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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Dec 21. 2023

상처와 아픔이 있다

조금은 다른 세상을 위하여


부부 사이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 한참 얘기하다 보니, 이혼한 사람도 앉아 있었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했을 때는, 그 자리에 조현병 환자도 앉아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힘주어 말하는데, 그 중에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도 앉아 있었습니다. 


청중이 열 명이라면, 강사는 청중의 개인 사정을 일일이 알 수가 없습니다. 공통적으로 적용할 만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가를 따지려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상처와 아픔을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죠.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제는 제가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였다는 사실을 말해도 별로 놀라는 사람도 없습니다. 지난 8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이들 앞에서 제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 자신도 더 이상 과거 시련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지요. 어쨌든 저도 나름의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내 상처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알아주길 기대합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마치 "내가 더 아프다!"라고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더 아픈 사람이 이긴다는 무슨 이상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모양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만했다, 그 정도로 무슨 상처를 받느냐... 뭐 이런 식입니다. 


주변에 교사도 많고 학부모도 많습니다. 무슨 전쟁하는 것 같습니다. 학부모는 교사를 고소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교사는 학부모를 상대로 맞고소를 하겠다며 투지를 불태웁니다. 그 사이에 끼인 아이들은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아주 신이 나서 떠듭니다. 교육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지만, 이러한 문제 역시 서로 상처를 준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화살을 손에 쥐고 상대 가슴팍을 쿡 찌르면 찔린 사람은 당연히 피가 흐르고 고통스럽겠지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세 살 먹은 애도 알 만합니다. 그럼에도 여기 저기에서 화살로 쿡쿡 찌르며 다니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세 가지 이유로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나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는 극도의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버스나 열차 안에서 좌석을 뒤로 밀어젖히는 사람들, 소란스럽게 통화하면서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 주차장에 떡 버티고 서서 자리 맡았다며 되려 큰소리 치는 사람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 인성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SNS 탓입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내용보다는 자극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무작위로 올라옵니다. 익명의 네티즌들이 마구 써갈기는 욕설과 음모와 험담과 비난이 도를 지나칠 정도로 난무합니다. 참하고 좋은 말을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으니, 말과 글이 점점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셋째, 속도와 변화가 빠른 세상이라 그렇습니다. 일상이 급하게 돌아가니까 사람 마음도 급해집니다. 어떤 일이 생기거나 상황을 접하게 되면, 생각하지 않고 즉각 반응합니다. 욕이 튀어나오고 험한 소리를 마구 퍼붓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비관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어 어떻게든 타인과 세상을 향해 악성 화살을 날리려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이유의 하나입니다.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세상일수록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태도를 짚어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세상과 타인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내가 바르게 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고작 나 한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 그게 아니죠. 적어도 나 한 사람의 힘으로 주변 사람 둘 정도는 다른 세상을 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멈추는 것입니다. 속도와 변화에 휩쓸리지 말고, 자기만의 중심을 가져야 합니다. 모두가 돈, 돈 외칠 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고요. 모두가 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비난할 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런 습관이 속도를 늦추고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줍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단연코 독서입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내 안의 얼음을 깨트리기 위해서입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철학이나 가치관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 이러한 유연성을 갖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죠. 마음이 유연하면 남에게 상처를 덜 주면서 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옳다는 편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때문에, 자신과 의견이 같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치게 되지요.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잘못 되었다고 보는 관점은 마땅치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서로 물고 뜯는 일 줄어들 겁니다.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면서 살았습니다. 상처를 받을 땐 너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요. 상처를 주었을 땐,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잠들었습니다. 제가 받는 상처는 모조리 과거에 제가 주었던 상처의 흔적입니다. 고스란히 받고 반성하며 성찰해야겠지요. 


제가 아플 때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니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별일 아닌데도 자기 일처럼 여겨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천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대구 촌놈이라 성질이 독하고 표현도 나긋하지 못합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연습해 보려 합니다. 상처 받고 상처 주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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