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16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누른다. 통화 연결음이 시작되고 스피커폰 버튼을 누른 후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메모장을 살핀다. S의 학부모는 통화가 잘 되지 않는다. 처음 나에게 S가 배정되었을 때도 학부모와 통화가 되지 않아 영업사원 겸 그 집에 방문하는 선생님께 전화를 했었다.
"아휴, 애가 좀 말을 안 들어서요. 집에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애가 오질 않아서 내가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데리고 온 적도 있다니까요. 학교 앞에서 나를 만났는데도 친구랑 놀러 간다면서 쌩까고 가버리는 거 있죠. 학부모에게 전화를 하면 바쁜데 전화한다고 짜증 내시니까 수업 안 들어오면 애 전화번호로 전화하세요. 학생 전화번호 칸에 번호 있죠? 그게 걔 번호예요."
S에 대해 기록한 내용을 살핀다. 알파벳 미흡. 학습 미흡. 매번 지각. 나와 시작을 한 지 일 년이 다돼 가지만 매 수업 때마다 그 내용들은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되고 있었다. 여전히 통화음은 울리고 있다.
아이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게임을 하는 건지 유튜브를 보는 건지 얼굴에 비치는 화려한 불빛이 번쩍번쩍한다.
"여기 봐야지! 딴짓하지 말고!"
아이는 아니라고 우긴다.
얼굴이 또 번쩍번쩍한다.
"들어왔으면 딴짓하지 말고 똑바로 보세요!"
어느새 아이의 얼굴이 나오는 화면에는 누렇게 바랜 방 천장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나는 아이의 태도를 기록하는 메모장을 클릭하여 이름을 검색하고 날짜를 타이핑한다. 이전 날짜에 쓰여 있는 '수업 태도 불량'이라는 글자를 복사하여 붙여놓고 미흡이라는 글자 앞에 '매우'를 추가로 타이핑한다.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데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S의 아버지가 전화를 받는다. S의 근황을 전해 들은 그는 한숨을 쉬며 언성을 높였다.
"그 노마 가시나는 어찌 그렇게 지 애비 속을 썩이는지! 내가 속이 타서 죽습니다! 아 혼자 키우는데 그렇게 말을 안 듣고. 내가 죽습니다! 내가 속이 터져 죽습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머릿속이 어질 했다. 이 학부모는 평소 통화가 잘 안 된다고 생각되었지만 오히려 통화가 연결되면 이때다 하고 하소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듯했다. 이럴 때에는 뭐라고 상담을 이어가야 하나. 회사에서 강성 학부모를 대하는 상담 방법에 대해 교육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학부모라 함은 주로 어머니를 칭하는 거였고 또한 그들의 불만 사항은 주로 학습 관련한 시스템이나 서비스와 관련한 것이었다. '엇나가서 속 썩이는 아이를 둔 싱글 대디'를 상담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P의 어머니는 낮부터 혀가 꼬부라졌다. 술 냄새가 수화기를 타고 오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10cm 정도 밀어 놓았다.
"남편이 여자가 생겼는데 내가 무슨 살맛이 나겠어요? 에? 애 아빠라고 그 사람 구슬리겠다고 암만 노력을 해봐도 에? 말짱 헛짓이 되네요. 에? 어제도 P아빠 좋아하는 생선 조림 해놓고 기다렸는데 안 들어왔어요."
술을 들이켜는 건지 물을 들이켜는 건지 뭔가를 마시는 소리가 ASMR 영상처럼 내 고막을 자극한다. 나는 영혼을 쏙 뺀 목소리로 '네에'하고 대답했다.
"선생님?"
"네?"
"제가 도대체 뭘 잘못했어요?"
나는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했다.
나는 Y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짬밥이 차기 전이었다. 초반에 열심이던 5학년 Y는 어느새 슬럼프가 온 것처럼 해이해졌다. 스스로 하는 학습을 조금 더 하라고 말했더니 아이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아이의 표정이 무섭게 느껴졌다. 아이가 한참 사춘기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내가 사춘기시절 입에 거품을 물고 엄마에게 대들던 때 엄마도 나 못지않게 성질이 예민해져 있었다. 살기를 띤 눈빛을 가지고 어른에게 대드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갱년기를 지나고 있던 엄마는 결코 그런 딸에게 지지 않았다. 서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더욱 거칠어지고 상스러워졌다. 작은 포스트잇 사이즈 정도의 화면 속 아이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데 나는 공포 영화를 본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이후로 나는 말수가 적고 뚱해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일일 학습을 권유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왜 아이한테 학습을 하라고 얘기를 안 하세요?"
Y의 엄마가 따져 물었다.
"Y가 한참 예민할 때잖아요. 제가 학습을 하라고 말하니까 인상을 팍 쓰더라고요. 어린아이도 아니고 막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기가 좀 조심스럽네요."
"조용히 구슬리면서 아이를 이끌어 갈 수 있잖아요."
그리고 Y의 엄마는 덧붙였다.
" 엄마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