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17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17
'저놈 저거, 옛날 그놈이 빙의를 했나.' 나도 속으로 읊조리며 화면 속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당황했다. 화면 속 엄마는 아이가 처음이라 적응을 좀 더 해야겠다며 오늘은 그만할 것을 부탁했다. 화면이 종료되고 나는 멍하게 앉아서 중얼거렸다.
"고양이가 싫으면 '노'라고 하지."
후에 그 공주 같은 아이의 엄마가 평가한 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일일 학습을 조금 더 하라고 권하자 또 다른 3학년 공주의 엄마는 왜 아이에게 부담을 주냐고 했다. 영어는 그저 즐겁게 하는 것이고 놀이식으로 진행해 주길 바랐는데 선생님 때문에 해지를 고려하고 있다며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서 난리를 쳤다. 팀장이 수습을 하며 마무리가 되었고 상담 기록에는 기분이 쪼끔 풀린듯한 엄마의 코멘트가 정리되어 있었다.
[선생님 자체는 좋으신 분 같으며 자기 때문에 선생님께 피해가 가는 것은 원치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
나도 그 밑에 한 줄 추가하고 싶었다. [병 주고 약 주네]
어느 점잖은 도련님 같은 아이는 마지막까지 점잖게 예의를 갖췄다. 학습도 만점 출석도 만점 너무 착한 아이였지만 나와 함께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읽기라든지 단어수가 거의 늘지 않았다. 그 점잖아 보이는 모습이라는 것이 보기와는 다르게 영어에 대해 흥미가 떨어진 것이고 무기력한 모습이었음을 그 아이와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깨달았다.
"ㅇㅇ아 영어는 쉬운 거다라고 생각하면서 공부해. 그럼 영어가 정말 쉽게 느껴질 거야. 너는 너무 잘하고 있어. 선생님보다도 영어 더 잘하게 될 거야. 꼭 그렇게 될 거야. "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화면은 꺼졌다.
그 말은 꼭 어릴 적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았다.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나는 이상하게 편안함을 느꼈다. 그런 말들을 다른 이로부터 들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겠어라며 어릴 적 윤기 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여태 왜 그런 말을 듣지 못했을까. 내가 들었던 냉철한 조언들은 하나같이 '너 같은 게 어떻게?' 나 '그런 걸 뭐 하려 해?' 식이었다. 항상 위축되었던 성격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졌고 변변한 직장을 구경해 보지도 못한 채 청년기를 보냈다. 그 도련님 같은 아이의 엄마도 아마 바쁠 것이다. 나의 엄마도 바빠서 예쁜 조언 따위를 자식들에게 해주는 스타일이 못 되셨다. 이제야 나는 그런 조언을 듣게 되었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