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는 삶을 위하여
막노동 하면서 살았던 때가 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늘 초라했지요. 시멘트와 흙이 지워지지 않은 지저분해 보이는 옷을 입고 다녔고, 누가 봐도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인 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아무도 저한테 더럽다 지저분하다 말하지 않았고, 또 실제 무시당한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스스로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의식하며 살았지요.
일이 없는 날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옷장에서 이 옷 저 옷 꺼내 입으면서 난데없는 패션쇼(?)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맨날 여자 만나러 가냐며 핀잔을 주었을 정도입니다.
제법 차려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좀 과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람 대접 받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문제는, 그렇게 사람들한테 잘 보이고 집으로 돌아온 날은 두 배로 피곤했었다는 사실입니다. 종일 가면을 뒤집어쓰고 다녔으니 몸도 마음도 지칠 수밖에요.
어제 어머니 사고 때문에 허둥지둥 응급실로 달려가느라 추리닝 바람이었습니다. 경황이 없어 생각지도 못했고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서의 옷차림 그대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더니 초췌하고 볼품 없더군요. 하지만 마음은 전혀 무겁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진짜 제 모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제대로 안다는 건 중요합니다. 막노동하던 시절의 저는 '제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보이길 바랐던 것이지요.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봐주길 원하는가 하는 문제에 더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그랬으니 매일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복장을 제대로 갖추는 것은 중요합니다. 매너라고 하지요. 그러나, 진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번지르르한 겉모습에만 신경을 쓴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겁니다.
어린 아이들이 어른 한 사람을 둘러싸고 주먹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시늉일 뿐이지만, 아이들은 꽤 진지하게 장난을 치고 있었고 그것을 받아주는 어른은 시종일관 환하게 웃고 있었지요. 아이들은 어떻게든 그 어른을 한 번 쓰러뜨려 보겠다며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 어른의 이름은 무하마드 알리였습니다.
알리는 사람들한테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요. 우아하고 멋있습니다. 품격이 느껴집니다. 아이들의 장난을 전부 받아주는 알리의 환한 표정이 보이는 듯합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 많습니다. 글을 쓸 때도 거창하고 대단하고 멋진 글을 쓰고 싶다며 스트레스 받는 작가 적지 않습니다. 때로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어하는 작가들까지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지요.
글 쓰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하고 가벼워야 하는데, 이렇게 과장하거나 숨기면서 글을 쓰면 더 답답해지고 삶이 무거워집니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지요. 자신을 모르는 이유는, 한 번도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탓입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나름 한 줄로 정리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가식적인 모습으로 남에게 칭찬받느니, 진짜 내 자신의 모습으로 미움받길 택하겠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그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훗날, 인생 돌이켜 보면서 가슴 뿌듯할 테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