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싫으면 '노'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17

by 쓰는수 이지수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17

과한 열정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엄마들은 의례 1:1 영어 수업이라고 하니 선생님이 가끔 영어로 유창하게 떠들어주길 원한다. 사실 학습은 아이 스스로가 하며 내가 하는 역할은 코칭 수준이지만 많은 엄마들은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학부모 상담 기간이 되어 통화를 하게 된 한 엄마는 아이가 왜 영어가 늘지 않냐고 물었다. 내 눈은 컴퓨터에서 보여주는 이이의 학습일자 및 학습하는 데 걸린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반문했다.

"공부를 안 하는데 왜 늘어요?"

대부분 내 회원들의 엄마는 나보다 젊은 세대여서 엄마 역할로 따지면 내가 선배인 셈이다. 내 막내 동생보다도 어린 엄마들을 향해 가끔 나는 우월감을 느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올바른 육아에 대해 조언을 가장한 연설을 늘어놓을 때도 있었다. 나이 먹어 좋은 점도 다 있다.




의례 영어 수업이라 하니 열정이 과한 엄마들은 수업 내내 영어로 진행하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가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그런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 영어 문장을 말하면 무작정 따라 말하고 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뭔 소린가 멀뚱멀뚱 앉아 있는 아이가 있고 타인과의 소통 방법을 배우다가 만 것 같은 어느 아이는 '뭐라는 거야?'라며 제 아랫사람 대하듯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치 그 말투가 학습지 선생 앞에서'잘났어 정말!'이라던 내 막냇동생 같아서 흠칫 놀랐다.


'저놈 저거, 옛날 그놈이 빙의를 했나.' 나도 속으로 읊조리며 화면 속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예쁘장한 아이는 공주처럼 앉아 있었다. 영어 학습도 처음 화상 수업도 처음이라며 기대에 찬 아이와 엄마에게 기대를 저버리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또 열정을 불살라 어설픈 발음으로 떠들어대며 영어 공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들으면 얼핏 유창할 거라고 착각할 수 있는, 자신감 뿜뿜 넘쳐 보이는 목소리로 버무려진 영어 문장들을 화면 가득 담았다. 아이와 그 옆에 앉아서 화면에 몸이 반쯤 보이는 아이의 엄마는 내 목소리에 매료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을 자그마한 화면 속에 휘어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아이의 얼굴을 점점 굳어갔다. 난 좀 더 있어 보이게 영어로 말한 문장을 뜻을 말해주지 않고 떠들어대다가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전자 칠판에는 동물이 있었고 그 동물을 좋아하냐는 것이었다.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당황했다. 화면 속 엄마는 아이가 처음이라 적응을 좀 더 해야겠다며 오늘은 그만할 것을 부탁했다. 화면이 종료되고 나는 멍하게 앉아서 중얼거렸다.

"고양이가 싫으면 '노'라고 하지."



후에 그 공주 같은 아이의 엄마가 평가한 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선생님 때문에 아이가 오히려 영어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사기가 떨어져서 영어 하기 싫다고 하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일 학습을 조금 더 하라고 권하자 또 다른 3학년 공주의 엄마는 왜 아이에게 부담을 주냐고 했다. 영어는 그저 즐겁게 하는 것이고 놀이식으로 진행해 주길 바랐는데 선생님 때문에 해지를 고려하고 있다며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서 난리를 쳤다. 팀장이 수습을 하며 마무리가 되었고 상담 기록에는 기분이 쪼끔 풀린듯한 엄마의 코멘트가 정리되어 있었다.

[선생님 자체는 좋으신 분 같으며 자기 때문에 선생님께 피해가 가는 것은 원치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

나도 그 밑에 한 줄 추가하고 싶었다. [병 주고 약 주네]









어느 점잖은 도련님 같은 아이는 마지막까지 점잖게 예의를 갖췄다. 학습도 만점 출석도 만점 너무 착한 아이였지만 나와 함께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읽기라든지 단어수가 거의 늘지 않았다. 그 점잖아 보이는 모습이라는 것이 보기와는 다르게 영어에 대해 흥미가 떨어진 것이고 무기력한 모습이었음을 그 아이와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깨달았다.

"ㅇㅇ아 영어는 쉬운 거다라고 생각하면서 공부해. 그럼 영어가 정말 쉽게 느껴질 거야. 너는 너무 잘하고 있어. 선생님보다도 영어 더 잘하게 될 거야. 꼭 그렇게 될 거야. "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화면은 꺼졌다.




그 말은 꼭 어릴 적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았다.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나는 이상하게 편안함을 느꼈다. 그런 말들을 다른 이로부터 들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겠어라며 어릴 적 윤기 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여태 왜 그런 말을 듣지 못했을까. 내가 들었던 냉철한 조언들은 하나같이 '너 같은 게 어떻게?' 나 '그런 걸 뭐 하려 해?' 식이었다. 항상 위축되었던 성격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졌고 변변한 직장을 구경해 보지도 못한 채 청년기를 보냈다. 그 도련님 같은 아이의 엄마도 아마 바쁠 것이다. 나의 엄마도 바빠서 예쁜 조언 따위를 자식들에게 해주는 스타일이 못 되셨다. 이제야 나는 그런 조언을 듣게 되었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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