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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Mar 29. 2024

진지하게 농담하라

맺고 끊을 줄 아는 사람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사뭇 진지하다. 나는 내가 살아갈 인생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걸 참지 못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이걸 가볍게 여기면 삶이 통째로 흔들린다. 상상은 언제나 진지해야 한다. 글 쓰는 인생, 글 쓰는 사람들을 돕는 인생, 수천 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그들의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목청껏 강의하는 내 모습. 이런 것들을 상상하면서 어찌 진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과거의 나에 대해 말할 때는 항상 웃는다. 우스갯소리를 즐긴다. 바보가 된 것처럼 연기도 하고, 창피한 일을 뻔뻔스럽게 넘기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백날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 지어 봤자 달라질 게 없다. 그냥 웃으며 넘기는 게 최고다. 덕분에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막노동꾼, 암 선고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조차 깔깔거릴 수 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생긴다. 때로 진지해야 하며, 또 다른 때는 능청을 떨기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진지 모드와 코믹 모드를 넘나드는 선을 명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시종일관 진지하기만 하면 무겁고 우울하다. 시도 때도 없이 까불기만 하면 빈 깡통이 된다. 진지하게 말하다가도 언제든 유쾌하게 웃을 수 있어야 하며, 가볍게 농담하다가도 즉시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 


만날 때마다 무거운 사람 있다. 표정 어둡다. 심각하다. 입만 떼면 걱정, 근심, 불평, 불만이다. 얼굴 표정에 그의 모습이 고스란이 녹아 있다. 자신은 진지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볼 땐 쓸데없이 걱정 많은 습관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주로 과거 또는 미래에 가 있다. 과거를 생각하면서 후회하고 한탄한다. 모든 잘못된 점을 부모, 선생, 주변 사람들, 환경 등의 탓으로 돌린다. 긍정적인 기운을 주입하려 노력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은 강하다. 암흑이다. 스스로 그 어둠을 깨고 나와야 한다. 


혹시 주변에 그런 사람 있으면 당장 손절하고 벗어나야 한다. 함께 있으면 무조건 물든다. 오랜 세월 인연 맺었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붙어 있다가는 자기 인생까지 망칠 수 있다. 밝은 쪽으로 적극 나아가야 한다. 유쾌한 사람 많이 만나고, 긍정의 기운 넘치는 모임에 발 벗고 참여해야 한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계속 농담만 하는 사람도 있다. 강의할 때도 아무 때나 툭툭 끼어든다. 다른 사람이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가벼운 농담을 하고 있는 건지 분간하지 못한다. 상대가 진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도 천지분간 못하고 계속 농담을 하면 어떤 사람이 좋아하겠는가. 


인기를 끌고 싶어하는 성향 있다. 관심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 거다. 남들이 웃긴다, 재미 있다 칭찬해주는 말에 취해서 정말로 자신이 유쾌한 사람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유쾌함이란, 때와 장소와 사람에 맞게 작용할 때에만 효과가 있다. 장례식 가서 농담하면 미친 놈 아니겠는가. 


슬픔, 애환, 고통, 시련, 고난, 역경 등을 가벼운 웃음으로 대처하는 것이 유쾌한 태도의 끝장판이다. 상당한 내공을 갖춘 사람들. 그저 타인으로부터 '웃기는 사람'이란 말을 듣고 싶어 시도 때도 없이 농담만 하는 사람은 빈 깡통에 불과하다.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웃을 줄도 아는 법이다. 


공부할 땐 공부하고 놀 땐 놀아야 한다.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쉬어야 한다. 이거 두 가지 분간 못하면 어디 가서 대접 받긴 글렀다 생각해야 한다. 놀자고 간 회식 자리에서 인생 조언이랍시고 건네면 꼰대가 되는 거다. 회사 일하면서 어제 회식자리 얘기만 계속 늘어놓는 사람은 업무 평가 안 봐도 뻔하다. 


분위기 파악이란 거 생각보다 중요하다. 살아보니까 그렇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알아야 사랑받는다. 혼자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무슨 심각한 고민이라도 되는 듯 전화해서 난리치는 사람도 꼴불견이고, 조언해달라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오만 간섭 다하는 사람도 재수 없다. 


선을 지켜야 한다. 시와 때와 장소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매력 있다. 놀 때는 화끈하게! 일할 때는 셔츠 팔 걷어붙이고 열정적으로! 이렇게 살아야 멋있다. 지금 놀고 있는 건지 일하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싶은 사람,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안 생긴다. 


글도 마찬가지다. 쓸 때는 아무 소리 말고 그냥 쓰는 거다. 어쩌다가 하소연할 만하다 싶으면 조금 징징거릴 수도 있다. 그러다가 또 쓰는 시간이 되면 입 딱 다물고 쓰는 것이고. 


이건 뭐 아무 때나 징징거리고, 어렵다 힘들다 무슨 전쟁터 나가는 사람처럼 세상 고민 다 짊어지는. 그렇다고 글을 많이 쓴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건지 글쓰기에 대해 수다만 떠는 건지 도통 구분할 수가 없는 사람들. 차라리 글 쓰지 말고 유튜브 하는 게 낫겠다. 팔로우가 많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매일 업로드는 할 수 있을 테니. 


뭔가 딱 자르는 맛이 있어야 한다. 술도 마실 때 시원하게 마시고, 아닐 땐 확실히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걸 못했다. 허구헌날 틈만 나면 술을 마셔댔고, 다음 날이 되면 숙취에 헤롱거렸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술만 마시면 문제다? 틀렸다. 다 문제인데 술만 마시면 모든 문제가 드러나는 거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맺고 끊을 줄 모르는 사람이 문제라는 소리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술을 끊었다. 5년째다. 


과거를 상대할 땐 웃을 수 있어야 한다. 미래를 상대할 땐 진지해야 한다. 현재, 지금은 웃음과 진중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지나간 일에 의연하고, 다가올 날들에 숙고하며, 오늘은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 이것이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내가 깨달은 인생 진리다.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 나는 그 일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이러한 능력이 삶의 방향과 수준을 결정한다.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더 이상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지 않을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조심하고 걱정하면서 감정 에너지를 낭비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내가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움츠리고 조심하고 망설이고 주저하면서 살았다.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큰일난다는 생각으로 한 걸음 한걸음 바들바들 떨면서 걸었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 쓰면서 살았다. 결국 다 잃었다. 내 과거는 분명히 "틀렸던" 것이다. 


덕분에 다른 삶을 살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당당하게, 자신감 넘친 모습으로,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다는 패기로 살아간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삶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대신, 나 스스로 삶을 즐기고 누린다는 생각만으로 매일 벅차고 기쁘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인생을 매일 만난다.


때로 진지하다. 농담도 잘한다. 일할 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사람들 만나 놀 때는 웃음 끊이지 않게 한다. 글 쓰고 책 읽을 땐 몸에서 열이 날 정도이다. 잠잘 땐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 가벼워도 되겠다 싶은 때에는 천치 바보가 된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 


진지할 땐 진지하게! 유쾌할 땐 사정없이! 맺고 끊는 맛이 있는,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 한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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