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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Feb 07. 2024

소중한 건 언제나 일상이다

흔들리지 않는 하루


할머니 제사 끝낸 후 정돈까지 마치고 나니까 새벽 1시가 다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음식 장만에 청소까지, 게다가 저의 루틴까지 빠짐없이 다 했습니다. 몸은 녹초가 되었고, 자리에 눕자마자 잠들었습니다. 새벽 4시, 여지없이 알람은 울렸습니다. 


어제 제사를 지냈든 늦게 잤든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오늘이라는 하루는 아무 거리낌없이 시작됩니다. 일상은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일상은 미루거나 당겨지지도 않습니다. 시간이 되면 하루는 시작되고, 또 시간이 되면 해가 집니다. 


누군가는 일상을 지긋지긋하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일상이 흔들린다 말하며, 때로 평범한 일상이 다행이고 행복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상을 대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반응이 제각각이란 의미겠지요.


저한테 일상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답을 하는 데까지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일상은 저를 다시 살게 해 준 시간입니다. 일상 덕분에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요. 만약, 일상이 없었더라면 저는 영원히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로 방황하면서 바닥에서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겁니다. 


특별한 이벤트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일상이 지겹고 지루하니까, 뭔가 색다른 사건(?)이 펼쳐지길 기대하는 것이죠. 그러다가 어떤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 펼쳐지면, 한동안 호기심과 신기함에 젖어 재미 있다는 듯 반응합니다. 결과는 어떨까요? 네, 맞습니다. 오래지 않아 다시 일상을 그리워합니다.


일상은 가족입니다. 일상은 내가 하는 일이고, 일상은 주변 사람들이며, 일상은 한 걸음입니다.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죠. 일상이 흔들리면 인생도 흔들립니다. 일상이 안정적인 사람이야말로 성장과 성공을 추구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오늘 일상이 정상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저는 어제 제사 준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일을 했다는 이유로 늦잠을 자고 방바닥에 뒹굴며 피곤하다는 말을 종일 뱉았을 겁니다.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시작된 일상 덕분에 저는 온전한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던 거지요.


몇 달 전, 난생 처음 해외여행으로 가족 모두과 대만에 다녀온 적 있습니다. 계획은 넉 달 전부터 세웠지요.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아들은 넉 달 동안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외국에 가는 거니까 설레기도 했을 테지요. 일상은 평소와 달리 허공에 붕 뜬 느낌이었습니다. 


막상 대만에 갔을 때에는 그냥 볼거리 먹거리 정도만 다를 뿐 한국에서의 일상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잠시나마 인생을 돌아봤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뭔가 확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문제는 대만에 다녀온 이후부터였습니다. 커다란 이벤트 하나가 끝나고 나니까, 가족 모두 한 동안 허탈해 했습니다. 더 이상 기대할 만한 일정도 없고, 흥미진진한 이벤트도 없어서 마치 '모든 게 끝났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마지못해 떠올린 아이디어가 '다음엔 일본에 가자!'라는 계획이었습니다. 


인생이 이렇습니다. 뭔가 대단하고 멋진 결과를 기대하고 살면 반드시 실망하게 됩니다. 대만 여행 자체는 멋지고 근사했지만, 그 뒤에 따르는 공허함이 일상을 흔들고 말았던 겁니다. 마음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땅으로 꺼지니까,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었습니다. 다시 정상적인 일상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덤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연하고 의연해야 합니다. 일상이 중심이 되고, 기타 이벤트나 사건들은 모조리 주변 행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하루를 시작하고, 자기만의 루틴을 성실하게 해내고, 매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과정들. 그것이 곧 나의 인생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교보문고 잠실점에서 우리 작가들 사인회를 진행합니다. 책을 출간한 작가가 교보문고 한가운데에서 사인회를 한다는 건 상당한 영광이고 의미 있는 행사입니다. 허나, 그 자리가 행복으로 자리매김 되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사인회 전날에도 글을 써야 하고, 사인회 다음 날에도 글을 써야 합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에 무게를 둘 수 있을 때, 비로소 특별한 이벤트도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과거 제가 크게 무너졌던 이유는 일상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벌이고, 그 사업이 엄청 잘 될 거라는 기대 속에서 하루하루를 유흥으로 탕진했었지요. 매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그저 내 인생 이제 멋지게 바뀔 거라는 허망한 기대로만 살았던 겁니다. 


요즘 저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일상을 보려 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그의 일상을 보면,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점칠 수 있습니다. 왔다 갔다 우왕 좌왕 이랬다 저랬다 마구 흔들리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려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일상을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특별한 감정과 이벤트를 더 바라기 때문에 결코 성장하거나 성공할 수 없습니다. 


흔들림 없는 사람 만나면 든든합니다. 나무 같은 존재를 만나면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겠다 결심도 하게 됩니다. 세상이 워낙 소란스럽고 자주 흔들리다 보니까, 우직하게 자기 삶을 지키는 이를 만나기가 드문 것 같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방방 뛰지 말고, 차분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독한 독감에 걸렸어도 일상에 펑크 내지 않았습니다. 제사 준비다 뭐다 일상을 흔드는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이 매 순간 저를 툭툭 치고 지나가지만, 그럼에도 오늘이라는 일상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마음 덕분에 저는 또 살아낼 수 있는 것이죠.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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