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계속>
나는 첫아이를 임신할 때부터 안 좋은 징조를 보이던 그것과 이별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결혼 10년 만의 일이었다. 임신을 하고 배가 불러오면서 그것도 빼꼼 얼굴을 내밀더니 출산을 하고 나서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참으로 고얀 놈이었다.
특별히 고통을 수반하는 것도 아니었고 가장 은밀한 곳에 꽁꽁 숨어있는 녀석의 존재를 다른 사람이 알 이유도 없었다. 가끔 몸이 피곤할 때 그것도 뒤질세라 평소보다 더 부어오르고 통증을 느끼게 하며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인터넷 육아 관련 카페에서도 그것으로 인해 불편을 호소하는 아기 엄아들의 사례는 왕왕 있었다. 나는 그것과 이별을 하고 싶었다. 나는 그 작은 콩만 한 것이 내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한다고 여겼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마치 등에 난 점처럼 아무도 모르는 것이 이상하게 나를 위축하게 했다.
"나 수술을 해야겠어. 며칠 전에 상담도 받았어."
나는 집 근처의 병원을 찾았다. 진료대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의사는 사양이 꽤 좋아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들어왔다. 옆에는 간호사가 상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어디 한번 봅시다."
나는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은밀한 부분을 노출해야 하는 장소 치고는 너무 밝고 환했다. 이렇게 밝은데 여기서 뭘 본다고? 의사만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간호사는 왜 같이 있을까. 문밖의 복도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려서 내가 바지를 내리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나로서는 당황스러웠지만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픈 부위를 보여줘야 진료든 수술이든 진행이 될 터였다. 망설이는 나를 보며 의사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을 했다.
"아휴 괜찮아요, 괜찮아. 내가 여기서 허구한 날 보는 게 그거예요."
수술은 순조로웠다. 의사는 최신식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술이라 재발의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했다. 남편은 휴가를 내어 나의 병간호를 자처했다. 회복실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나를 성가시게 하던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에 미소가 나왔다. 식사가 나왔다.
"가스 안 나왔는데 먹어도 되나?"
가스가 나오기 전이었고 수술 부위를 생각하면 그것이 천천히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식판 위의 정갈하게 놓인 음식을 빤히 쳐다봤다. 남편은 복도로 나가 조금 전 우리 병실에 왔다가 나간 간호사를 향해 소리쳤다.
"OOO 환자 가스 안 나왔는데 식사해도 되나요?"
바쁘게 걸어가던 간호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돌려 큰소리로 대답했다.
"치질 수술 환자는 상관없어요!"
순식간에 복도는 그녀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남편은 허리를 접고 고꾸라지듯 폭소를 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동시에 손사래를 치며 그는 덧붙였다.
"자기는 상관없대."
그 알바생처럼 신이 나게 웃는 남편을 보며 나도 웃음이 나온다. 평소 무뚝뚝한 남편이 내 덕분에 웃었다. 아니 그 고얀 놈이 가는 마당에 남편을 웃기고 갔다.
얼마 전 읽은 어느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에게 한말이 생각났다.
'치질이나 걸리는 여자하고 만나고 싶지 않아.'
여자 대신 내가 대답했다. '나쁜 놈!'
남편은 그릇의 뚜껑을 하나씩 열고 밥을 떠서 내게 먹여 주었다. 나는 팔이 아픈 것도 몸 여기저기가 아픈 것도 아닌데 남편이 주는 대로 밥을 받아먹었다.
수술비를 결재한 남편은 영수증을 꼼꼼히 챙겨 회사에 제출했다. 가족 중에 수술을 한 사람이 있다고 하니 후배 직원이 물었다. "어디 아프셨어요?" "아니 치질" 남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직원은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그것도 실비 처리가 돼요?" 그러면서 또 배꼽을 잡고 웃는다.
얼마 전 대청소를 하면서 몸이 꽤 고단했다. 자고 일어났을 때 예전에 느꼈던 비슷한 불편함이 몰려왔다. 의사는 재발의 가능성이 낮다고 했지만 그것은 '나 아직 죽지 않았지롱.' 하는 것처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듯했다. 수년의 기간 동안 잊고 살았던 것을 계산하면 가성비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녀석이 다시 고개를 내밀면 그 병원에 다시 가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그 고성능 카메라에는 아직도 나의 사진이 있을까. 사진이 흔들리지 않게 간호사는 또 누군가의 둔부를 잡고 있을까.
나는 알바생을 기억하며 중얼거린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