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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Apr 04. 2024

명상 수업 _절 명상

 이름만 들으면 특정 종교가 떠오르는 그 학교의 특성상 그 명상 수업이 불교기반일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거의 불교식으로 진행이 되는 듯 보였다. 첫 수업 때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닉네임을 정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내가 만약 개명을 한다면 이름에 넣고 싶은 글자 하나를 닉네임으로 정했다. 그리고 왜 그것으로 정했는지도 설명하라기에 즉흥적으로 그럴듯한 의미를 붙여서 대충 소개를 마무리했다. 



 개중에는 법명을 가진 독실한 불교신자도 더러 있었다. 설마 절대 절을 허용하지 않는 종교를 가진 자가 이 자리에 있지는 않겠다 싶었다. 나는 특정 종교에 심취해 본 적이 없다. 어릴 적 친구 따라 여름 성경학교를 갔던 것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어릴 적에 교회에서 진행하는 아기학교에 다니느라 교회를 따라다녀본 것이 종교 활동이라고 하면 전부였다. 불교에는 더욱 문외한이었다. 산책하다가 들른 절을 둘러보다가 저만치 앞에서 스님이 다가오면 고개만 살짝 숙이고 어색하게  자리를 벗어나곤 했다. 



 으레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전도를 하는 경우가 흔해서 교회에 따라가다가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경우가 제법 있을 것 같다.  내 경우에도 열심히 나를 전도하려던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을 비하하던 엄마로 인해 착한 친구를 따라 교회를 가고 싶어도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엄마에게 교회를 혐오하게 사건까지 일어났다. 



 여름 성경학교에서 1박 2일로 캠프가 있었다. 교회에서 잔다는 것에 신이 난 나는 어렵게 허락을 받아 난생처음 교회에서 친구들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넓지 않은 방에서 나는 다른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잠을 잤다. 나와 머리를 맞댄 아이는 별로 친하지 않은 우리 반 친구였는데 그 아이의 머리에는 이가 득실득실한 것으로 유명했다. 머릿니들은 새로운 넓은 보금자리로 이사를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름성경학교에 다녀온 후 내 머리에 이를 발견한 엄마는 욕을 해대며 찬빗으로 이를 잡으셨다. 엄마가 힘을 주어 빗질하는 통에 두피가 벗어져 나가는 듯했다. 신문지 위에는 잠시 내 머리에 기생하던 이와 내 닭똥 같은 눈물이 함께 떨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엄마에게 교회란 '큰 애가 이를 옮아온 곳'이라는 요상한 인식 하나를 심어준 사람이 돼버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교회와 긍정적인 인연이 없었지만 또 다른 대중적인 종교인 불교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나는 이때껏 절을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스님 한 분을 섭외하여 위령제를 지내면서 몇 차례 절을 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나는 절을 한다는 것이 조금 싫었는데 그 이유란 절을 거부해서라기보다 단지 몸을 웅크렸다가 다시 일어나는 동작이 성가시다고 여겨서였다.



 또 다른 이유로 절을 거부한 적이 있었는데 20대 시절 소개로 들어간 신생회사에서 고사를 지낸 날이었다. 사업이 잘되도록 해달라며 입에 지폐를 문 돼지머리를 앞에 두고 절을 해야 할 기회가 온 것이다. 이때도 그 동작이 성가셨다. 옆에 서있던 한 남자 직원이 '미쓰리도 절 한번 하죠?' 하는 말에, 나는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부랴부랴 신었던 양말을 떠올렸다. 세 자매와 엄마까지 공동으로 신는 양말 바구니의 양말들은 오래되어 낡은 것들만 가득했다. 그중에 하나를 골라 잡은 것이 엄지발가락이 삐죽 나오도록 앞쪽에 구멍이 난 놈이었다. 아직 사무실에 슬리퍼를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의식하며 발가락이 삐져나오는 양말을 그대로 신고 출근을 했다. 



 절을 하려면 운동화를 벗어야 했다. 그리고 구멍이 난 양말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고사상이 차려진 돗자리로 올라가 몸을 웅크리고 절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성가셨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 교회 다닙니다. "




 명상의 종류는 다양했다. 사실 명상이라는 단어 앞에 무슨 명상이라고 이름만 갖다 붙이면 땡땡명상이 되었다. 명상이라면 앉아서 눈을 감고 하는 것인 줄만 알았지, 걷기 명상, 댄스 명상 등 명상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가 퓨전음식처럼 시대 변화와 함께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바디스캔이라고 하여 반듯하게 누워서 나의 몸 부위 하나하나를 느끼는 시간이 있었는데 가장 편안하고 쉽게 느껴졌다. 사실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신체부위에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어서 설렁설렁하게 할 것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내는 것과 비슷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와서 그분은 정말 이 수업을 잘 택했구나 했다.


 

 두 번째 수업 때 드디어 절 명상이 진행되었다. 이것을 거부한다면 수강 취소를 해야 할 것이다. 모르고 수강 신청을 할 사람을 없을 것이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을 숙이고 교수님이 치시는 나무 막대의 탁탁 소리를 들으며 무릎을 구부리고 웅크린 자세로 절을 했다. 절을 하면서 아버님 위령제때 오셨던 뚱뚱한 스님이 생각났다. '이렇게 힘든데 그 스님은 절 안 하나? 근무 제대로 안 하나?' 하며 경건한 동작을 열심히 따라 했다. 



 고요함 속에 몸을 움직이는 소리, 얇은 점퍼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무릎의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또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여기에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제법 있을 것 같다고. 무릎에서도 작게 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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