 아이의 말에 의하면 아이는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다고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랑을 하곤 했다. 나도 너희들 키를 금방 따라잡을 거라고, 그 주사는 별거 아니라서 나 스스로 맞는다고 무용담 담처럼 이야기를 했단다. 실제로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무렵 그 아이의 키는 청소년 남자 평균 키를 훌쩍 넘겼다고 했다. 그 친구가 부쩍부쩍 키 크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우리 집 큰 아이의 '나도 키 크는 주사를 맞고 싶다'는 말은 내 가슴 한쪽을 짠하게 했다.
작은 아이의 경우는 달랐다. 키를 크게 하기 위해 주사를 맞는 것을 누군가 아는 것이 아이는 극도로 싫었다. 길을 가다가 '주사기'라는 말을 꺼내기라도 하면 아이는 신경질적으로 자기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쉿 쉿 시늉을 했다.
하루는 친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고 싶다며 아이가 전화를 했다. '주사 때문에 안돼!'라는 음성이 휴대폰 너머 곁에 있던 아이 친구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색한 순간을 넘긴 그때 작은 아이에게 동족 의식을 느낀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동족의 친구는 아이와 함께 귀가하며 뜻깊은 고백을 하더란다. 'ㅇㅇ아 너한테 해줄 비밀 얘기 하나 있어. 사실 나도 성장호르몬 주사 맞고 있어. 너한테만 얘기하는 거야.'
주사를 맞는 시간마다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하곤 했다. 이 사건이 있고 난 뒤에는 '이 주사 맞으면 키가 쑥쑥 클 거야, 걔보다도 더 클 테니까 걱정하지 마' 라며 주사기가 요술봉인 것처럼 주문을 걸고 아이가 그 마법에 걸리길 기대했다.
혈액 검사를 하고 일주일 후 병원에 갔다. 오늘이 아마 성장호르몬 치료를 지속할지 말지 결정이 내려지는 날이 될 것이다. 사실 눈으로 봤을 때도 최근 1년 가까이 키가 거의 크지 않았다. 아이 아빠와 나는 병원에 계속 가야 하나 갈팡질팡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면 의사 선생님의 '조금 더 해보자'라는 말씀 한마디가 마치 마지막 지푸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갑상선 기능은 정상이라고 하셨다. 6개월 동안 아이는 1.5cm를 자랐다. 최근 6개월간 자란 키가 1cm 미만일 때 성장호르몬의 치료 효과는 더 이상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이제 그만해도 되겠어요. 그동안 많이 자랐어요. '
주사 맞는 고생이 끝났다고 하니 시원함과 동시에 섭섭함이 밀려온다. 성장호르몬 주사가 요술봉이 돼주진 못했다. 드라마틱한 효과는커녕 요즘 청소년의 평균 키를 넘거나 한 것도 더더욱 아니었다. 엄마 아빠의 키를 통해 예측할 수 있는 키마저 도달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던 날들이 조금 보상이 되는 정도였다. 물론 아무리 좋은 약도 한계치가 있을 것이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작은데 네가 얼마나 크겠어? 이 정도면 된 거지. 안 그래?'
아이는 현실을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래도 이만큼 자라서 얼마나 다행이니. 물론 더 작아도 귀엽고 예쁜 엄마 딸이지만. 그동안 지긋지긋한 주사 잘 견뎌 내서 고맙고 기특하다. 마지막 주사기를 버리는 것이 왠지 아쉽다. 주사를 맞는 기간 동안 너에게 열심히 했던 격려와 칭찬 한 가지가 사라졌다. 그동안 수고했다,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