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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Mar 31. 2024

그놈의 딜레마 2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

 이 아이는 분명, 집에 와서 붓을 같이 쥐고 자신의 그림이 완성되는데 도움이 되는, 여행가방만큼 커다란 가방 안에 도화지에 꾸밀 재료를 잔뜩 담아 어깨에 메고 다니는, 앞에 앉은 이 어른이 가사 도우미와 선생님의 중간 정도 되는 것으로 생각한 듯싶다. 학습지 선생님 앞에서 '잘났어 정말!'을 중얼대던 막내 녀석이 이 앞에 앉아 있는 착각이 든다.  이것은 '잘났어 정말!'의 미술선생 버전인가? 아이는 상냥하고 예쁘게 말했는데 나는 기분이 다운되었다.



 나는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가야 했다. 저만치 떨어진 크레용을 집어서 케이스에 다시 넣어주는 순간 앞으로도 이 아이가 무언가를 떨어뜨리면 계속 주워야 할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나중에는 자신이 마실 물도 한잔 떠달라고 하지는 않을까. 내 눈은 여전히 크레파스에 고정되어 있다. 몇 초 동안 오만생각이 뇌 속을 헤집는다. 솔직히 그만큼의 비용이 추가된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그 뭐든이라는 것에는 설거지나 수업 끝나고 나가면서 쓰레기 버리기까지도 포함된다) 고개를 흔들며 회사에 누가 될까 그런 행동은 자제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동료에게 누가 되는 행동은 상상에 그치는 것이 좋다. 현재 회사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수교사로 선정된 선생님이 앞에 서서 소감과 함께 자신의 회원 관리 방법을 설명했다. 평소 학습도 수업에도 성실한 한 아이가 생일이 되었을 때 생일 선물조로 보충을 추가하여 수업을 해줬다고 한다. 말을 듣는 머릿속에는 '뭐?' 하는 외마디가 울렸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회사에서 규정한 보충 사유 이외에는 사적인 이유로 보충을 잡지 말라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고 희생정신을 발휘한다면 아이도 엄마도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서 다음 달에도 또 수업을 신청을 할지 모른다. 이것이 그 알량한 딜레마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내가 처음 딜레마에 빠진 것은 지금 회사와 계약을 하고 화상 수업일을 막 시작한 때였다. 집에서 화상수업을 한다니까 남편의 반응이 탐탁지 않았다. 방구석에 앉아서 무슨 일을 한다는 건지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이 교육을 받은 선생님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다가 한 선생님이 말했다. 자신이 버는 돈이 올라갈수록 남편이 생활비를 적게 준다는 것이다. 생활비를 타서 쓰는 내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는 어린이집 파견 선생을, 저녁에는 화상 수업을 겸하면서 버는 돈의 절반정도를 월수업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나머지 절반은 선생님의 비자금으로 고스란히 쌓이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할까 저울질을 했다. 월급여가 정해져 있지 않은 일의 특성상 남편의 얼마나 받냐는 물음에 '해봐야 알지.'라고 첫 달은 두루뭉술슬 하게 넘겼다.


 

 여자가 전업주부로 살림을 하는 것에 대해 별로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던 남편을 생각하면 나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내가 번 수익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을 내 통장을 상상하면 그놈의 명예가 그렇게 중한가 하면서 겉멋에 든 나를 자책했다. 장사꾼 남편과 사신 엄마는 아빠 몰래 비자금을 모으셨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왜 굳이 아빠 몰래 모으신 건지는 모르지만 비자금의 행방은 막내 녀석이 고등학교 때 사고를 치면서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느들통이 나고  말았다. 결국 엄마는 아들의 사고 처리비용을 대기 위해 비자금을 모으신 모양이 돼버렸다. 엄마는 이 비자금이 털리기 전에 엄청난 딜레마에 빠지셨을 것이다. 아빠는 그런 엄마에게 얼마나 큰 감사함을 느꼈을까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아니, 당신은 마이너스 통장에 -200 있는 거 아직도 안 갚았어?"

당시 내 전재산은 마이너스 200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남편이 내게 물었다. 명예냐 돈이냐를 택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도 저도 아닌 남편의 직업에 있었다. 공무원인 남편은 매년 공직자 재산 조사를 통해 직계 가족의 재산 변동 사항을 훤히 꿰고 있었다. 앞으로도 내가 얼마를 벌지 얼마를 빚을 질지 부처님 손바닥처럼 파악할 것이다. 젠장!



 어쩔 수 없이 나는 명예를 택하기로 했다. 일한 지 두 달이 넘어갈 때 급여가 어느 정도 되냐는 남편의 물음에 나는 체념한 듯 '그냥저냥 일하면 200 정도 되겠네.' 했고 남편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생활비 주는 거 좀 줄여도 되겠네!"





 아이는 내가 크레파스를 집어 올 것을 기대하며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그때도 화상 수업의 컴퓨터 모니터처럼, 아이와 내 앞에 때로는 보안기능도 되고 무례하게 구는 회원들로부터 명예를 지키게 해주는 투명 칸막이가 있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를 상상해 본다. 현관을 들어서면 나는 투명 칸막이가 설치된 곳까지 가서 아이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칸막이 너머에 앉아있는 아이에게 오늘 해야 할 작품에 대해 설명한다. 매표소에서 차표를 사는 것처럼 자그마한 구멍으로 활동용 도화지와 크레용 상자를 건넨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다가 크레파스 하나를 떨어뜨린다. 아이는 그림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자기 쪽으로 떨어진 크레파스가 필요한 색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주우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물감을 쓰는 날은 까맣게 된 물통의 물을 갈러 스스로 욕실에 가야 한다. 저쪽에서 떨어진 건 저쪽 사람이 해결해야 한다. 쓸데없는 상상에서 깨어났을 때 크레파스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너그러운 선생님이 되고 명예는 버리느냐, 명예를 지키고 깐깐한 방문 선생님이 되느냐 별 웃기는 딜레마에 나를 잠시 가둔 아이를 바라보다가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서 주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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