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평온은 어디에서 오는가
제주도 바닷가 고요한 방에 앉아 파도소리 들으면서 글 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2018년. 실제로 제주도에서 강연 요청이 왔습니다. 용두암 해안도로 근사한 카페 창가에 자리 잡고 노프북을 펼쳤습니다. 잘 써졌느냐? 바다 구경하고 사진 찍느라 세 시간 동안 반 페이지도 못 썼습니다.
10년간 직장 생활 했습니다. 그 시절에 매일 했던 생각 하나. 개인 사업 하면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매일 열심히 운동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지난 6년간 1인 기업가로 활동하면서 운동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등산과 웨이트를 조금 하고 있을 뿐입니다.
개인 사무실 하나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지요. 매일 사무실에 나가서 혼자 조용히 앉아 음악 듣고 커피 마시며 실컷 글 쓸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사무실 하나 마련하고 온라인 강좌를 시작했습니다. 2년 다 되어 가는데, 강의할 때 말고는 사무실에 아예 나가지도 않습니다. 멀쩡한 집 놔두고 굳이 사무실에 나갈 필요 없겠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출소 후 3년 동안, 들고 다니지도 못할 만큼 무거운 노트북으로 글 썼습니다. 지금은 맥북에 삼성 플렉스까지 최신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요. 지금보다 예전에 훨씬 절실하고 절박하고 치열하게 글을 썼습니다. 글 쓰는 데에는 '좋은 노트북' 따위 필요없다는 증거입니다.
고요함과 평온은 환경과 조건의 결과가 아닙니다. 절간에 가야만 고요함을 느끼고 파도소리 들어야만 평온함을 느끼는 게 아니지요. 주변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고, 노트북이 아무리 구닥다리라도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언제나 내 자신의 선택과 판단입니다.
자신을 성공시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를 비난하고, 제게서 배운 내용을 허락없이 도용하고, 출판사와 제가 모종의 거래를 한다는 근거없는 소문을 퍼트리고......
심란하고 복잡한 마음 때문에 일상 생활이 흔들렸던 적 있습니다. 다 때려치울까 욱하는 감정도 수시로 일어났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 인생에는 그런 사람들이 늘 있었고, 사라졌고, 또 다시 생겼다는 사실을 말이죠.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은 중요치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인간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제가 문제가 아니란 뜻입니다. 그들이 문제입니다.
저한테 중요한 사실은, 주변이 아무리 더럽고 추악해도 흔들리지 않고 글을 쓰는 것 뿐이었습니다. 강의를 시작하고 1년쯤 지났을 땐 마음에 태풍이 불었는데, 6년쯤 지나니까 봄바람이 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것이지요.
집이 좀 더 넓고 내 방 하나 가질 수 있다면 집중할 수 있을 텐데. 노트북을 새로 하나 장만하면 더 잘 쓸 수 있을 텐데.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먹고 살 걱정이 없다면. 사람들이 응원해준다면. 글을 좀 잘 쓸 수 있다면. 좋은 출판사를 만난다면.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부자가 된다면. 성공한다면......
환경과 조건이 더 나아지길 바라면서 지금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도피이자 회피입니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사람은 실제로 환경과 조건이 달라져도 변화할 수 없습니다. 더 좋은 환경과 조건만을 바랄 뿐이겠지요.
글 쓰기 좋은 때는 항상 '지금'이라고 강조합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바쁘다 힘들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도, 때로 그 때가 좋았다는 말도 함께 합니다. 지금 글을 쓰면 지금이 글 쓰기 딱 좋은 때이고, 지금 쓰지 않으면 글 쓰기 좋은 환경과 조건은 영원히 오지 않는 법이지요.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이야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삶은 '오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가진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늘 '문제'가 따라다니게 마련이지요. 카페에 가서 '더 좋은' 자리를 찾아 헤매이기보다는, 남들이 내 자리를 부러워할 만큼 집중하는 것이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입니다. '문제'는 피하고 도망다닌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밟고 넘어가야 할 계단에 불과하지요.
쓰기 힘들고 어려운 이유를 백 개쯤 대라고 하면 지금 당장 술술 적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들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는 걸까요? 지난 6년간 자이언트에 수많은 사람이 함께 했습니다. 상처와 아픔 가진 이들은 물론이고, 나이, 직업, 성별 등 온갖 다양한 사람이 모였습니다만, 무릉도원에서 도 닦는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들 바쁘고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이지요.
어떤 환경과 조건이 갖춰지면 좋겠다는 바람은 실제로 그 일을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평생 그렇게 바라기만 하다가 생을 마감할 겁니다. 비석에다 새기겠지요. 바라다가 죽었다.
눈 뜨자마자 인력시장 나가지 않고 바로 글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수시로 저를 불러 심부름 시키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아직 건강하셔서 참 다행입니다. 바닥에 엎드려 피가 거꾸로 쏠리는 상태에서 쓰지 않고, 이렇게 책상에 앉아 키보드 두드릴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저 밖에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거실 TV 소리, 아내와 아들 지지고 볶는 소리, 베란다 밖 아파트 농구장에 공 튀는 소리, 쉴 틈 없이 반짝이는 휴대전화 메시지들...... 이 모든 소란과 외부 사건들 속에서도 고요히 글을 씁니다. 제가 판단하고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평온과 안정은 세상이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것이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